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가 사라질 때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출현한 출판사들 중에는 잡지를 병행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 까닭은 잡지를 통해 새로운 필진을 발굴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단행본을 출판할 수 있는 필자 집단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출판사는 특성상 소규모 창업이 가능하고, 경영과 편집, 발행인과 편집인이 구분되지 않고 같은 사람이 두 가지 역할 이상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신문이나 방송은 조직 규모가 출판에 비해 거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종사자 개개인의 인적 요소가 경영에 반영되기 어렵지만, 출판의 경우에는 발행인이나 편집인의 인적 네트워크나 개성이 강하게 작용한다. 개인의 능력과 인적 네트워크에 따라 출판사의 흥망성쇠가 좌우될 가능성이 그만큼 큰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파벌이나 에콜(ecole)을 형성해 이른바 ‘문화권력’으로 변질되기도 하지만, 잡지와 출판의 관계는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잡지 연재는 단행본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여러 잡지에 게재했던 원고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묶어내는 일도 다반사다. 무엇보다 잡지는 전업 글쟁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1949년 4월에 창간된 잡지 <신세기(新世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귀중하고 근본적인 일을 하면서도 가장 불우한 생활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의 영혼을 지켜주고 있는 문학자'들인데, 그들의 생활비는 집필하는 원고료에 의존한다면서 당대 문필가들의 한 달 평균 원고료 수입을 기록하고 있다.

1949년 당시 1인당 GNP는 80달러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빈궁한 상태였지만, 소설가 김광주·김송·최태응·정비석의 한 달 평균 원고료 수입이 3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이어 소설가 김동리, 박종화, 시인 서정주가 매월 2만원 내외의 수입을 기록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문인단체들은 신문·잡지·출판사에 원고료 인상을 꾸준히 요구했다. 1947년 3월26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조선문학가동맹’이 문학인들의 생계를 위해 ‘소설·평론’의 경우엔 200자 1장당 50원 이상, ‘수필·번역’의 경우 35원 이상, 시 (1편당) 1000원 이상, 출판 인세의 경우 1000부까지는 저자 인세를 1할(10%), 1000부를 초과할 시에는 2할 이상으로 해줄 것을 요구한다는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사보’ 비율 증가, 문예지 지원 사업은 폐지
그런데 최근 출판사가 발행하는 전문 잡지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5 잡지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잡지의 종말’을 알리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사 결과 잡지 발행 형태는 잡지 전문 발행사에서 발행하는 비율(29.2%)보다 ‘일반 기업·단체·기관’에서 발행(53.6%)하는 이른바 ‘사보’나 ‘홍보지’ 형태가 더 높았다. 이 비율은 2013년 조사 결과(39.9%)보다 무려 13.7%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해오던 우수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이 축소를 거듭하더니 결국 지원 사업 자체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수 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은 문예진흥기금 정기 공모 사업의 일부로, 2015년 초에는 지금까지 지원해왔던 문예지 규모를 50여 개에서 15개로 축소한 바 있다.
전업 작가로는 도저히 살아남기 힘든 시대, 괜찮은 잡지의 원고료는 장당 1만원 내외라고 하지만, 그 정도 수입으로는 ‘돈 못 버는 자영업자’도 아닌 극빈자 취급받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나마 과거 순문학(?)하는 이들에겐 평단의 평가와 더불어 언젠가는 가치를 평가받게 되리라는 자긍심이라도 있었지만, 오늘날엔 그런 영예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전문 잡지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건강하고 다양한, 비판적인 담론이 발붙일 최소한의 토양마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잡지가 사라지면 출판의 미래만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미래도 함께 어두워진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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