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애기중의무릇 대군락지, 경북 칠곡의 가산산성








올해도 날씨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꽃들은 덩달아 난리입니다. 순서를 망각한 채 매실나무, 살구나무, 산수유, 목련, 벚꽃 등등이 마구 어우러져 피어납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것으로 알려진 개나리가 이제는 서둘러 잎과 함께 꽃을 피웁니다.
서울 도심에서는 응봉산 개나리축제(4월 1일~3일)가 끝나자마자 윤중로 벚꽃축제(4월 4일~10일)가 바통을 이어받는 것도 특이합니다. 가을처럼 큰 일교차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여름 같은 더위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면 기온이 뚝 떨어져 다시 두꺼운 옷을 꺼내 입게 하는 것도 전에 못 보던 현상 같습니다.
사람들도 그러니 꽃들은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그래도 사람은 옷이라도 입지 꽃들은 그럴 수도 없으니 오로지 맨몸과 정신력으로 버텨야 합니다. 왔는가 싶을 때 후딱 가버리는 봄이 점점 아쉽게 느껴집니다. 어떤 유행가처럼 벚꽃과 함께 엔딩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봄입니다.
내륙지방인 경북 칠곡군의 가산산성에도 봄이 빨리 오기 시작했습니다. 해발 901m 지역에 있는 가산산성에서는 온대 중부의 대표적인 식생 상태가 나타납니다. 경상권과 강원권의 산지와 비슷한 식물 분포 양상입니다.
현재 산성 지역 및 주변에는 100여 과 44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산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여러 코스가 있습니다. 그중 가산산성지구 탐방지원센터가 있는 진남문 방면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비교적 힘들지 않으면서 여러 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주차하기도 편하고요.
여유롭게 이것저것 보고 가면서 3.6㎞의 거리를 두 시간 정도만 올라가면 산성 동문이 나타나 약간 싱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4월경이면 등산로 초입에서 내 얼굴 좀 보고 가라는 작은 식물이 올라옵니다. 외면하지 않고 가서 찬찬히 들여다보면 연복초구나 하게 됩니다. 연복초라는 이름은 복수초를 캘 때 연달아 나오는 풀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것은 채집과 표본을 하기 위해 식물을 캐본 식물학자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것이 분명합니다. 작은 풀꽃이지만 알고 보면 재미난 식물입니다. 연복초는 줄기 끝에 5개 정도의 꽃이 꽃자루 없이 모여 달립니다.
그중 머리 쪽에 위를 향해 달리는 1개의 꽃은 꽃잎처럼 보이는 화관이 4갈래로 갈라지고 수술은 그 2배수인 8개가 달립니다. 주변부에 옆을 향해 달리는 4개의 꽃은 화관이 5갈래로 갈라지고 수술은 그 2배수인 10개가 달립니다. 이런 특이한 꽃 구조를 하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주변부에 달리는 꽃들만 열매를 맺는 점을 보았을 때 머리 쪽에 달리는 꽃은 결실보다 곤충의 유인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복초 자세히 알기>
산성을 향해 오르다 보면 생강나무, 굴참나무, 느티나무, 물오리나무, 백당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시무나무, 쥐똥나무, 딱총나무, 쪽동백나무, 철쭉과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들이 나타납니다. 서어나무 같은 경우에는 잎보다 먼저 꽃이 일찍 피고 또 키가 무척 큰 나무라 꽃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높지 않은 높이에 달리는 꽃을 맘껏 볼 수 있습니다. 서어나무는 암수 한그루로, 암꽃과 수꽃이 함께 달립니다. 언뜻 꽃이라고 알아보기 어렵게 생긴 벌레 같은 것이 아래로 늘어져 달립니다. 화려하게 치장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으므로 가장 경제적인 꽃을 만들어 내단 것입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꽃가루받이의 매개자인 곤충이나 새 같은 동물입니다. 곤충을 이용하면 충매화, 새를 이용하면 조매화라고 부릅니다. 서어나무는 바람을 이용하는 풍매화입니다. 그저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하므로 바람에 꽃가루가 잘 날리도록 아래로 늘어져 달리는 형태의 꽃을 피웁니다.
같은 풍매화인 소나무 같은 겉씨식물을 떠올리면 곤충보다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나무들이 고등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속씨식물에서 서어나무 같은 풍매화 나무들은 목련 같은 충매화 나무들보다 더 고등한 식물로 여깁니다.
뽕나무나 팽나무 같은 나무의 풍매화도 마찬가지라 나무도감을 보면 원시적인 형태의 꽃을 가진 목련 종류보다 뒤쪽 페이지에 나옵니다.
가산산성을 오르다 만나게 되는 서어나무 중에는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펼치는 녀석이 있습니다. 낯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저 사랑에만 몰두하는 녀석입니다. 누가 손가락질하더라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소나무를 뱀처럼 칭칭 감고 자랍니다. 이런 현상을 흔히 혼인목이라고 부릅니다.
한때 우리나라의 극상림을 이루는 나무가 소나무냐 서어나무냐를 놓고 논쟁이 있었을 정도로 침엽수와 활엽수를 대표하는 두 나무의 혼인이니 주례는 은행나무가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고요? 은행나무는 활엽수처럼 넓은 잎을 가졌지만, 침엽수로 보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서어나무 자세히 알기>
산성 정상까지 올라가면 이곳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립니다. 주인공은 애기중의무릇입니다. 무릇도 알고 중의무릇도 알겠는데 애기중의무릇은 또 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애기중의무릇은 경북 이북의 산지에서 자라는 흔치 않은 식물입니다.
중의무릇이라는 것과 비슷하지만, 체구가 매우 작고 땅속의 비늘줄기가 흑갈색이며 잎의 폭이 실처럼 가느다란 점이 다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쩌다 발견되나, 가산산성 정상에는 대군락을 이뤄 자랍니다. 무더기 군락을 보는 행복감이 엄청난데, 혹시 저 같은 사람만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애기중의무릇 자세히 알기>
그곳에는 애기중의무릇과 함께 대군락의 지분을 나눠 가진 개별꽃 종류가 있습니다. 대부분 꽃줄기가 긴 게 태백개별꽃으로 보입니다. 태백개별꽃은 발표만 되었을 뿐 아직 정식으로 등재되지 않은 종입니다. 개별꽃이나 큰개별꽃과의 유사성도 있고 해서 좀 더 폭넓은 지역에서 면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가산산성에는 제비꽃 종류가 많습니다. 4월 중순이면 남산제비꽃, 노랑제비꽃, 고깔제비꽃, 태백제비꽃 등이 나타납니다. 시기를 조금만 늦춰서 가면 흰털제비꽃이라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흰털제비꽃은 잎자루와 꽃줄기에 기다란 흰색 털이 밀생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비교적 드문 편이지만 가산산성에서는 곧잘 눈에 띕니다.
<흰털제비꽃 자세히 알기>
수도권에서 간다면 가깝지 않고 또 봄에는 갈 곳도 많아 망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시거나 말거나 가산산성은 제 품의 꽃들을 올해도 한껏 피워낼 것입니다. 내륙이고 900m가 넘는 지역이니만큼 다른 곳보다 봄이 좀 더 길게 머물다 갈 것이 분명합니다.
올해는 바빠서 봄을 못 즐겼다 싶으시면 가산산성으로 가서 남은 봄과 후회 없는 밀회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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