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공간>골목 사이 얼굴 맞댄 옥탑방.. 다닥다닥 情으로 이어진 동네

김낙중 기자 2016. 2. 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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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득이’의 촬영지인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왼쪽 옥탑방이 동주(김윤석)의 집이고 오른쪽 하늘색 지붕 옥탑방이 완득(유아인)의 집이다. 그 사이로 완득 아버지의 티코 한 대만 세워도 꽉 차는 골목이 있다. 이 동네는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왼쪽 작은 사진은 완득이가 “동주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던 교회. 김낙중 기자 sanjoong@

(27) 이한 감독 영화 ‘완득이’ 촬영지 성남 신흥2동



집과 집 사이 물건 던져 주고받고

경차 한 대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



최고의 전망이 있는 낡은 옥탑방

담벼락 올린 화분들이 만든 꽃길



영화속 완득이같은 소년도 살고

모두에게 열린 작은 교회도 있어



조명설치 등 촬영여건 안좋았지만

선한 주민들 따뜻한 마음 베풀어

사람들에게 영화 ‘완득이’를 얘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영화는 감독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을 더욱더 믿게 만든 영화가 바로 ‘완득이’다. 지난 1994년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 집에서 나와 내가 향한 곳은 서울에서 월세가 가장 싼 동네였다. 화장실도 내부에 없는 월세 15만 원짜리 반 지하방. 곰팡냄새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그 방으로 들어가면서 경제적 패배자가 된 느낌과 이곳에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맴돌았다. 그러나 동네에 대한 이질감이나 두려움이 없어지는 데는 단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사람들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해 파 한쪽, 계란 한 개도 파는 구멍가게 주인아저씨. 마진이 남을까 할 정도로 푸짐하고 저렴한 백반. 넉넉지 않아도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담이 낮은 동네이니만큼 그들의 얼굴과 마음이 잘 보였다.

이 동네 주민들의 인심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 있었다. 수해가 나서 동네가 물에 잠긴 일이 있었는데 물이 안 들어온 2층에 사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양수기를 구입, 수해 입은 집들의 물을 퍼주고 다닌 것이다. 냉장고가 물놀이용 튜브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는 반지하 내 방에 양수기를 들고 사람들이 왔을 때 당연히 나라에서 보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움에 가슴이 뜨끈해져 있을 때 이분들의 말이 전기가 되어 온몸에 흘렀다. “미안하더라고요. 우리만 편안히 있는 게.”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이 동네에서 보낸 나는 이 동네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김려령 작가의 소설 ‘완득이’를 읽으며 마치 그 동네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나의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완득이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감이 없는 그저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캐릭터라고 느꼈을 것이고, 영화로 만들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화를 찍기 위해 완득이가 사는 동네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다. 왜냐하면 소설 속에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는 상황들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예를 들면 동주 선생님의 옥탑방에서 완득이의 옥탑방이 보여야 하고, 두 옥탑방의 거리가 햇반을 던지고 받을 만큼이어야 했다. 또 집 앞 골목이 티코 한 대만 세워놓아도 꽉 차 보여야 했다. 스태프들이 총동원돼 완득이 동네 찾기를 해 수십 곳의 후보군 중 두 군데로 압축됐다. 하지만 두 장소를 놓고 또 갈등하게 됐다. 누가 봐도 A와 B 중 A가 완득이 동네로 더 적합했지만 그곳은 촬영 여건이 좋지 않았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들 때문에 촬영용 차량이 올라가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조명 스탠드 하나 편히 설치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도움을 주신 분이 조용규 촬영감독이다. 조 감독은 너무도 당연히 A의 손을 들어주셨다.

그곳이 바로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이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대부분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건 바로 촬영에 가장 걸림돌이 됐던 골목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길이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계획되고 깎아지고 메워지며 편리해졌지만 이용의 편리함 외에는 별다른 기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틈만 나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좁은 골목길 사이를 누빈다. 나의 이런 취미를 ‘아무 동네나 여행하기’라고 이름 붙였다. 낯선 골목으로 들어서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렴풋이 보인다. 신흥동의 골목길은 항상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완득이의 동네로 묘사되는 거의 모든 장면이 신흥동에서 촬영됐다.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촬영이 매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상처럼 촬영여건은 최악이었지만 사람들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거의 없었다. 야간 촬영을 하며 빛이 센 조명을 여러 개 켜놓으면 사람들이 잠을 못 자겠다고 민원을 해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작부 스태프들이 주민들을 찾아가 양해를 구하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촬영을 중단해야 한다. 신흥동은 주택 고도밀집 지역이기 때문에 촬영 전부터 이런 일에 대한 염려를 많이 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방문해 촬영공지를 했다. 그래도 속된말로 깽판을 치는 사람이 나오면 부득이하게 촬영 장소를 옮겨야 하는데 다행히 신흥동에서는 석 달 가까운 촬영기간 동안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골목이 좁아 배우들의 차가 촬영장 근처까지 올 수 없었고, 분장을 하고 휴식을 취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한 집을 섭외했는데 그 집에 또 다른 완득이가 살고 있었다. 잘 자란 까까머리 남자아이는 중학교 2학년생으로, 영화 속 완득이처럼 아버지가 돈을 벌기 위해 전국을 떠돌아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 아이를 보며 어딘가에서 동주 선생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수많은 완득이를 떠올렸다. 또 그 동네에는 영화에서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교회도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소설 속 공간과 흡사한 동네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소설을 쓴 김 작가가 신흥동 바로 옆에 살았었다. 김 작가로부터 소설 ‘완득이’를 신흥동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바탕으로 집필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이런 이야기를 촬영 장소를 구하기 전에는 전혀 듣지 못했다. 김 작가도 우리가 신흥동에서 촬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고 한다. 영화 ‘완득이’는 그렇게 원작 소설과의 깊은 인연으로 탄생했다.

촬영 중반 즈음 동네 맨 위에 있는 완득이집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세상이 다 보였다. 멀리 하늘도 보였고, 도시의 번화가와 유흥가도 보였다. 점처럼 보이는 가로등 아래로 가파르게 경사진 골목길을 힘겹게 걸어 오르는 할머니도 보였고, 앞집 거실에서 생선을 발라 물 만 밥에 얹어 먹는 아저씨도 보였다. 유명한 홍콩 야경을 본 적이 있는데 엄청난 빛의 군락인 그곳보다 신흥동 야경이 더 장관이었다.

신흥동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화분을 담벼락 위에 올려놓는다. 마당이 좁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려놓은 화분들이 골목을 꽃길로 만들었고,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그 꽃들을 볼 수 있었다. 집이 작고, 골목이 좁은 만큼 사람들의 사이도 가까웠다.

이 동네 좁은 길이 내가 살던 동네의 길과 연결됐고, 동네 사람들이 촬영팀을 바라보는 눈길과 건네는 말 한마디가 따뜻하게 다가왔다. 나는 신흥동 주민들을, 그곳의 골목길을, 촬영장 2층에 살던 또 다른 완득이를, 혼자 쓸쓸히 걷던 할머니를 알게 됐다. 그러면서 조금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신흥동과의 인연은 ‘완득이’ 다음 작품인 ‘우아한 거짓말’로 이어졌다. 영화 속 천지가 자주 가는 도서관이 이 동네에 위치한 구립도서관이다.

완득이가 개봉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3년 전쯤까지 시간이 나면 신흥동에 가서 촬영 때처럼 성남의 야경을 내려다봤는데 이제는 기억이 가물거리는 추억의 장소가 됐다. 신흥동의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소망을 하나 품어본다. 그 골목길에 사는 진짜 주인들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어지면 좋겠고, 그 골목길의 이야기들도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제고 다시 찾아가도 그때 만났던 그분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 있길 바란다. 갈림길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서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그런 동네로 남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촬영 기간 내내 불평 없이 촬영팀을 따듯하게 대해준 신흥동 주민들께 촬영팀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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