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직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송지혜 기자 입력 2016. 3. 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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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무업(無業) 상태에 처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일본은 2010년대 이미 무업 사회로 접어들었다.' 2003년부터 ‘일할 수 없는 청년’을 만나온 일본의 사회적 기업 ‘소다테아게(길러내다) 네트’의 구도 게이 이사장은 일본을 무업 사회라고 정의했다. 공공정책을 연구해온 도쿄 공업대학 니시다 료스케 부교수는 연공서열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형’ 경제 시스템과 사회안전망 부실이 청년 무업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출간한 책 <무업 사회: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를 통해 일본의 청년 무업자 2300여 명의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업률 이면의 청년 무업자 생활환경, 심리 상태 등을 추적했다. 지난 2월19일 ‘함께 일하는 재단’이 주최한 한·일 청년 비교 포럼에 참석한 구도 이사장과 니시다 부교수를 만났다.

ⓒ시사IN 조남진 : 구도 게이 씨(왼쪽)와 니시다 료스케 씨는 <무업 사회>에서 실업률 이면의 청년 무업자들을 분석했다.

청년 무업은 무슨 의미인가?

구도 게이(이하 구도):‘무업’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난해하다. 취업을 위한 훈련을 받거나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혹은 구직을 희망하지 않는 상태에 놓인 이들을 말한다. 일본 내각부와 후생노동성은 ‘15∼34세 비노동력 인구 중 가사도 통학도 하지 않는 자’로 규정한다. 2010년대 이후 일본은 한번 일자리를 잃으면 다시 일을 구하기 힘든 무업 사회로 접어들었다. 일본의 실업률은 3∼4%로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청년 세대만 놓고 보면 9∼10%로 급격히 높아진다(한국 청년실업률은 9.5%, 통계청 1월 발표).

니시다 료스케(이하 니시다):후생노동성에서는 2012년에 25세 청년을 기준으로 평생 기초생활수급을 할 경우와 노동시장에 진입한 경우의 비용 차이를 비교했다. 무업자 한 명당 1억5000만 엔이 더 든다고 추정했다. 내각부에서는 무업자를 56만명으로 보는데, 이는 총인구에서 2.1%를 차지한다(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학업이나 일을 하지 않는 한국 청년은 93만명에 이른다). 전년보다 적어지는 수치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지 절대적인 수가 줄어서가 아니다.

구도:1970년대 일본 총리를 지낸 다나카 가쿠에이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한 복지, 복지를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복지가 이뤄진 것이다. 일본 기업은 대졸자를 일괄적으로 채용해 입사동기 간에 유대감을 높인다. 연공서열이 매우 중요한 사회다. ‘일본형’ 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조직을 벗어나면 기업으로 재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이 198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고용과 복지 환경이 동시에 무너졌다. 청년층도 무업자가 되었다.

청년 무업자에 대한 오해는?

구도:2012년 민주당 정권이 끝나자 일본은 점차 보수적으로 변했다. 이전부터 히키코모리(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 니트(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현상이 사회문제로 지적되면서 편견은 공고해졌다. ‘게으르다’ ‘놀고 있다’처럼 청년이 무업자인 배경에는 자기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소다테아게 네트’에 찾아오는 청년 무업자들도 일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열등감을 느낀다. ‘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스스로 위축된다. 소다테아게 네트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번 무업에 처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소수자다. 베이비붐 세대 인구는 230만명이었는데 현재 청년 인구는 120만명이다. 또 198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불황이 지속됐다. 1990년대생은 출생률 저하를 거쳐 취직 빙하기를 겪는다. 구조적으로 봐야 한다.

ⓒ소다테아게 네트 제공 : 소다테아게 네트 소속의 청년이 “일하고 싶은 청년의 4명 중 1명이 정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소다테아게 네트는 어떤 일을 하나?

구도:청년 무업자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먼저 심리 상담을 받고 나면 90%가 직업훈련을 시작하지만, 이 가운데 70%는 돈이 없어서 지속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3개월 동안 15명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을 후원해달라고 기업에 호소했다. 나중에는 의지가 있지만 교통비가 없어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100% 취직할 수 있다는 증거를 내밀면서 교통비를 달라고 기업에 요청했다. 시혜가 아니라 투자다. 이들이 양질의 노동을 제공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업에 종사해보고, 실패하면 제조업에도 도전해본다. 신기하게도 일을 하지 않을 때 고립되던 사람이 일을 하면 일 외의 다른 세계와 만난다. 소다테아게 네트는 한 사람과 3년 정도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을 쭉 지켜본다. 2003년 발족한 이후 지금까지 1만2000명이 직업훈련에 참여했고 분야에 따라 성공률이 20∼90% 정도다. 지금은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한 사원이 190명에 이른다. 청년 무업자 56만명을 전부 지원하고 싶다. 일종의 ‘행정 기업’을 만들려고 하는데, 프랜차이즈처럼 각 지역에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을 세우는 거다.

일본 정부의 청년 무업자 대책이 있는가?

니시다:정부도 ‘무업 사회’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5년 4월 ‘생활곤궁자 자립지원법’을 시행한 게 하나의 성과다. 구체적인 고용과 지원 모델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자립·취업·생활 지원·주거 확보 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상담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아베 신조가 내놓은 슬로건 ‘일억총활약시대’(2050년 이후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한다)를 보면 청년층과 장년층의 활동을 북돋운다. 아베 총리가 매년 직장인 10만명 이상이 회사를 그만두고 취약계층으로 전락한다고 진단하면서 중장년, 청년층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동시에 억제하려는 시도다(최근 정부가 꾸린 ‘일억총활약시대 국민회의’ 구성원으로 구도 게이 이사장이 지목되었다. 30대 청년이 정부 회의에 참여한다는 점이 뉴스가 됐다). 2010년 제정된 어린이·청년육성 추진법’은 ‘청년’이라는 단어가 법률에 처음 등장해서 주목받았지만 사실상 성과는 없었다. 법률에 따라 청년 자립지원센터가 설치된 곳은 전국 1800곳 중 82곳에 불과해 2015년 내각부가 나서서 자립지원센터 설치를 의무로 규정했다.

한국의 청년 무업자 대책에 대해 조언한다면?

구도:관용 사회 모델을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포섭성, 연속성, 재도전 지원이다. 여러 상황에 처한 사람을 위해 다양하게 지원하고, 무업이 되더라도 다시 노동시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서울시가 15~29세 서울시 청년 3000명에게 청년수당을 지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 정부(지자체) 예산을 지원받으면 성과를 바로 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민간단체가 사업을 시작하고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니시다:일본과 한국의 청년 무업자 문제는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꿈이 좌절된 사람에게도 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데, 정신적 지원이나 심리적 안정을 지원하는 일은 찾기 어렵다. 소다테아게 네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무업자가 기관에 방문한 목적은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의식의 변화를 행동의 변화로 이어나갈 수 있게끔 도와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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