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혔던 女독립운동가 97년 만에 빛 본다

2016. 2. 2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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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명 판결문 담은 '3·1운동편'

[서울신문]역사 속에 묻혔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97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3·1운동 97주년을 기념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담은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3·1운동편)’를 발간했다고 28일 밝혔다.

자료집에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한 여성 54명에 대한 판결문 34건과 3·1운동 참여를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여성 33명(6명은 판결문과 중복)의 수형기록카드에 대한 분석이 담겼다.

당시로서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곽진근(당시 57세·강원도 철원)은 1919년 주민 300∼400명을 이끌고 친일파 박의병의 집으로 몰려가 “너희 집에 머무르는 이완용 부부를 내놓으라”며 친일세력에 항거했다.

당시 13세 소녀였던 한이순은 같은 해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시장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자료집에서는 기생들의 구체적인 활약상도 소개됐다. 통영 기생 이소선과 정막래는 1919년 4월 ‘기생단’을 조직하고, 금반지를 팔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여성독립운동가 54명 중에서 학생(26명), 교사(9명)가 가장 많았으며, 연령대는 10대(27명), 20대(18명), 30대(6명), 50대(2명) 순이었다.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3·1운동편)는 29일부터 국가기록원 누리집(www.archives.go.kr)에 공개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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