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비하 개그, 어디까지 가려 하니

입력 2016. 4. 17. 19:06 수정 2016. 4. 1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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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코미디 빅리그 ‘충청도의 힘’
한부모 가정 아이와
아동 성추행까지 웃음소재로
논란 커지자 결국 코너 폐지

“사회가 말초적 웃음에 길들여져”
“위를 향해야 할 풍자가 아래로”
‘웃음의 본질’ 성찰 목소리 커져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티브이엔>(tvN)의 개그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에서 3일 방송된 ‘충청도의 힘’이 한부모 가정의 아이와 어린이 성추행 문제를 웃음거리로 삼아 논란이 됐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해당 개그맨과 제작진의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요즘 개그프로그램에 만연해 있는 사명감 부재와 몰상식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방송사 안팎에서 나온다.

이에 더 늦기 전에 ‘개그프로그램의 역할과 웃음의 본질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진짜 웃음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개그맨과 제작진조차 개그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며 “말초적 웃음에 길들여져 있는 풍토가 낳은 참사”라고 말했다.

티브이엔(tvN)의 개그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의 한 장면. 사진 각 방송사 제공

■ 부모 이혼이 아이한테는 재테크? ‘충청도의 힘’ 내용은 이렇다. 극중에서 부모가 이혼해서 따로 사는 아이 양배차가 엄마한테 장난감을 선물받았다고 자랑하자, 7살 장동민이 말한다. “쟤네 아버지가 양육비 보냈나 보네.” 친구 조현민이 “애 들어, 쟤 때문에 갈라선 걸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데”라며 이혼 사유가 아이한테 있다고 거든다. 이어 “너는 얼마나 좋냐. 생일 때 선물을 양쪽으로 받잖아. 이게 재테크여”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른 여자랑 두 집 살림 차렸다고 소문이 아주 흉흉하게 다 돌고 있어” “지그 애비 닮아서 여자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네” 등 한부모 가정 아이의 상황을 비튼 조롱이 이어진다.

티브이엔(tvN)의 개그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의 한 장면. 사진 각 방송사 제공

할머니 황제성을 통해서는 어린이 성추행을 미화하는 듯한 대목도 나온다. 장동민은 장난감을 사려고 “우리 나이에 목돈 만들려면 그 수밖에 더 있겄냐. 나 할머니 앞에서 고추 깔 꺼여”라고 말한 뒤, “내가 죽어야지”라고 신세 한탄하는 할머니한테 자신의 ‘고추’를 만지게 한다. “아이고 우리 동민이 장손 고추 한번 따먹어보자. 이제 할매 살겠다. 이제야 내가 숨통이 트이네.” 그 옛날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귀여워서 하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할머니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장동민은 울먹이면서 친구한테 말한다. “(내가) 한번 까서 사람 한 명 살렸잖아.”

<코미디 빅리그> 제작진은 14일 <한겨레>에 “어른들의 나쁜 생각이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씁쓸한 웃음을 의도한 코너였다”고 해명했지만, 한부모 가정 아이의 상황을 희화하고 어린이 성추행을 미화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많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는 “‘너 때문에 부모가 이혼한 것이다’라는 말은 이혼 가정 자녀한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고, 어린이 성추행은 명백한 성범죄”라며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소재를 거르지 않고 내보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부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여성 외모 → 한부모 가정으로, ‘비하 개그’의 퇴보 윤석진 교수는 “사회적 약자를 개그의 소재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이 세태 풍자나 성찰을 담지 않고 비하와 희화로만 드러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 풍자하는 이른바 ‘비하 개그’는 흑백텔레비전 시절인 <웃으면 복이 와요> 때부터 등장했을 정도로 ‘개그의 기본’으로 통한다. 개그맨들은 “가장 쉽게 웃길 수 있는 게 비하 개그”라고 말한다. 정치인과 재벌 등 권력자를 향한 조롱과 비하는 시대를 반영하며 막힌 속을 풀어주는 순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비하의 대상이 빗나가는 경우가 늘면서 논란도 잦았다. 주로 여자의 외모를 문제 삼았고, 200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는 특정 직업, 연예인, 장애인 등을 도마에 올렸다. 실제 2002년 <개그콘서트> ‘바보 삼대’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성적 농담을 하는 내용이 포함돼 여성민우회가 꼽은 ‘최악의 방송’에 선정됐고, 2006년 <개그콘서트> ‘버릇 뉴스’에선 틱 장애를 가진 이들의 행동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2014년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는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딸 추사랑을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묘사하는 등 대상은 아이로 옮아왔다. 지상파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한 개그맨은 “여권이 신장되면서 외모 비하에 대한 반발이 커졌고, 종교 비하도 논란이 잦으면서 목소리를 내는 대상을 피하려다 보니 비하 대상이 점점 더 약자를 향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개그프로그램을 연출했던 지상파 예능 피디도 “‘충청도의 힘’에서는 아이 중에서도 상처가 있는 한부모 가정 아이와 성추행을 당하는 아이한테로까지 번진 모양새”라며 “더 약한 자를 건드리면서 비하의 강도도 더 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풍자와 조롱이 말초적 웃음만 끌어낼 뿐, 과거와 달리 사회 통찰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2004년께 <폭소클럽>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흉내 냈던 ‘블랑카’ 정철규는 초반 이주노동자를 비하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주노동자가 당하는 현실과 문제점 등을 담아내면서 오히려 대변자 구실을 했다. 다른 예능 피디는 “옛날 코미디가 페이소스가 있고 통렬한 풍자가 있었다면 지금은 세상을 담지 못하는 말초적 웃음을 지향하는, 웃음의 본질적 위기”라고 말했다. 또다른 예능 피디는 “예전 바보 연기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오정의 개념이었다면, 요즘은 바보 개그의 70~80%가 단순히 장애인의 표정이나 말투, 행동을 따라 하며 웃긴다. 장애인이나 한부모 가정 아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사람’이기에 비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이들을 다르게 보는 세상을 비하해야 하는 게 개그프로그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풍자는 위를 향해야 하는데…” 비하의 대상이 점점 더 약자로 변한 것은 깊이가 얕아지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줄어드는 현실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지상파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한 개그맨은 “코미디의 풍자는 위를 향해야 하는데, 지금은 위를 향할 수 없으니 아래를 보는 것 같다. 통렬함은 가진자에 대한 공격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힘없는 사람들이 상처받을까를 고민하기보다는 힘 있는 사람들이 언짢지 않을까를 더 신경쓰게 되면서, 진짜 비하 개그를 못 하니 다른 쪽을 겨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짤방’과 카드뉴스가 유행하는 등 그저 잠깐 보고 웃는 웃음에 길들여진 사회가 낳은 부작용이라는 의견도 있다. 세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으니 페이소스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상파의 또다른 예능 피디는 “시청률 경쟁도 무시하지 못한다. 예전처럼 진득하게 기다려주지 않으니 빨리 웃겨서 존재감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외부 상황이 어렵더라도 개그맨과 제작진의 분발을 촉구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을 담지 않은 이런 비하 개그가 계속된다면 자칫 개그프로그램 전체가 위기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진 교수는 “성찰을 전제로 한 웃음이 코미디의 본질이다. 요즘 개그프로그램들이 외면받는 이유도 성찰을 담지 못한 웃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개그맨과 제작진이 우리 사회 개그프로그램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미디 빅리그> 제작진은 논란이 일자 ‘충청도의 힘’ 꼭지를 폐지하고 다시보기도 삭제했다. 제작진은 “관련자에 대한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이다.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퇴출, 징계, 폐지를 운운하기보다는 개그프로그램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응원하는 목소리도 필요하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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