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야후의 쇠락

이재훈 2016. 4. 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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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개봉된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프리퀀시'는 얼마 전 히트한 국내 TV 드리마 '시그널'과 설정이 비슷하다. 1999년의 아들과 1969년의 아버지가 무선 라디오로 연결되면서 시공을 뛰어넘는 서스펜스를 펼친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은 과거를 사는 친구에게 "네게 마법의 단어를 알려줄게. 야후야! 이 단어를 절대 잊지 마"라고 당부한다. 이 말을 기억한 꼬마 친구는 30년 후 야후 주식으로 대박을 내서 'YAHOO'라고 쓴 번호판을 단 고급 벤츠차를 몰고 다니게 된다. 당시 정보기술(IT) 공룡이었던 야후의 위세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구글과 네이버, 페이스북에 앞서 일찍이 '포털 원조' 야후가 있었다. 1994년 대만 출신 제리 양이 스탠퍼드대 동료 데이비드 필로와 함께 카테고리 형식으로 웹 페이지를 정리한 소프트웨어를 내놨고, 이듬해 포털사이트로 바꿨다. 원하는 웹사이트 주소를 기억했다가 직접 써넣어 접속해야 했던 초기 인터넷 이용자들은 폴더별로 원하는 사이트가 정리된 야후를 보고 환호했다. 야후는 2000년대 초 한국에서도 검색시장 점유율 80%를 기록했던 최강자였다.

그런 야후도 최강의 검색엔진으로 무장한 구글의 등장에 급전직하했다. 웹사이트를 사람이 분류하도록 하고, 자동 검색엔진 개발에 소홀했던 야후는 한 단어만 입력하면 원하는 결과를 단번에 찾아주는 구글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게다가 2004년 등장한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란 새 영역을 개척하면서 야후의 입지를 더욱 좁혔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한 이후 소비자는 야후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게 됐다. 2007년 창업주 제리 양이 최고경영자(CEO)로 나서 만회하려 애썼으나 소용없었다.

야후가 최근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그래도 쓸 만하다는 인터넷사업부를 매각한다. '미래기업'으로 각광받으며 나스닥에 상장된 지 20년 만이다. 수많은 인수희망자가 몰려들어 인수전이 뜨겁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통신회사 버라이즌 등 글로벌 IT기업은 물론 영국 데일리메일, 시사주간지 타임을 거느린 뉴스코프 등 미디어기업들의 관심이 높다고 한다.

야후는 어느덧 IT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뒤처진 소니, 노키아와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핵심사업을 매각한 돈으로 SNS '텀블러'를 비롯한 모바일을 중심으로 투자를 한다는 계획인데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IT세상에서 정신줄 놓으면 한순간 훅 간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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