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새판 짜야 한다]'불황 고통' 거제·울산을 가다
[경향신문] ㆍ거제 인구 70% ‘살길 막막’
ㆍ대우조선·삼성중공업, 올 수주 ‘0’…관련업체 잇단 폐업에 체불임금 90억 ‘1년 새 3배’

| 텅 빈 공장경남 거제시 연초면 한내공단 내 한 협력업체의 작업장이 24일 텅 비어 있다. 이 업체는 이날로 폐업 40일째이며 공장 매각을 준비 중이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지난 21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거제고용센터. 실업급여 신청과 재취업을 문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상욱씨(32)는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로 5년여를 근무하다 지난 10일 회사의 폐업으로 실업자가 됐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앞에서 만난 하모씨(53)는 조선소 분위기를 묻자 “지난주에만 3개 협력업체 사장이 임금을 체불하고 도망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올해 협력업체 폐업수는 벌써 21곳. 2012년 4곳, 2013년 17곳, 2014년 26곳, 지난해 35곳으로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다.
조선경기 불황으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거제 양대 조선소 및 협력업체들에 부는 구조조정 회오리바람이 거세다. 특히 이른바 ‘물량팀’ 소속 노동자 2만여명은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물량팀은 기간을 정해 놓고 위험한 작업을 도맡아 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다. 종전에는 수주가 많아 한 작업장에서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작업장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지금은 ‘수주 절벽’으로 사정이 바뀌었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은 올 들어 해양플랜트 등의 수주를 단 한 건도 못했다.
이들 조선소 사외 협력업체들이 모여 있는 거제시 연초면 오비일반산단. (주)장한은 지난해 9월 기업회생 신청을 하면서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떠나고 지금은 50여명만 남았다. 거제시 사등면 성내협동공단 내 (주)신성 이성신 대표(60)는 “가장 시급한 것은 모기업인 대우조선·삼성중공업이 일감을 따오는 일”이라며 “정부도 조선사들이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업체의 체불임금도 늘고 있다. 거제와 통영, 고성 지역의 체불임금 규모는 올해 1~3월 3개월 동안 90억원(120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9억원(982건)보다 3배 정도 늘었다. 이들 조선소 노동자는 정규직과 협력사원, 임시직을 모두 포함해 대우조선해양 4만5000여명, 삼성중공업 4만여명 등 8만5000여명에 달한다. 거제시의 전체 인구수는 25만명. 노동자와 그의 가족을 포함하면 전체 인구 70% 정도가 조선업 불황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단체들은 고용노동부에 거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도록 촉구했다.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되면 실업급여 특별 연장 지급과 일자리 사업 등에서 정부 지원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다.
휴일인 24일 점심시간, 울산시 동구 전하동의 한 식당. 현대중공업 직원 4~5명이 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남성이 “작년에는 그나마 버텼는데, 올해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며 운을 떼자 동석한 사람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남성은 “퇴직 인원도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많고, 퇴직을 한다고 해도 어디 갈 곳이 없으니 정말 막막하다”면서 “집에 들어가면 내가 혹시 이번에 회사 일을 그만두지 않을까 염려하는 아내 눈치도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했다.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 방침에 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하다. 사무직은 물론 생산직 고참급 직원들을 중심으로 명예퇴직 또는 희망퇴직 형태로 감원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이후 노동자들은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사업부 생산직 직원 김모씨(50)는 “최근 잇따른 산재사고로 불과 며칠 전 ‘안전하고 좋은 직장을 만들자’고 다짐했는데, 돌아서자마자 구조조정 얘기가 흘러나오니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선사업부에서 34년째 생산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박모씨(55)는 “조선업이 호황일 때 연봉이 1억5000만원이나 됐지만, 지금은 6000만원 정도를 받기도 힘들다”고 했다.
노조는 이번 감원 규모와 대상에 관해 사측에 문의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 종사자(총 6만여명) 중 정규직은 2만5000여명이고, 나머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하창민 사내하청노조지회장은 “비정규직들은 원청사의 정규직처럼 늘 일을 하다가 쫓겨나는 ‘해고’ 개념과 다르다”면서 “하청업체의 수주 물량이 없고 공사 계약이 해지되면 그날부터 곧바로 일터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사업의 극심한 부진 때문에 올 연말까지 최대 1만여명의 비정규직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때 세계 조선업계 1위의 현대중공업이 위치해 ‘풍요로운 조선 공화국’으로 유명했던 울산 동구의 분위기도 지금은 매우 어둡다.
동구 전하동에서 120㎡ 크기의 한식집을 운영하는 서모씨(48)는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족 단위의 손님은 눈에 띄게 줄었다”며 “구조조정 분위기 탓에 주머니를 닫고 있다”고 말했다.
<백승목·김정훈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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