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朴대통령과 이란

기자 2016. 4. 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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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 논설위원

박정희 정권과 팔레비 왕조 시절, 한국과 이란은 유사점이 많았다. 양국 모두 친미·반공 국가로서, 위로부터의 급진적 근대화를 추구했다. 1979년에 정권이 위기를 맞이한 것도 비슷하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부작용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부마항쟁과 10·26 사태가 일어났으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급진적 민주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1987년 6월항쟁 이후 점진적 민주화로 나갔다. 반면 이란은 1979년 2월 11일 혁명정부를 수립했으나, 곧 혁명세력 간의 피어린 내전이 전개됐으며, 1980년 9월 이라크의 침공으로 1988년 8월까지 혹독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팔레비 왕조를 반대하던 좌익 및 리버럴 지식인이 정치적으로,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말살된 것은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정부에서다. 이란 공산당인 투데(Tudeh)당과 진보적 반(反)팔레비 조직인 ‘모자헤딘할크’는 혁명 초기엔 ‘이슬람 공화국’에 참여했다. 그러나 곧 급진적 이슬람화에 반대해 내전을 벌였다. 그리고 ‘1988년 7월 대학살’ 때 전멸당했다. 이라크와의 휴전을 앞두고 호메이니가 이슬람 정권 수호 차원에서 이들의 집단처형을 명령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팔레비 정권을 비판하던 서구의 진보 지식인들이 ‘이란 진보세력’의 몰살에 대해선 침묵을 지킨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달 1∼3일 이란을 국빈방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원유 매장량 세계 4위인 자원 부국이자 인구 7800만의 중동 최대 내수시장인 ‘이란 특수’를 잡고, 이란의 예를 통해 ‘핵·경제 병진 노선’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보내기 위함이다. 한국과 이란은 수교를 맺은 지 54년이나 됐건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양국 정상이 회담한 적도, 상대국을 방문한 적도 없다.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팔레비 당시 이란 국왕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이듬해 이란혁명과 10·26사태로 무산됐다.

하여튼 이란은 이제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개혁·개방에 나서고 있다. 이로써 첫 한국·이란 정상회담도 이뤄지게 됐다. 1979년 이후 한국과 이란이 걸어온 길을 비교해 볼 때, 아버지가 초청받은 지 38년 만에 이란 땅을 밟게 되는 박 대통령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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