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예전 며느리 찾는 치매 시어머니.. 웃으며 받아주는 올케, 고마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말이 있지요. 겉으로는 말리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즐기고 있는 시누이의 심리가 올케의 눈에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시누이 올케 간의 ‘계급’ 차이도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손님은 이미 잘 알고 계시네요. ‘유병 장수’하시는 부모님을 올케에게 맡겨두고, 시누이가 큰소리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요. 올케에게 전권을 맡기고, 이런저런 곁 소리 없이 거들기만 하는 게 내 몫의 효도라는 것을요. 더구나 같은 여자로서 올케의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시누이이니….
홍여사 드림
올해 여든셋이신 친정 엄마를 뵈러 동생 집에 갔다가, 우연히 옛날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 속에는 아버지도 생존해 계셨고, 어머니는 아직 육십대의 '청춘'이시더군요. 저희 부부는 사십대, 남동생과 여동생 내외는 아직 마흔도 안 된 진짜 청춘들이고요. 사진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부모님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정정하실 줄 알았고, 오히려 저 자신은 이미 세상 이치를 꿰어버린 늙은이인 줄 알았습니다. 이십여 년이 흐르고 보니, 제가 참 어리석었습니다.
사실 그 사진을 찍을 당시의 우리 친정 분위기가 그다지 편치를 못했습니다. 남동생 내외가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고부 갈등'이 원인이 되어서 말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남들이 흔히 겪는 고부 갈등은 아닙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부딪치는 게 아니라, 효자 남편과 자기주장 강한 아내가 주로 부딪치고 있었으니까요. 제 남동생은 구식 사고방식을 가진 장남입니다. 세세하게 표현은 안 해도, 부모님에 대해 책임감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올케는 부부 중심으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요즘 며느리였고요. 동생 내외는 그 문제로 갈등이 심했습니다. 똑똑하고 잘생긴 아들에, 사업도 나날이 번창하는데도 두 사람의 기색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올케가 집안 행사에 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내외가 따로 지낸다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때 저는, 갈라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 시집살이도 못 하겠다고 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참 오만했습니다. 저는 '효자'와 결혼하지도 않았고, 맏며느리도 아니어서 시집 스트레스는 잘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나의 친정 엄마는 좋은 시어머니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있었고요. 그러나 지난 이십년 새 저 역시 시부모님 병간호 문제로 형제 간 불화를 겪어보니, 그때 그 일이 후회됩니다. 자식 낳고 살던 동생 부부가 갈라선다는데, 그렇게 입찬소리만 하며 강 건너 불구경 식이었다는 게 참 한심합니다. 지금 같으면 달리 말하겠지요. 부모님은 우리 딸들이 더 신경 쓸 테니, 당분간 효자 노릇 중단하고 헝클어진 부부금실이나 가꾸어보라고요. 아직 엄마 손길이 절실한 어린 조카를 생각해서라도 그랬어야 하는데….
결국 동생 내외는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아들 녀석을 데리고 몇 년을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재혼을 했죠. 그리하여 지금의 올케가 우리 집 맏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사람이 우리 올케입니다. 십대이던 조카 녀석을 잘 어르고 품어 준 게 우선 고맙지요. 그리고 그보다 더 고마운 건 우리 친정 엄마 때문입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움츠러든다고, 우리는 올케에게 며느리 노릇은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이번엔 둘이 재미나게 잘 살아주기만 바랐지요. 그건 남동생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러나 올케가 자진해서 맏며느리 역할을 다하더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삼년 전부터는 아예 합가를 해서 모시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장성한 아들이 집을 떠나고 뒤늦게나마 신혼부부같이 오붓하게 지낼 만한데, 이번엔 노모를 모시게 되다니…. 시누이로서 너무 미안하고 염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말릴 수도 없었어요. 어머니를 굳이 한집에 모셔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저희 친정 엄마는, 몇 년 전부터 가벼운 치매 증세를 보이고 계십니다. 혼자 생활하시도록 놔두기에는 좀 불안한 지경에 이미 이르렀는데, 이번에도 딸들이 미적대는 사이에 아들 내외가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저도 나름 거들려고는 합니다. 지난주에도 반찬을 만들고, 장을 봐서 올케한테 다녀왔습니다. 거기 가면 다만 한나절이라도 올케에게 쉴 틈을 만들어주고, 올케가 하기 어려운 일을 제가 대신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고집 부리는 엄마를 나무라고 달래는 것도 제 몫이지요. 갈 때마다 조금씩 더 어린애가 돼가는 엄마를 보며 이제 이런 식의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서글픈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서글픔을 넘어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멀쩡하던 엄마가 갑자기 올케를 못 알아보고, 우리 며느리 어디 갔느냐고, ** 엄마 빨리 데려오라 하시는 겁니다. 당황스럽게도 엄마는 예전 올케를 찾고 계신 모양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어찌할 줄을 모르겠는데, 오히려 올케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칩니다. "내가 ** 엄만데 누굴 찾으셔, 엄니~."
올케한테 사정을 들으니, 벌써 한참 됐다 합니다. 멀쩡하시다가도 갑자기 ** 엄마 타령하시며 찾으신지가요. 그러고는 사진을 한 장 꺼내더군요. 어머님이 이 사진까지 찾아내서 보여주며, 이게 우리 며느리라고, 이렇게 인물이 좋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고 자랑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하면서 올케가 껄껄 웃는데, 그 웃음 뒤끝이 어찌나 씁쓸하고 아프게 들리던지요. 아무리 대틀인 사람이라 해도 마음이 상했을 테지요. 자기 자식 하나 낳지 않고, 전실 자식 키우며 시부모 봉양을 했는데 십년 공을 들인 끝에 이런 소리나 듣는다니요. 그리고 저도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다지 살뜰한 고부 사이도 아니었고, 내 아들 신세만 오그려놓았다고 원망하던 사람을 이제 와 왜 찾는지….
며느리 밥상을 어여쁘게 받아 먹지 못하고, 저런 망령을 부리는 엄마가 속상하고, 우리 엄마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합니다. 그리고 올케에게도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큰 소리로 하고 싶네요. 우리 엄마한테는 아들도 딸도 그 누구도 아닌, 올케가 최고의 자식이라고요. 부디 넉넉한 마음으로 울 엄마를 참아 달라고요.
이메일 투고 mrsh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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