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오래전 '이날']4월19일 프루나에 떠도는 이력서

배문규 기자 2016. 4. 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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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래전 ‘이날’]은 1956년부터 2006년까지 매 십년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2006년 4월19일 P2P에 떠도는 개인정보

2000년대 인터넷 공유는 프루나·당나귀 같은 P2P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이용자가 공유할 폴더를 설정해놓으면 P2P에 접속한 다른 이용자들이 해당 폴더 안에 있는 파일들을 자유롭게 다운로드받는 방식이었죠. 이에 따라 여러가지 사회문제도 파생됐는데요. 프로그램 공유설정을 잘못해놔서 같은 폴더에 있던 개인 이력서까지 공유가 된 것이죠. P2P 프로그램에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로 검색하면 주민등록번호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파일들이 수백, 수십 건씩 검색됐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 있으셨나요?

■1996년 4월19일 주목받는 초선들

1996년 4·11총선에서 처음 국회에 진입한 의원 중 법조계 출신은 18명, 재야운동권은 1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공부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며 구시대 정치꾼 주도의 ‘줄서기 정치’를 쇄신할 실력을 갖춰나가겠다”며 의욕을 내비쳤는데요. 법조계 출신들은 정부입법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졸속입법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말했습니다. 법조계 출신으로는 천정배, 안상수, 홍준표 등이 주목받았고, 유선호, 김학원, 송훈석, 이성재, 추미애, 김영선 등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재야운동권에선 김근태, 이우재, 이재오, 김영환, 이신범 등이 주목받았습니다. 이들이 초심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요. 스스로 매긴 점수가 궁금합니다.

■1986년 4월19일 구설수 오른 ‘금빛 디자인’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에 있는 옛 신용보증기금 본사. 신용보증기금이 대구로 옮긴 지금은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평범한 오피스빌딩으로 보이는 이 건물이 준공 당시에는 화제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황금색’ 때문이었습니다.

“출입문이 금으로 만들어진 호화판 빌딩” “금덩어리 값만도 14억” 둘레에 거울유리가 붙어있고 출입문이 금빛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이러한 소문이 돌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졌고, 유리도 색깔만 금색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빛 옷을 입고 있어서 마포 일대 주민들이 몰려와서 출입문을 만져보기도 하고, “왜 이렇게 사치를 부렸나”며 화를 내기도 했답니다. 기금 측에서는 금이 아니라고 해명할 수도 없어서 난처했다고 합니다.

■1976년 4월19일 상춘객 만원

1976년 4월 셋째주 주말에는 100만여명의 행락 인파가 몰렸다고 합니다. 창경원(창덕궁)에는 20만명이 입장해 극도로 혼잡했다고 합니다. 미아도 200여명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도 ‘원색의 등산복 차림’을 한 상춘객들이 버스터미널에 몰렸다고 합니다. 등산복 소재가 ‘고어텍스’로 바뀌었을뿐 등산객 모습은 비슷했네요. 기사 마지막이 풍기사범을 적발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는 게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네요.

■1966년 4월19일 4·19 여섯돌

이날 경향신문 1면 머릿기사는 4·19 여섯돌 스케치 기사였네요. “지금부터 6년 전의 이날 독재와 부정을 보다못해 분기한 젊은 학생들은 조국의 역사 위에 피를 바치면서 혁명을 수행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도시를 휩쓴 이날의 학생봉기로 자유당의 독재정권은 쓰러지고 만 것이다. 4·19는 이래서 우리 현대사에 큰 전환점을 가져오게 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총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4·19는 부정과 불의와 횡포에 대항한 순수한 저항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자유민권운동이다”라면서 “이 숭고한 정신을 조국의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역사창조 횃불의 출발점이 되자”고 했습니다.

■1956년 4월19일 야당 벽보에 검은칠을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선 야당이 내건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큰 인기를 끌었죠. 이에 따라 벽보 훼손 등 정치테러도 많았나봅니다. 이를 풍자한 경향신문 만평이네요.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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