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은 불안 대우는 최악", 방송작가들이 '노예'인가

차현아 기자 2016. 3. 2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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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에 불안정 노동, 한숨만 느는 작가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했나?”

[미디어오늘 차현아 기자]

“글쎄요, 단지 꿈을 위해서 높은 임금 포기, 자존심 포기, 개인 여가시간 포기, 건강 포기, 이젠 열정도 안 남았어요. 제가 작가는 무슨 작가일까요? 노예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정말 그렇게 의지박약인가요? 차라리 봉사를 하면 의미라도 있습니다. 권리 보호도 하나 받지 못하고 사람대우 받는 것도 힘들고 업무 체계도 제대로 없고,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한심하다는 선배들을 보며 이 상태가 앞으로도 똑바로 변하는 것이 하나 없다면 전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제가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요.”(경력 2년의 한 종합구성·교양 방송작가)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노동 인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태조사 보고서가 발간됐다. 실제 방송작가 수백명을 대상으로 노동 환경 전반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최근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방송작가의 △고용 △업무 △인권 등 방송작가의 고충을 통계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조사에서는 총 624명의 방송작가들이 설문에 참여했다.

응답자 중에는 20대가 73.2%(457명)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6.1%(163명)로 그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자들의 연령을 고려하면 전체 방송작가 중 특히 노동 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진 서브 및 막내 작가의 특성을 주로 반영한 설문조사로 볼 수 있다. 또한 해당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 중 여성이 94.6%(599명)이며 남성은 5.4%(34명)에 불과했다.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방송사를 묻는 질문에는 서울의 지상파 방송사라는 답변이 54.4%(338명)로 가장 많았다. 케이블 방송 19.5%(121명), 종합편성채널 16.9%(105명)등이 뒤를 이었다.

“인격무시 발언 들었다” 82.8%

충격적인 사실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받았다고 답한 방송작가들이 응답자의 절반 이상에 달한다는 것이다.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었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까운 전체의 41.1%(253명)에 달했다. “7회 이상 아주 많았다”고 답한 이들도 무려 23명이었다.

▲ 출처=언론노조.
성폭력 가해자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다수의 응답자가 방송사 PD와 직원(40.6%, 132명), 혹은 외주제작사 PD나 직원(43.7%, 142명)이라고 답했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방송작가의 경우 상사인 방송사 혹은 제작사 PD나 팀장으로부터 주로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을 들었다고 응답한 이들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응답자의 82.8%(514명)가 인격무시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7회 이상 아주 많은 빈도로 인격 무시 관련 발언을 들었다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의 25.3%(157명)으로 가장 많았다. 업무 수행 중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이들도 354명(응답자의 58.4%)이나 됐다.

해당 조사에 참여한 경력 7개월의 종합구성·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왜 막내작가는 PD의 조롱거리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장 최근 들었던 말을 나열하면 ‘네 목숨은 파리목숨’ ‘옷이 그게 뭐냐’ ‘네 얼굴 장난 아니게 부었다’ ‘화장 좀 그렇게 하지마’ 등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조롱들을 나열하면 끝이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력 7년의 종합구성·교양 방송작가는 “막내작가 때 본사 (방송사) PD의 성희롱에도 누군가에게 말하면 일을 그만둬야 할 까봐 속앓이를 했다. 지금도 연락이 오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하게 된다. 오랜시간 관례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인권무시를 당해도 연차 낮은 입장에서는 불만 토로를 못하거나 꿈을 접게 된다”고 전했다.

해당 보고서는 “방송작가는 대부분 여성으로서 방송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권력 관계 속에서는 열악한 위치에 처해있어 성희롱 피해를 당하게 된다”며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와 수직적 권력관계를 양산하는 방송 콘텐츠 제작 구조의 개선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제도적으로는 직장 내 성평등 교육을 콘텐츠 제작 현장 단위까지 의무화하고 성폭력 발생 시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일회성 노동력으로 낭비되는 느낌”

방송작가들이 받는 임금은 최저시급에도 못미치지만 이들은 주말 근무까지 도맡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방송작가의 업무강도는 과도하게 높았지만 임금은 매우 낮았다.

▲ 출처=언론노조.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막내작가들의 경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설문에 참여한 막내작가들이 받고 있는 임금의 평균은 120만6259원에 불과했다. 올해 근로기준법 상 최저임금에 따르면 월급은 126만270원이상이 돼야 한다. 다만 서브(코너)작가는 208만7973원, 메인작가는 282만3077원으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월급 수준은 높아졌다. 일부 막내작가들이 ‘힘들어도 메인작가가 될 때까지 참고 버티자’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문에 참여한 641명의 방송작가 중 월 평균 급여가 100만원 이상~15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44.0%(282명)으로 가장 많았다. 200만원 이상 25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19.2%(123명), 150만원 이상 200만원 미만을 받는다는 이들도 16.4%(105명)로 나타났다. 1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다고 응답한 이들도 5.9%(38명)이나 됐다.

연 평균 수입을 봐도 임금 수준은 많이 낮았다. 막내작가의 연 평균 수입은 1125만2435만원이었다. 서브(코너)작가는 1952만4441원, 메인작가는 2996만원 정도를 연 평균 수입으로 받고 있었다.

방송작가의 임금은 방송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지급되는 제작비에서 나온다. 따라서 방송 프로그램 사전 기획 과정에 들어간 노동대가도, 만들어 진 후에도 사정상 방송되지 못한 방송프로그램에 들어간 노동대가도 쉽게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634명의 응답자 중 프로그램 제작중단이나 불방·결방 시 일한 대가를 항상 받거나 받은 적이 더 많다고 응답한 이들은 15.5%(98명)에 불과했다. 받은 적이 없거나 받지 못한 적이 더 많다는 이들도 41.6%(264명)이나 됐다. 방송되기 전 프로그램의 사전 기획 단계에서도 일했지만 기획비를 받지 못했거나 받지 못한 적이 더 많다고 응답한 이들도 38.5%(245명)에 달했다.

노동의 대가는 낮았지만 업무 강도는 셌다. 방송작가들은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583명의 응답자 가운데 주당 평균 노동일수가 6일이라고 답한 이들이 41.9%(244명)로 가장 많았다. 5일(40.5%, 236명)이라는 응답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일주일 내내 일한다는 응답도 13.9%(79명)나 됐다. 기타응답을 제외한 577명의 주당 평균 노동 일수는 5.63일로 사실상 주말근무가 당연시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도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590명의 응답자 중 40시간 초과 52시간 이하로 일한다고 답한 이들이 27.8%(164명)로 가장 많았다. 52시간 초과 68시간 이하라는 응답도 26.9%(159명)로 나타났다. 68시간을 초과해서 일한다는 이들도 20.2%(119명)나 됐다. 근로기준법 상 근무시간인 40시간 이하라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23.5%(139명)에 불과했다. 기타 응답을 제외하고 581명의 평균 노동 시간은 약 53.8시간에 달했다.

▲ 출처=언론노조.
사회보험이나 복지 등의 사회 안전망도 없었다. 국민보험 미가입 (83.5%, 532명), 산재보험 미가입 (98.5%, 634명), 건강보험은 다른 가족을 통해 가입(75.8%, 471명) 등의 응답이 대다수였다. 업무와 관련된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해도 ‘전액 개인비용으로 치료’라고 응답한 경우도 88.8%(366명)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방송작가들은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없었고 (95.9%, 608명), 교통비도 지급받지 못했으며(80.8%, 511명) 시간외 수당도 보장받지 못했다(98.1%, 626명).

설문에 참여한 경력 2년차인 예능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내 시간이 전혀 없고 임금도 너무 낮다. 야근수당은커녕 밥도 개인 돈으로 사먹는 경우가 많다. 아파도 쉴 수 없고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PD의 기분과 편의사항에 따라 퇴근시간이 달라진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력 3년의 시사보도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심한 노동, 지켜지지 않는 근무시간에 비해 보상과 대가가 없다. 최저임금보다 열악한 처우와 최하수준의 사회 안전망도 갖추지 못했다. 그저 일회용 인력으로 낭비되는 느낌이며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부당한 이유로 잘리는 경우도 많다”

방송작가들은 이런 열악한 노동 조건을 견뎌내면서도 쉽게 ‘잘리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계약서가 없거나 구두로만 고용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서면계약을 체결했다는 응답은 전체 640명의 응답자 중 6.6%(42명)에 불과했다. 대략적인 근로조건을 구두로만 통보받은 경우가 68.8%(447명)로 가장 많았으며, 노동조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일을 시작했다는 이들도 24.6%(151명)에 달했다.

이들의 고용 관계는 쉽게 해지됐다. 특히 방송작가 본인의 의지가 아닌, 방송 제작 과정의 불합리한 관행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640명의 응답자 중 고용해지 경험이 있었다는 응답은 53.4%(342명)였다. 이들의 고용해지 사유를 묻는 응답 항목에서 프로그램 개편·제작중단·불방·방송 시간 축소·시청률 하락·제작비 축소때문이라는 답변이 46.3%(249명)으로 가장 많았다. 담당 PD와 갈등이 생기거나 메인작가를 교체하면서 같이 잘리는 경우도 13.9%(75명)였으며 이유도 모른채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다는 이들도 12.1%(65명)였다.

▲ ⓒ iStock.
방송작가들의 업무환경 개선이 어려운 이유는 이들의 권익을 대변할 단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송작가협회가 있지만 막내작가나 서브작가들이 문턱을 넘기에는 가입조건이 까다롭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8년차 종합구성·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작가협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저작권도 보호받을 수 없는데 가입기준과 방법도 불투명하고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고 답했다. 또다른 경력 5년 차 종합구성·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자격 인정) 기준이 이상하다. 본사 방송사는 3년 일하면 인정해주는데 외주제작사에서 일하면 10년을 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프리랜서 신분이라는 이유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다만 이들은 대체로 “불이익이 없다면 가입할 의사가 있다(45.3%, 285명)”고 생각했다. 언론노조 측은 “현재 방송작가를 중심으로 방송가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직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경력 6년의 한 예능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고용불안, 최저 노동환경에 대우는 최악이다. 요구하는 것은 엄청 많고 쉴 틈이나 여가생활은 꿈도 못 꾼다. 미래도 희망도 없는 직업이 방송작가”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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