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톡스]"다양하구나, 방원아"..사극이 정도전을 보내는 법

[Dispatch=김지호기자] 1398년 8월 26일 늦은 밤, 이방원이 남은의 집을 에워쌌다. 정도전은 겁을 먹은 채 엉금엉금 기어 나왔고,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 정도전 :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예전에 공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 주소서.
▶ 이방원 : 네가 조선의 봉화백이 되었는데도 부족한 게 있더냐? 어떻게 악한 짓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더냐?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정도전과 이방원의 마지막 대화다. 사료에 따르면 정도전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고, 이방원은 그의 목을 가차없이 베었다.
물론, 100% 사실이라 보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기록은 태종 대에 편찬됐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담아 서술한 내용이다.

드라마는 정도전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동안 '용의 눈물'(1998), '정도전'(2014), 육룡이 나르샤'(2016) 등에서 정도전의 최후를 그렸다.
드라마 속 정도전의 최후는 비장하다. 사료에 기록된 '비굴함'은 없다. 단, 이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앞선 두 드라마는 '절명시'에 집중했다. 죽기 전에 남긴 시를 대사로 옮겼다. 반면 '육룡'은 함축의 미를 살렸다. 간결하게, 끝냈다.
사극이 정도전을 보내는 방법이다. '용의 눈물', '정도전', '육룡'을 비교했다.

◆ 용의 눈물 | 절명시, 정도전 죽음의 교과서
'용의 눈물'이 레전드로 통하는 이유는?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종합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쪽에 치우지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했다.
정도전(김흥기 분)의 최후는 꼿꼿했다. 끝까지 기개가 넘쳤다. 이방원(유동근 분)의 설득을 완곡하게 거절한 뒤, '절명시'를 읊으며 죽음을 맞는다.
정도전이 이 '자조'라는 시를 언제 썼는지 알 수는 없다. 역사학자 또한 시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정도전은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
'용의 눈물'은 "허사가 됐구나"라는 마지막 문구에 집중, 최후와 연결지었다. 이는 이후 여러 사극의 레퍼런스가 됐다. 정도전 죽음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 정도전 | 정도전 바로 세우기의 모범답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했다. 이 역사의 승자는 '태종' 이방원이다. 그가 기록한 정도전은 비굴하기 짝이 없다.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모습….
'태종' 이후 정도전은 금기의 이름이었다. 최초의 조선인이지만, 최악의 조선인이었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권되기 전까지, 누구도 그를 언급할 수 없었다.
드라마 '정도전'은 그야말로 정도전 '바로세우기'였다. 이방원(안재모 분)의 입을 빌려 역사가 그의 뜻에 의해 기록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역사는 불변한다. 그러나 해석은 달라진다. 시대에 따라, 관점에 따라. 드라마 '정도전'은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을 알렸다. 역사의 해석은 현재의 몫이었다.

◆ 육룡이 나르샤 | 한줄요약, 그 함축의 맛
역사가 스포라면, 사극은 복습이다. 정도전의 최후 또한 여러 드라마에서 반복됐다. 이방원이 칼을 뽑고, 그는 절명시를 읊는 식이다.
김영현과 박상연 작가는, 함축을 택했다. 그 익숙한 죽음을 구구절절 보여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절명시'는 이 한 마디로 대체됐다. 바로 '고단하다'였다.
'육룡'은 마지막 대화 내내 함축을 구사한다. '민본'의 중요성을 재차 주입시키지 않았다. "니가 내 뜻을 제일 잘 알 것"이라는 '한줄요약'으로 생애를 정리했다.
그래서 정도전의 마지막은, 오히려 강했다. 가장 짧은 대화, 가장 적은 대사로, 가장 많은 것을 담아냈다. 고려의 혁명가이자 조선의 건설자에게 받치는 최고의 엔딩이었다.
Copyright © 디스패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