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박병호, 우에하라의 '패턴'을 털어버리다

오늘 1교시는 좀 딱딱한 용어 설명이다. 그것도 영어로 된…. 머리에 쥐가 나시더라도 조금 참으시라.

스플리터(splitter). 보통은 줄여서 그렇게 부르지만, 원래는 길다. 스플릿 핑거드 패스트볼(split fingered fastball)이다. 그러니까 손가락을 벌려서 잡고 던지는 공이라는 뜻이다. SF볼이라고도 한다. 우리한테는 포크볼(엄밀하게는 패스트볼이 아니기 때문에 구분되지만)이라는 일본식 용어가 익숙하다. 일반적으로는 직구처럼 오다가 떨어지는 성질을 가졌다.

많은 투수들이 이 공을 애용한다. 특히 보스턴 레드삭스의 일본인 마무리 우에하라 고지에게는 시그니처 같은 결정구다. 그는 딱 2가지 공만 던진다. 직구와 스플리터. 구사율은 거의 반반이다(2012시즌을 기점으로 50%를 넘어섰다). 체인지업, 슬라이더 같은 공도 있지만 실제로 쓰는 일은 1%도 되지 않는다.

월드시리즈 MVP를 차지한 2013시즌 그의 스플리터는 어마어마했다. 피안타율 .092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남겼다. 구종 가치가 무려 19.1로 ML 전체에서 압도적인 1위였다. 이제는 비록 예전 같지 않더라도 여전히 2할대 미만의 피안타율(2014년 .192, 2015년 .187)에 머물러 있다.

박병호가 치는 순간 우에하라는 아예 타구에 등을 돌렸다. 체념한 모습이었다. mlb.tv 화면

맞는 순간 뒤도 안돌아본 우에하라

어제(한국시간 17일) 이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볼카운트 2-2. 우에하라는 5구째 승부구로 스플리터를 택했다. 그러나 박병호의 강렬한 스윙에 걸린 타구는 큼직한 좌월 2루타가 됐다. 주자 2명이 모두 들어왔고, 우에하라는 이닝도 마치지 못한 채 조퇴 신청을 해야 했다.

당시 화면을 유심히 보시라. 타격 순간 박병호는 물론 수비수, 관중들까지 시선은 모두 공을 향했다. 하지만 정작 투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이건 무슨 뜻이냐. 우에하라는 맞는 순간 넘어갔다고 느낀 거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타구를 응시하고 다음 플레이를 준비해야 한다. 어제는 그 상황에 주자가 2명이나 있었다. 실전처럼 2루타성이라면 투수는 포수(경우에 따라서는 3루수) 뒤쪽 백업을 준비해야 할 타이밍이다. 기분 나쁘다고, 그런 것 대충하면? 물론 상당액의 벌금과 감독, 코치, 동료 선수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한다.

우에하라 정도 되는 선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면 그만큼 완벽한 타이밍에서 맞았다는 뜻이다. 아무리 큰 부상(작년 8월 손목 골절상)에서 복귀하는 와중이라고 해도, 메이저리그 정상급 마무리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결정구 스플리터를 그렇게 공략당하다니. 그것도 이제 미국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출내기한테 말이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1부는 볼카운트 싸움은 투수의 완승  

물론 안타를 허용한 공이 ‘치기 좋은 높이였다’, ‘밋밋하게 덜 떨어졌다’ 등의 분석도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5구째만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상황을 조금 더 줌 아웃시켜야 한다. 그래서 1~5구까지 볼배합의 전체를 읽어야 비로소 줄거리가 잡힌다.

‘박병호 대 우에하라’의 타석을 편의상 1부와 2부로 나눈다. 1부는 초구부터 3구까지다. 이 과정은 우에하라가 기초 공사를 하는 단계다. 즉, 유리한 볼 카운트를 잡아가는 과정이다.

① 초구는 아웃 코스. 존을 걸치고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 가만히 놔뒀어도 스트라이크가 됐을 것이다. 박병호는 적극적으로 나왔고, 타이밍이 밀리면서(늦으면서) 파울이 됐다. 우에하라 직구의 평균 구속은 89마일 밖에 안된다. 100마일 안팎의 마무리 투수들이 즐비한 가운데, 그를 지탱하는 힘은 회전력과 제구 능력이다. 그게 돋보인 공이었다. 카운트 0-1.

② 2구째도 역시 바깥쪽이다. 하지만 직구가 아닌 스플리터였다. 떨어질 뿐아니라, 슬라이더처럼 살짝 휘어져 나간다. 다행히 박병호가 유혹을 참았다. 그의 스플리터를 한 가지로 규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립과 손가락에 주는 힘의 균형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최고 클래스의 결정구인데. 어쨌든 카운트는 1-1.

③ 1구와 2구를 모두 외곽으로 몰았다. 이건 우에하라의 의도다. 타자의 중심을 한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3구째는 몸쪽에 붙였다. 역시 스플리터였다. 이번에는 싱커성 변화다. 안쪽으로 감기듯 휘어졌다. 배트가 나왔지만, 파울.

4구째 목적구, 5구째 승부구를 깨버리다 

 

1구~3구까지 전반부에서 우에하라는 1차 목적을 달성했다. 카운트를 1-2로 유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타자는 궁지에 몰아넣고, KO시킬 피니시 블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백전노장답다. 4구째에서 그런 신중함이 보인다. 포수가 사인을 내면서 반쯤 일어선다. 타자 눈 높이의 빠른 볼을 요구한 것이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던지는 이 공의 효과는 두 가지다. 혹시라도 배트가 끌려 나오면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은 로케이션이다. 막판에 몰린 타자는 직구와 변화구 두 가지 타이밍을 모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배트가 늦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아니라면? 타자가 잘 참아낸다면? 우에하라는 그것까지 대비했다. 그렇다면 4번째 높은 공은 목적구가 된다. 즉 다음에 던질 진짜 결정구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의미다. 일본 야구에서는 이런 걸 ‘보여주는 공(見せ球ㆍ미세다마)’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승부구(勝負球ㆍ쇼부다마)’를 던지기 위한 밑밥 같은 역할이다.

즉 4구째 눈 높이의 빠른 공을 준 뒤, 5구째는 그와 비슷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던진다. 대부분의 타자는 당하기 마련이다. 이건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쓰는 투수들이 애용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우에하라도 그 ‘패턴’으로 수많은 위기들을 헤쳐나갔다.

물론 4구째 직구는 너무 높았다. 포수가 간신히 잡을 정도였다. 위에 캡쳐 해놓은 mlb.tv의 중계 화면을 보시라. 아마 우에하라의 겨냥은 붉은 색 선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5구째 스플리터에 대해 그렇게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네소타 지역의 유력한 매체인 <스타 트리뷴>이 적절하게 표현했다. 어제 날짜로 플로리다 포트 마이어스에서 보낸 기사의 첫 줄이다. ‘그 친구가 해낼까? 박병호의 트윈스행에 대해 그런 의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단계는 지나갔다. 공식적으로.’ (The hey-maybe-he-can-do-this phase of Byung Ho Park’s tenure with the Twins officially has passed.)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