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시민들은 '인물'을 본다?

최광웅 2016. 3. 2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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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와 바람이 크게 작동하는 수도권과 달리 지역에서는 ‘큰 인물론’이 먹히는 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지방자치 선거가 부활한 지 4반세기가 흘렀지만 지역 유권자들은 여전히 지방자치로는 지역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고 믿는다. 지역 유권자들의 공통적인 소망은 여야를 떠나 힘 있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그런 인물을 선출해야 덩치가 큰 정부 예산, 특히 SOC 예산과 교부세를 확보해서 단 한 개라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본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을 질타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역 유권자의 선택에는 한계가 있다. 정권 실세 아니면 야당 실세로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선주자급 인물이 아니거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주요 정당의 후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힘이 있는 인물’이라는 믿음이 생기면 지역 유권자들은 거침없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치러진 2000년 16대 총선은 실세들의 여의도 귀환이 유난히 두드러졌다. 2000년 선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탈당과 공천 파동으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현재 주요 정치인들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13대와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승수 의원은 2000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회창 총재 체제에서 단행된 물갈이 공천의 타깃이 됐다. 국보위 전력 탓에 시민단체의 낙천·낙선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재정경제원 장관·부총리를 지낸 그를 춘천시민이 가만두지 않았다. 한승수 의원이 소속된 민주국민당은 공천 탈락자들이 만든 군소 정당이었지만, 그는 결국 3자 구도의 승리자가 되었다.

ⓒ연합뉴스 : 국민의당에 입당한 박지원 의원이 3월9일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낸 강운태 전 광주시장도 2000년 새천년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광주 남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과반수 득표율을 올리며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공천자를 가볍게 제쳤다. 강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 때도 무소속으로 59.43%를 득표했다.

DJP 연합의 설계자인 이강래 전 의원(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16대 총선에서 서울 지역 공천을 희망했으나 동교동 구파에게 밀리고 말았다. 그는 고향인 전북 남원·순창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김대중의 남자’로 선거운동을 펼친 끝에 53.5%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박주선 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권유로 16대 총선 출마에 나선 경우다. 그는 새천년민주당 고위 당직자로부터 출마 포기를 종용받았지만 고향인 전남 보성·화순에 무소속으로 출전해 59.9%라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충남 보령·서천에서 당선된 김용환 전 의원의 소속은 ‘희망의 한국신당’이었다. 그는 김종필(JP) 총재와의 갈등으로 자민련을 탈당해 1인 정당을 창당했고 결국 생환했다. 재무부 장관과 3선 의원 출신의 저력이었다.

군소 정당 후보로 나선 ‘유력’ 정치인의 승리 사례는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충청권을 강타한 열린우리당 바람을 뚫고, 자민련의 김학원 원내총무는 부여·청양에서 3선에 성공한다. 64.5%의 지지를 얻어 JP를 잇는 차세대 주자 반열에 올랐다. 전남 무안·신안에서도 새천년민주당 초대 직선 당대표를 역임한 한화갑 후보가 57.5%의 득표율로 너끈하게 4선 의원이 되었다.

ⓒ연합뉴스 : 16대 총선 당시 한승수·강운태·박주선(왼쪽부터) 후보는 공천 탈락에도 불구하고 군소 정당 혹은 무소속으로 나와 배지를 거머쥐었다.

전남의 경제성장률이 16개 시·도 중 최저

최근에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했으나 무소속으로 재기한 박지원 의원이 대표적이다.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문화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를 고향 민심은 버리지 않았다. 그는 과반수 득표율(53.6%)로 통합민주당 공천자를 가볍게 제치고 친정인 민주당에 복귀했다. 이후 당 정책위 의장과 원내대표를 차례로 맡으며 정책·전략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 19대에 3선이 된 그는 또 한 차례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그리고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을 이끌었다.

그런 박지원 의원이 지난 1월22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지난해 마련된 공천혁신안에 의해 저축은행 사건의 2심 유죄판결에 따라 컷오프 대상에 오른 터였다. 이후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고 정치적 굴레에서 벗어났다.

박지원 의원은 '무소속의 길을 가면서 야권 통합에 전력하겠다'라고 했으나 40일 만에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국민의당에서는 유선호 전 의원, 배종호 전 KBS 뉴욕 특파원 등이 이 지역의 예비후보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결국 박지원 의원이 단수 공천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광주·전남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국민의당 쪽 계산이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안보 정국에서 김대중(DJ)의 햇볕정책 계승자가 자신들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한겨레> 편집국장을 지낸 조상기 전 KBS 이사를 이 지역에 단수 공천했다. 그는 이 지역의 명문으로 불리는 목포고를 나온 것을 앞세우지만, 1950년생으로 박지원 의원과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게 걸림돌이다. 만 50세의 정치 신인인 새누리당 박석만 후보가 목포고 출신 동문인 점도 감점 요인이다.

2014년 전남의 경제성장률은 0.5%로 전국 평균(3.3%)을 밑도는 건 물론이고 16개 시·도 중 최저를 기록했다. 건설 업종 부진(-12.9%)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공공행정·사회보장(3.1%) 업종으로 근근이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목포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은 영암군의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업이다. 그러나 오랜 불황으로 대책 마련이 절실한 형편이다. ‘큰 인물론’이 먹힐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목포시장은 무소속 박홍률 후보가 전직 국회의원 출신 새정치연합 공천자를 누르고 당선됐다. 2004년 17대 총선 때도 목포는 열린우리당이 아닌 새천년민주당의 이상열 변호사를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2006년 시장선거 때는 열린우리당이 아닌 민주당 정종득 후보가 압승했다. 이래저래 목포시민은 정당보다 인물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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