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북한군, 무력통일 세뇌>

2016. 3. 28. 19: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강균]
"네 지난 시간에 이어서 북한 군대의 내부 운영실태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소영]
"네 북한군 연대장 출신이신 탈북민 임강진씨 그리고 북한대 신병교육대대 중위 출신이신 탈북민 이다은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신강균]
"네 우리 임 선생님은 북한에서 연대장까지 하셨고 이다은씨는 신병교육대대 장교 출신이신데 여성들도 의무적으로 복무를 해야 됩니까?"

[이다은]
"아닙니다. 여자들은 자원제인데요. 저 역시 군대에 제 의지로 군대에 나왔습니다."

[신강균]
"네 결과적으로 잘 입대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이다은]
"너무 후회를 했었어요."

[신강균]
"뭣 때문에."

[이다은]
"너무 힘드니까 아 이게 그 일단 밥 먹을 때 젤 처음에 밥 먹을 때 가장 힘들었고요. 두 번째로는 군관학교 가서 훈련할 때 힘드니까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런 개고생이야 나라는 내가 안 지켜도 다른 사람들이 다 지키고 있는데 통일도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랬어야하지? 혼자만 그렇게 끙끙 앓았죠."

[신강균]
"지금 방금 말씀하신 통일도 안 되는 데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생각하셨다는 것은 남진통일을 한다라고 그랬었던 모양이죠?"

[이다은]
"아 저는 북한이 노력을 해야지 만이 남한을 통일을 할 수 있다."

[신강균]
"노력을 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이다은]
"네 그거는 우리가 군인들이 더 일당백 병사가 되어서 무력으로 남한을 무조건 이겨야지만이 통일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신강균]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군대를 가면 북한인민군의 실력을 키워서 전력을 키워서 남한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까?"

[임강진]
"네 그렇게 믿고 있어요."

[김소영]
"그럼 어린 나이에 당원이 되시고 또 중위로 입대를 하셔서 나름 이 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을 거 같은데요. 총폭탄 정신을 심어주고 기강을 잡고."

[신강균]
"그렇죠! 사상교육 하는데 앞장서셨을 거 같아요."

[이다은]
"정치상학 시간에 일단은 정치상 학을 가르키는 게 있어요. 위에서부터 여단, 여단은 또 군단 군단은 또 그 위에 그렇게 무력 부에서부터 내려오는 강연자료가 있어요. 정치상학 자료가."

[신강균]
"그렇게 내려온 교범에 기초해서 그때 당시 신병들에게 교육을 하셨을 텐데."

[이다은]
"그럼요."

[신강균]
"저희 김소영 아나운서하고 저를 신병이라고 생각하시고 그 정치상학 시간에 교범에 따라서 가르쳤던 것을 그대로 한번 거기 현지 말로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이다은]
"아 잘 될진 모르겠는데 한번 해 보겠습니다 자 오늘 정치상학 시간에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께서 군인들은 일당백의 혁명정신을 가지고 언제나 앞장에 서야 된다 이런 자료를 가지고 상학을 시작을 하겠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군인들은 일당백의 혁명전사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자 그러면 오늘 상학 시간에는 우리 김소영 동지."

[김소영]
"네."

[이다은]
"아 이렇게 하면 바로 아웃이죠."

[김소영]
"아 그래요?"

[이다은]
"네 초급병사 김소영! 대답하겠습니다! 라고 씩씩하게."

[김소영]
"혼나는군요. 저같이 하면."

[이다은]
"네! 하면 앉으라 동무라고 반복이 되는 거죠."

[김소영]
"굉장히 엄한가 봐요. 분위기가."

[이다은]
"그럼요 가장 이 시간에는 군인들의 충실성 온도를 이제 시험을 해 보는 시간이 되겠고요. 그리고 그 충실성의 온도를 더욱 높여주는 그런 시간이 된다는 거죠."

[신강균]
"주로 신병 때만 정치상학을 하는 건 아니지 않겠어요?"

[이다은]
"아니죠."

[임강진]
"군사라면 전 기간 정치상학은 그 **을 가지고 진행을 합니다."

[김소영]
"저희가 관련 화면도 준비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지금 북한 군인들이 노동 신문을 함께 읽고 있는 거 같아요?"

[신강균]
"그 군대에 입대를 한 병사들은 매일 아침 저렇게 노동신문을 같이 읽고 저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까? 어떻습니까."

[이다은]
"일단은 하루 일과에 독보 시간 그러고 나서 정치상학이 시작되는데요. 독보 시간에는 부대에 있는 신문이라던가 아니면 그 제강 말씀 이런 것들을 가지고 독보시간이 시작되는데 지금도 보시게 되면 저렇게 구호가 나오는데요. 구호에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수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 이런 거로부터 시작을 해서 독보가 진행이 됩니다."

[이다은]
"아 허무하지 않나?"

[김소영]
"허무하다는 느낌."

[임강진]
"야 왜 저렇게 제 생각 없이 오직 거기에만 충실했을까."

[신강균]
"신병교육대를 끝나고 나면 부대에 배치될 텐데 집안 배경이 좀 좋으면 좀 편하거나 좋은데 그런 데로 빠질 수도 있습니까."

[임강진]
"그렇죠! 다 작용하죠 작용해가지고 거기에서 그 부모들이 좀 힘을 쓰면 편한 교환수라던가 통신병이라던가 무슨 전신전화수 이런 쉽고 좀 독립생활할 수 있는 대열소위 같은 이런 직위를 좀 타내는 거죠."

[이다은]
"보통 보게 되면 벌써 전화가 와요. 여단에서. 전화가 오는 게 어떻게 오냐만요 김소영이다 하면 야 김소영이 어떻게 잘 지내지? 이거는 잘 봐줘라! 잘 보살펴줘라. 이거거든요 그럼 아 얘는 벌써 간호사나 여단 직속 교환수나 아니면 대열소위 같은 양식 창고장 같은 거 벌써 하겠구나! 감이 와요."

[신강균]
"그럼 아까 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아주 이보다 더 큰 힘이 있는 자녀들은 아예 군대를 안 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임강진]
"중앙당 간부 과장 이상 간부들은 김정은이 김정일이 이미 전부터 최전선 전방에서 무조건 복무하게 되어 있어요."

[신강균]
"그러면 그런 괜찮은 집안의 자녀들이 지난 시간에도 말씀하신 대로 못 먹고 노동현장에 투입되고 굉장히 힘든 군대생활을 지내야 할 텐데."

[임강진]
"그렇게는 안 하죠."

[신강균]
"아 배치만 그 장소에만."

[임강진]
"네 배치만 되고 민경이다. 그러면 민경에서도 나가서 잠복근무 서고 이런 것만 아니라고 합니다. 무슨 간호사가 있고 무슨 병원 서기가 있고 양식 창고 장이 있고 이런 쉬운 대로 들어가는 거죠."

[신강균]
"그럼 북한에서도 대학 가기 전에 당연히 신체검사를 하겠죠? 북한의 신체검사의 기준은 어떻습니까."

[임강진]
"남자하고 여자하고 다릅니다. 그래서 키가 157 이상부터 남자는 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157부터 되는 걸로 되어 있고 여기서 제한조건은 안경을 낀 사람들은 군대 못 나가요."

[이다은]
"북한은 컴퓨터를 많이 사용 안 하다 보니까 핸드폰도 사용 많이 안 하잖아요. 그래서 보게 되면 안경을 저는 한국에 오니까 안경을 안 낀 사람보다 낀 사람이 엄청 많더라고요. 반대로 북한은 안경을 안 낀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을 찾기가 좀 어렵고요. 여자들은 보통 보게 되면 키가 제가 있을 때는 153 이상부터 갔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뭐 153이 아니라 148. 뭐 자동보청보다 키가 커버리면 다 갈 수가 있습니다."

[신강균]
"아 그 소총 길이보다 크다라고만 하면 간다 이 말씀이시군요."

[김소영]
"뭐 북한 군인들도 입대 전에도 민간인으로 생활할 때도 남한 문화 같은 것들이 많이 퍼져 있다고 들었는데."

[임강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세계에 대한 이런 게 많이 들어오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개인 수공업이 발전되면서 세계관이 조금 튼 거죠."

[신강균]
"장마당 같은 걸 통해서."

[김소영]
"보통 남한에서 군대 보면 휴가를 정기적으로 나오고 또 포상휴가 같은 것도 있고 가족과의 면회 이런 것도 이루어지는데 보통 군인들 북한 군인들도 휴가는 있죠."

[이다은]
"네 휴가는 있는데요. 그게 표창 휴가 이런 것들이 정해진 거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물자구입으로 휴가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왕 휴가 갔다 오는 거면 비닐방막 페인트, 북한에서는 뺑끼라고 하죠 이런 것들이랑 구해 오라고 그래서 한 10일 15일 정도 주는데요. 그리고 면회도 말은 면회가 있는데요. 면회 자체가 이뤄지지가 않아요. 왜냐면 부모님들이 면회를 오려면 그 여행을 오는 여행비 차비 이것들과 그리고 간부들한테 고여야 하잖아요. 네 그래서 면회를 오는 것보다 차라리 좀 있는 집 애들은 오라고 해서 물자구입을 해서 보내주는 거죠."

[신강균]
"그러면 없는 집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임강진]
"가질 못하는 거죠."

[이다은]
"못 가죠."

[신강균]
"부모가 군대를 찾아갈 비용이 없어서 못 가고. 인민군대는 휴가가 없습니까."

[임강진]
"휴가라는 거 그거 정기적으로 표창, 내가 연대 장할 때도 1년에 한 명 또는 두 명을 표창휴가를 보냈어요. 연대가 3,000명입니다."

[신강균]
"연대가 3,000명인데 그 3,000명 중에 1년에 한두 명 정도만 포상 휴가를 보냈다는 말씀이시면 나머지 2,995명은 1년 동안 휴가 없이 머물면서 일을 하거나 훈련을 하거나."

[임강진]
"네 휴가 대신에 오직 군부대에서 올라오는 체계에 따라서 물자구입 이자 이야기하신 것처럼 물자 구입으로 대체로 많이 보내주는 거죠."

[김소영]
"근데 군대에 자식을 보내놓고 10년 동안이나 잘 볼 수 없다면 잘 사는 집 아이들이 아니라 평범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정말 살았는지 죽었는지 마음이 찢어질 거 같은데."

[신강균]
"그렇죠 10년 동안 못 보면."

[임강진]
"그렇죠."

[김소영]
"집에서 먼 부대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임강진]
"100프로 다 그렇게 하는 거죠! 함북도 사람을 강원도로 강원도 사람을 함북도로."

[김소영]
"왜 그렇게 멀리 배치를 하나요."

[임강진]
"가까이 있게 되면 계속 부모들하고 해서 군사복무를 충실히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신강균]
"그래도 군대가 감옥을 가는 것도 아닐 텐데 10년 동안이나 1년에 변변한 휴가가 없고."

[김소영]
"가족을 볼 수 없다는 게."

[임강진]
"대부분 부모들이 자식의 운명에 맡기는 거죠! 그니까 부모로서는 나라에 바쳤다 이걸로 표현하는 거죠! 손발이 다 건강해서 오면 나한테 복인 차려진 거고 나갔다가 발이 잘리고 사망하고 손일 잘리고 이렇게 오면 정말 그때는 한탄하는 게 부모들이죠."

[신강균]
"그럼 그 북한 체제에 대해서 그 부모들의 원망이 굉장히 강렬해지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이다은]
"그래도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죠."

[신강균]
"그렇지 못하는 이유를 한번 각각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다은]
"왜냐면요 북한 자체가 제가 이 사람을 감시하고 이 사람이 옆집 사람 저 사람이 저. 이렇게 삼각관계로 감시체제가 너무 잘 되어 있어가지고 정말 왜 내 소중한 새끼를 거기다 보냈어가 지고 김정일이 쳐죽일 그러면 지금 괜히 아파서 하반신 불구가 되어 왔는데 그 아이를 놓고 이제 그 말을 해 버리게 되면 어떻게 돼요. 그게 다 알려져가지고 나중에는 다리뿐 아니라 내 생명도 잃게 되고 다리를 잃은 아들은 온몸을 다 잃을 수도 있는 판이니까 그래서 반란을 일으킬 수 없는 거죠.

[임강진]
"북한사회에서의 감시체제라는 것은 삼각관계를 딱 조성해놨기 때문에 지휘관 정치일꾼 보위부 이렇게 삼각관계를 서로 구축하게 된 조직사회 조직을 그렇게 해놨기 때문에 사회도 같습니다. 사회도 지배인 책임비서 조직부 이렇게 다 삼각관계로 해놨기 때문에 서로 감시관계로 있기 때문에 내가 내 새끼를 군대 내보내서 병신 되가지고 왔다 이 얼마나 부모로서 한탄합니까? 이걸 가족끼리 또 아는 사람들끼리는 정말 군대 내보내길 잘못했다는 걸 저리 그때 내보내지 말고 그때 대학을 보냈어야 할 걸 이런 말 하는데 공식적으로 나가서 자기 직장이나 무슨 이런 모임이나 밖에서 발언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신강균]
"지난 시간에는 탈영도 그래서 많이 한다. 그러고 그랬는데 탈영을 하다가 잡혀들어가면 또 많은 벌들도 받을 텐데 그럴 바에는 탈북하자라는 생각을 하는 군인들도 적지 않을 거 같은데."

[임강진]
"아 적지 않죠."

[신강균]
"그럼 예를 들어서 함경북도 같으면 지리적으로 가까울 텐데."

[임강진]
"그렇죠. 국경 최전연에서 군대 나간 자식들 국경에선 잘 아니까 중국이 잘 산다는 것도 알고 이런 게 세뇌되어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그 많이 탈영했다가 부대에서 체포령까지 내렸다 수배령까지 내렸다 하게 된 거 알면 나는 이제 잡히게 되면 노동단련 대 교화소도 가야 되겠구나! 그러겠구나! 간파하게 되면 벌써 넘어가자고 탈북 시도하는 거죠."

[김소영]
"두 분은 북한에서 군인으로 군관으로 임강진씨는 25년 이다은씨는 10년을 복무하면서 충성을 하셨는데 이제 남한에 와서 돌이켜보면 각각 어떠신가요."

[임강진]
"거기에서는 할 말도 못하고 정말 정치조직란 게 뭐길래 그거 눈치를 봐야 되고 그런데 이 사회는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나로서는 정말. 그 누구한테 정말 그이 감시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몸이니까 그게 좀 편합니다."

[이다은]
"저는 잘 오기도 왔지만 때로는 후회하는 때도 있어요. 어떤 점이냐면 가족하고 다 같이 못 왔던걸. 가족하고 다 같이 지금 남한에 와서 살게 되면 내가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정말 자유도 좋다 모든 건 좋은데 그 자유가 거저 내가 이뤄지는 게 아니겠더라고요. 내가 가족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안 계세요. 가족들이. 그래서 그 돌아가신 가족한테 좀 이렇게 미안하지 않은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강균]
"이다은씨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시는데 네 그럼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네. 북한은 미제가 북침한다고 위협하면서 꽃다운 청춘들을 인민군대에, 그것도 10년씩이나 데려다가 결국 노동도구로 삼으면서, 배고픔마저 채워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참 청춘기에 남녀 간의 사랑을 꿈꿀 수도 없고, 하고 싶은 직업을 갖지도 못한 채, 그저 세습왕조를 지탱시키는 삽이나 괭이 같은 노동도구로 일생을 헛되이 보내야만 하는 북한의 젊은이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소영]
"오늘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