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민, 사과, 그리고 다시 장동민

하성태 2016. 4. 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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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의 사이드뷰] 1년 만에 다시 피소된 한 개그맨에 대하여

[오마이뉴스하성태 기자]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 '충청도의 힘'은 이혼 가정 아동에 대한 조롱만이 아니라, 아동 성추행 장면을 담기도 했다.
ⓒ tvN
'차별 없는 가정을 위한 시민 연합'(이하 차가연)이 7일 오후 개그맨 장동민을 비롯해 황제성, 조현민, 그리고 tvN과 <코미디 빅리그>(아래 <코빅>) 제작진 모두를 모욕죄 혐의로 고소했다고 한다. 지난 3일 방송된 <코빅>의 '충청도의 힘'이 이혼 가정 아동을 조롱했다는 이유다. 앞서 6일 오후 이혼 가정 아동 조롱, 노인 비하, 아동 성추행 등이 포함된 방송 내용이 논란이 되면서 제작진의 개별 매체를 통한 사과와 장동민 측의 해명이 이어진 바 있다.

[관련기사] 한부모가정 단체, <코빅> 제작진과 출연진 고소

# 1. 고소

차가연 측은 형사고소와 더불어 집단 민사소송은 물론 탄원서 제출까지 병행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모욕죄는 전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차가연의 대응은 이례적이고 또 강경하다. 차가연 측은 <오마이스타>에 이렇게 밝혔다.

"사회적 약자의 상처를 후벼파는 연예인들과 시청률 올리기에 혈안이 돼 문제의식 없이 이를 방송에 내보내는 제작진과 방송국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고소를 결정했다."

특정 프로그램을 향한 타깃팅이나 개별 시민단체가 벌이는 저격용으로도 보이진 않는다. 대신 약자나 소수자 차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차가연 측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제작진과 방송국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장동민을 위시한 출연자만 고소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엔 역시나 장동민이 자리한다.

시계를 1년 전 이맘때로 돌려 보자. 작년 4월 27일, 삼풍백화점 사고의 한 생존자가 장동민을 모욕죄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2014년 8월 공개된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아래 <옹꾸라>)에서 여성 혐오 등 각종 비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장동민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시기였다.

이 생존자는 옹꾸라의 내용 중 "오줌을 먹고 살아났다" 등과 같은 발언을 문제 삼았다. 결국 장동민과 유세윤, 유상무 등 옹달샘 멤버들의 사과 기자회견 등 2주간 논란이 이어진 끝에 생존자는 고소를 취하했다. 당시 장동민의 소속사 측은 고소인과 장동민 간에 손편지가 오고 갔다며 그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장동민은 다시 피고소인이 됐다.

# 2. 사과

 <코미디 빅리그>가 홈페이지에 내건 사과문. 사과에 진정성이 실리려면 '어떤 점을 잘못했는지'를 밝혀야 하지만, 그런 상세한 언급 없이 '미안하다'는 추상적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 tvN
비난이 커지자 <코빅> 측은 6일 매체들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사태 진화에 나섰고, 7일 오후엔 프로그램 차원의 사과문을 내놨다. 프로그램 폐지가 결정됐고, VOD도 삭제됐다. 발 빠른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길지 않은 사과문 중 눈에 띄는 것은 "모든 건 제작진의 잘못이며, 제작진을 믿고 연기에 임한 연기자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라는 대목이다.

기이하게도, 어떤 시청자에게 어떤 불편함을 줬는지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리고 그 시청자에 대한 의례적인 사과와 엇비슷한 길이로 연기자에게 '사과'했다. 제작진의 잘못이라며 납작 엎드린 채로. 찬찬히 살펴보면, 장동민을 위시한 연기자들에게 전하는 사과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세심하지 못한 사과와 해명은, <코빅> 출연자들을 조롱과 비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앵무새로 만들고, 제작진이 프로그램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고 자백하는 꼴이다. "제작진이 준 대본대로 읽었을 뿐"이라는 장동민 측 해명과 부합하는 사과문일 수도 있다. 일각에선 여전히 "장동민은 왜 제작진 뒤에 숨느냐"며 비판의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시 작년으로 돌아가 보자. 장동민과 <옹꾸라> 멤버의 사과문 전문 어디를 살펴봐도,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 그저, '잘못', '사과', '사죄', '죄송' 등과 같은 추상어와 관념어만 남발하고 있을 뿐이다. 급하게 그저 머리를 조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자기성찰은 커녕 사안에 대한 자기분석마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더욱이 고소 건에 대한 사과만 있었을 뿐 여타 여성 비하와 같이 고소 이전 문제시됐던 비판에 대해서도 일언지하 언급이 없었다. 이어 자숙 기간도 거의 거치지 않고 방송을 활발하게 재개했다. 그리고 한 프로그램을 통해 '갓동민'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리하여, 장동민은 이번 '충청도의 힘' 사태에 이르렀다.

# 3. 언론과 방송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장동민과 그의 연인 나비. 공교롭게도 지난 6일 이 방송이 나가며 <코미디 빅리그> 발언 논란은 덮이는 양상을 보였다. 장동민-나비의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7일 '차가연'의 고소로 장동민의 발언은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 mbc
공교롭게도 6일 밤 장동민과 옹달샘 멤버들이 출연한 MBC <라디오스타>가 전파를 타면서 관련 기사는 온통 '장동민', '나비'라는 키워드로 뒤덮여 버렸다. 빠른데다 타이밍까지 기가 막혔다. 올해 초 공개 연애로 화제를 모았던 장동민과 나비가 처음으로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일종의 프리미엄도 곁들여진 결과였다.

<코빅> 제작진은 6일 오후 사과문 없이 개별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태의 진화에 나섰다. 거셌던 비판은 공식 사과와 해명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연예 매체들이 장동민과 나비의 <라디오 스타> 관련 기사로 도배해주면서, 장동민은 구원되는 형국이었다. 7일 오후 차가연 측의 고소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번 '모욕죄 피소'가 더해지면서, 장동민은 1년 만에 피소된 연예인의 지위(?)를 또 얻게 됐다. 각종 매체도 다시 이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약 차가연 측의 고소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코빅>의 신속한 대응과 "모든 건 제작진 잘못"이라는 제작진의 적극적인 해명, <라디오스타>를 통해 쏟아진 나비 관련 기사로 '충청도의 힘'과 관련된 논란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옹달샘 멤버들이 사과 기자회견을 마쳤고, 생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반면 논란의 원래 한 축이었던 '여성 혐오'로 "불편함"을 겪은 다수의 시청자는 어리둥절해했다. 그 이후 tvN과 JTBC에 출연하고, KBS <나를 돌아봐>를 통해서까지 해명의 장을 만든 장동민은 승승장구했다. 방송사들은 마치 별문제 없다는 듯 장동민을 활용했다.

6일 오후 방송된 <라디오스타>가 일각에서 비난을 받은 이유도 다르지 않다. 작년 기자회견 이후 옹달샘 멤버들이 처음으로 지상파에 함께 출연했음에도, 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오히려 장동민의 연애와 멤버들 간의 우정과 관련된 내용으로 점철됐다. 일부 시청자들은 여전히 불편함을 호소하지만, 장동민과 친구들은 그렇게 '인기 연예인'으로서의 권력과 지위를 마음껏 누렸다.

# 4. 그리고 장동민에 대하여

 개그 트리오 옹달샘의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 이들은 2015년 4월 28일 오후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삼풍백화점 생존자 비하', '여성 비하 발언' 등을 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 이정민
"장동민씨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문제 없이 잘살고 있습니다. 엄마와 떨어져 살고 있다는 걸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저희를 포함해 사회적 약자를 개그 소재로 삼는 걸 그만두세요. 자신 없으면 TV 활동을 중지하세요." (@le******)

자신을 이혼 가정 출신이라 밝힌 어느 트위터 사용자의 전언이다.

지난 1년간 장동민은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한테 머리가 안 돼"란 팟캐스트 속 발언으로 여성들의 공분을 샀던 장동민은 <코빅>의 한 코너에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여자들한테 멍청하다고 하냐"며 자신의 발언을 개그의 소재로 삼을 만큼 자신만만했다. 물론, 일반적인 자기 풍자와는 거리가 먼 맥락 위에서였다.

고소 사건으로 번진 이번 논란은 결과적으로 장동민의 문제이자 장동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혐오와 조롱을 개그로 착각하고 자숙과 성찰을 모르쇠 했던 장동민 개인의 문제이자, 시청자와 매체의 지적을 무시한 채 시청률과 팬덤을 의식하여 장동민을 꾸준히 방송에 출연시킨 제작진과 방송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전부터 뿌리 깊게 박혀있던 한국사회의 혐오와 차별의 문화와도 결부돼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누군가의 눈물 위에 서있는 개그에 즐거워하며 웃지 않았던가.

문제 제기는 개별 매체와 개별 시청자 차원에서 수도 없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장동민도, 방송사도 무시해 왔을 뿐이다. 차가연의 '경종'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과연, 1년 만에 다시 피고소인이 된 장동민은 이번엔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차가연은 정말 "끝까지" 가서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데 성공할 것인가. 씁쓸하게도 이건, 개그가 아니다.

2015년 장동민 사과문 전문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저 때문에 실망하고 불쾌해하셨을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제가 과거에 이야기했던 부분들이 다시 이야기가 돼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이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노력을 많이 하고 여러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답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너무나도 죄송하고 국민 여러분들에게 죄송합니다. 부모님에게도 죄송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셨는데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실망시킨 부분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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