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억의 야생화 이야기(15)-꿩의바람꽃] 아네모네, 아름답지만 덧없는 사랑

2016. 3.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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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학자 유기억교수가 들려주는 야생화 이야기,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림=홍정윤. 꿩의바람꽃>

꿩고비, 꿩고사리, 꿩의다리, 꿩의다리아재비, 꿩의밥, 꿩의비름, 꿩의바람꽃 등은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식물 중 이름에 ‘꿩’이란 단어가 들어간 종들이다. 이 중에는 ‘꿩의밥’처럼 이름만으로 꿩의 먹이가 되는 꽃이나 열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종도 있지만 꿩의바람꽃(Anemone raddeana)처럼 전혀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종류도 있다.

일반적으로 바람꽃이라 불리는 종들은 대부분 꽃집에서 아네모네로 불리는 것이다. 물론 꽃집에서 판매하는 아네모네는 꿩의바람꽃이나 바람꽃처럼 우리나라 숲에 절로 나 자란 것이 아니라 지중해 연안에서 들여와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식물이다. 어쨌든 바람꽃속에 포함된 종류를 통틀어 바람꽃이라 표현하는데 꽃의 아름다움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얼마 전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끼워 놓고는 잊어버렸던 꿩의바람꽃 사진을 여러 장 찾았다. 지난 2006년 치악산 자연 자원조사를 할 때 계곡 주변에서 찍은 것이었다. 계곡물과 꿩의바람꽃의 흰색 꽃이 어우러져 있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아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몇 장을 골라 아내에게 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예쁜 꽃이니 그림으로 그려 달라”는 주문과 함께였다.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느닷없는 이런 부탁들을 무척이나 반겼다. 내가 식물에 대한 책을 쓰게 되면 자신이 그린 그림을 실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면서 말이다. 물론 그림 솜씨가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하는 바람이 더 크다. 뜻이 있고 좋은 일이라 의견을 모은 뒤 처음으로 그린 식물이 꿩의바람꽃이라 우리로서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속명 ‘Anemone’는 지중해가 원산지인 아네모네의 그리스 이름으로 ‘바람의 딸’이란 뜻인데, 우리 이름이‘ 바람꽃’이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꿩’이란 단어가 붙은 것은 아마도 꽃이 활짝피기 전 꽃봉오리가 땅 쪽을 향하고 있는 모양이, 마치 봄나들이를 나온 꿩의 가족들이 목을 길게 빼고 먹이를 찾는 모습과 닮아서 붙여진 듯하다. 종소명‘raddeana’는 시베리아 식물연구가인 라데(Radde)를 기념하여 붙인 것으로 영문 이름도‘ Radde Anemone’라고 한다.

꽃말이 ‘비밀스러운 사랑’, ‘덧없는 사랑’, ‘사랑의 괴로움’이라 그런지 노랫말이나 시 등에 임을 사모하는 애절함이나 슬픈 이미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바람꽃 종류는 약 13종인데 한라산 꼭대기에서만 자라는 세바람꽃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부 이북 지역의 숲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다만 꿩의 바람꽃만큼은 우리나라 전역에 폭넓게 분포한다.

이 중 9종류는 환경부의‘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세바람꽃은 V등급, 국화바람꽃·홀아비바람꽃·회리바람꽃·바람꽃·쌍동바람꽃은 IV등급, 들바람꽃은 III등급, 외대바람꽃은 II등급, 꿩의바람꽃은 I등급에 각각 포함되어 있어 바람꽃 종류들이 식물학적으로 가치가 높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꿩의바람꽃과 가장 모습이 비슷한 종류로는 국화바람꽃이 있는데, 꿩의바람꽃보다 잎이 가늘게 갈라지고 줄기에 털이 없는 것으로 구별한다.

한방에서는 꿩의바람꽃, 숲바람꽃, 바람꽃, 너도바람꽃의 뿌리줄기를 죽절향부(竹節香附)라 하여, 풍으로 인한 사지 마비와 요통에 사용하거나 종기와 외상 환부 에 생체를 쪄서 붙이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꿩의바람꽃은 주로 습한 지역의 물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봄 산행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힘든 산행 끝에 꽃을 활짝 피워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 주는 꿩의바람꽃 군락이라도 만나면 그 즐거움은 더할 나위없다. 또 쉴 만한 물가를 찾아 앉았을 때에는 조용히 벗이 되어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유기억 yooko@kangwon.ac.kr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며, 식물분류학이 전공인 필자는 늘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서 숲 해설가, 사진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생화를 주로 그리는 부인 홍정윤씨와 함께 책 집필 뿐 만 아니라 주기적인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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