'번역기' 필요한 박 대통령 흔든 '참 나쁜 질문'

하성태 2016. 4. 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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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 '김영란법' 손봐야 한다는 주문.. 그 '검은 저의'

[오마이뉴스 글:하성태, 편집:홍현진]

 지난 26일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 오찬 때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대통령 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46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오찬 간담회. 박근혜 대통령이 희귀하게도 정말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단 하나의 워딩을 꼽으라면 바로 이걸 꼽고 싶다.

이 발언이 인상적인 이유는 자명하다. 국정원 권력을 등에 업고 출범했으며, 국회 과반이 넘는 여당까지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휘둘렀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교과서나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밀어붙인 '불통'의 사안들이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여전히 '국회 탓'이라 하고 있는 대통령의 인식 수준이 한심함을 넘어 통탄을 불러올 따름이다.

간담회 전문을 읽고 또 읽어 봐도 여전히 '박근혜 번역기'가 필요한 수준이었지만, 특히나 대통령의 저 말은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또 어느 선까지 나아가야 하며, 반대로 어떤 걸 하면 안 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임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확인시켜줬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은 셈이고. 

이날 간담회에서는 개별 사안이 지닌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얽힌 총체적인 시각은커녕 그저 임기응변식으로 넘겨보려는 대목이 곳곳에 포착됐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영란법'에 대한 질문과 답이었다.

대통령을 '낚은' 질문

 지난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 오찬 당시 모습.
ⓒ 청와대
"경제가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내수가 본격적으로 회복하는 조짐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모두발언에 말씀하셨듯이 국민의 삶이 더 좋아지고 그다음에 내수경기가 회복되는 것이 민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지만 내수회복과 관련된 3가지 문제를 간단하게 여쭙고자 합니다.

...(중략)...그리고 두 번째는 좀 민감합니다마는 공직자 골프에 대한 질문입니다. 공직자 골프에 대한 대통령님의 인식은 그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이런 겁니다. 제가 골프치지 말라고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골프치실 시간이 있겠습니까? 이런 정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공직자들이 대통령님 말씀 중에 앞부분보다는 뒷부분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혹시 골프 치다가 나는 시간이 한가해서 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런 것의 분위기가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확산돼서 어떻게 보면 많은 국내에서 내수를 촉진시킬 수 있는 것이 해외 골프로 나가고 이런 부작용도 연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님의 생각, 혹시 두 번째 부분을 삭제해 주실 용의는 없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세 번째는 법률명은 깁니다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 김영란법입니다. 국회가 만들었습니다마는 9월 말에 시행이 될 텐데 법의 취지 또는 위헌성 여부는 차치하고 법이 시행될 경우에 경제를 위축시킬 우려가 큽니다.

우려가 상당 부분 나타나서 한우축산농가라든지 화훼농가, 과일 재배하는 사람들, 식당 이런 사람들이 내수경기 위축은 물론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실제 건의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혹시 김영란법이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 혹시 우려 갖고 계신 것은 아닌지 여쭙고 싶습니다."

질문이 좀 길지만 거의 그대로 인용한 이유가 있다. 원래 좋은 질문에 좋은 답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질문 자체가 심히 뒤틀려 있다. 질문자는 대통령이 유독 민감해하는 '경제' 그것도 '내수 경제'를 언급한 뒤, 첫 번째로 '임시공휴일' 제정은 간단히 묻고선 긴 본론으로 넘어 갔다. 바로 '공직자 골프'와 '김영란 법'이다. 질문을 요약하자면 이런 수준이다.

"내수경제가 어려운데 골프도 좀 치게 하고, 김영란법도 좀 손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럼 답은 어떻게 나왔을까. 이 질문을 듣고 대통령은 '내수경제 위축 = 김영란법'이란 공식을 급하게 발동시키지 않았을까. 질문자는 핵심이 되는 질문인 '김영란법' 전에 내수경제니 임시공휴일이니 공직자 골프 등 박 대통령이 혹할 만한 '밑밥'을 깔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그 미끼를 바로 물었다.

김영란법=내수경제 위축?

박 대통령 :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에 대해서는 실제 저는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게 법으로 통과가 됐기 때문에 어쨌든 정부로서도 시행령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간이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해서 그러면 선물 가격을 얼마로 상한선을 하느냐 이런 게 다 시행령에 들어가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하려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의무니까 시행령을 만드는 것은, 한편으로는 위헌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걱정스러워요. 좋은 취지로 시작했던 게 내수까지 위축시키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헌재에서 결정을 또 하면 거기에 따라야 되겠지만 국회 차원에서도 한번 다시 검토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자. '김영란법' 취지 말이다. 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이란 명칭에 함축돼 있다. 하지만 질문자는 "한우축산농가라든지 화훼농가, 과일 재배하는 사람들, 식당" 등의 생존권을 언급하고 대통령이 민감해하는 '내수경제'까지 연결하는 탁월한(?) 유도심문을 성공시켰다. 앞서 박 대통령은 '공직자 골프' 역시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휴식도 하면서 내수 살리는 데 기여를 하겠다 이런 마음도 가지고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지나치지 않으면서 국민들이 받아들일 때 내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좋다 이렇게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김영란법'이 세월호 참사 직후 박 대통령이 언급한 "관피아 척결"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대통령 본인도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촉구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관피아 척결'보다 '내수경제 활성화'가 먼저란 말인가. 아니, '김영란법'의 기준 금액을 100만 원 이하로 책정하면 죽었던 내수경제가 보란 듯이 일어나나. 정말 100만 원 이상인 고가 선물들이 내수경제의 한 축인 농축산업자와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김영란법'을 훼손할 게 아니라 또다른 정책과 법안으로 보완책을 작동시켜야 할 것 아닌가.     

<내부자들> 속 이강희 주필이 떠오른다 

 영화 <내부자들> 속 이강희 <조국일보> 주필(백윤식 분)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흥미로운 점은 한 언론사 편집국장이었을 질문자의 의도다. 다분히 김영란법을 손봐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주문한 '저의' 말이다. 지난 2년간 '김영란법'이 논란의 도마에 오르면서 지지한 쪽은 대통령과 국민들이었다. 새누리당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동력을 낼 수 있었던 요인도 바로 대통령의 촉구와 국민 여론이 있어 가능했다.

반면 언론은 주춤하는 형국이었다. 공직자는 물론 언론사 임직원까지 포함된 법 적용 범위로 인해 간간이 '표현의 자유의 위축'을 거론하는 언론사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일부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걱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간단하다. "100만 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는 언론사 직원이 몇이나 될까.

'김영란법'의 원안 시행이 껄끄러운 이들은 영화 <내부자들> 속 이강희 주필과 같은 언론 권력자들 뿐이지 않을까. "국민들은 개돼지와 같다"고 떠들던 그 이강희 주필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영란법'을 걸고 넘어진 질문자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김영란법'은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9월 시행 예정이다. 이미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리고 작년 연말, 19대 국회의원들은 '김영란법' 19대 국회 "최고의 법"으로 꼽았다.

아무리 19대 국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김영란법'은 그대로 놔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이제라도 받들겠다는 '민의'에 가까워지는 방법 중 하나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던 박 대통령이 그나마 잘한 일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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