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두살 줄이자-후기①] "나이는 벼슬이 아닙니다"

2016. 2. 2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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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몇 학년 몇 반이야”, “어린 것들이 뭘 알아” 세대간 소통 단절

- 친구 사귈 때도 ‘동갑’이 첫번째 조건…인간관계 좁아지고 사회 경직시키는 주범

-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상팔하팔’ 당연시…“청와대ㆍ국회 앞장서 문제 정리해야”

[헤럴드경제=법조팀] 솔직히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을 받을 줄 몰랐습니다. ‘나이 두살 줄이자’(본지 16일자 1ㆍ4면 참조) 기획은 ‘100세 시대를 맞아 좀 더 젊은 느낌으로 살면 어떨까’, ‘한국식 나이와 만 나이 혼용으로 국민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을 공론화하자’는 두 가지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떤 30대 직장인은 “우리 딸이 12월생인데 벌써 두 살이 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강한 지지를 보내주셨고, 한 어르신은 “‘한국식 나이’는 고유한 문화인데 이게 불편하다고 버리자면 아예 우리 식을 다 포기하고 서양에 편입되는 게 낫다”며 따끔한 충고를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전부 맞는 말씀이고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 목소리로 “‘나이로 서열을 가르는’ 우리의 독특한 문화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신 점입니다.

사실 한국처럼 나이에 민감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희귀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이 몇 살인지부터 따지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호칭과 서열 문제를 정리하고 자신이 우위에 선 다음에야 마음의 안심이 되기 때문일까요.


이런 문화 때문에 지하철이나 술집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시비가 붙었을 때 “야, 너 몇 학년 몇 반이야”라는 비상식적 멘트가 서슴없이 나오고, 갓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은 빠른 나이ㆍ만 나이ㆍ민증(주민등록증) 나이 등 호칭에 대한 교통정리로 애를 먹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이 일상적이지만 외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비매너인 행동들입니다.

문제는 이같은 서열 문화가 우리 사회를 경직되게 하고 각종 병폐를 낳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젊은 것들이 뭘 아느냐”며 마음에 안 드는 어린 직원을 찍어누르는 직장 상사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이 따지길 좋아하시는 분들, 정작 본인 나잇값은 제대로 하고 계시냐”고 되묻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극심한 세대 차이도 결국 따지고 보면 서열 가르기로 인한 소통 단절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런 분위기는 사회 곳곳에서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학교, 관공서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힘든 일을 몰아주고 ‘짬밥’이 좀 있으신 분들은 아예 손놓고 구경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바로 ‘동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거나 성품이 훌륭하고, 서로 배울 점이 많다고 해도 이런 조건은 2, 3번째 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평생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인데 겨우 나이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처음부터 배제된다고 생각하니 아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례들이 과연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전통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어른공경 문화가 강하긴 했지만,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는 교제 문화 또한 공존했습니다. 상팔하팔은 위아래 여덟살까지 자유롭게 말을 놓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이덕형과 이항복이나, 평생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정도전과 정몽주도 다섯 살의 터울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더 큰 나이 차가 있어도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혼 풍습이 정착된 이후 아홉살 차이가 나면 자칫 부친 또래와 친구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여덟살로 제한된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와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이런 교제문화는 점점 변질됐습니다. 대학교의 학번이 단순히 입학년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군인들의 군번처럼 위아래를 가르는 기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불과 한 두 살 차이인데도 서로 군기를 잡거나, “형, 언니” 소리를 듣기 위해 실제 나이를 속이고 악착같이 빠른 나이까지 따지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유연성을 잃고 사회가 너무나 엄숙하고 딱딱해진 것입니다.

‘100세 시대’, ‘글로벌 시대’,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전세계가 피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만 유독 이렇게 기형적이고 소모적인 문제로 옥신각신 하는 걸 보면 답답하다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나이와 서열 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저부터라도 여덟살 어린 동생이 갑자기 말을 놓자고 하면 쉽게 수긍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는 꼭 고쳐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SNS나 댓글을 통해 적지 않은 분들이 ‘만 나이’ 문화 정착이 우리 서열 문화를 깨뜨리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한편으론 청와대나 국회에 계신 ‘높으신’ 분들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중재하고 교통정리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미 법적으로 만 나이로 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이외에 강제성은 없습니다. 때문에 다시금 방향성을 제시하고 의견을 정리해주는 주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일보다는 국민들의 어려운 문제를 앞장서서 정리하라고 뽑은 국민의 대표들이 아니신가요.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면 나이 많은 베테랑 선수가 어린 루키 선수와 격식없이 장난을 치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테랑 선수가 어린 선수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오히려 격의없고 친근한 모습일수록 선수와 팬들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손윗사람은 경험과 지혜를, 손아랫사람은 패기 있고 참신한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들은 좀 더 나은 대한민국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 봅니다.

bigroot@heraldcorp.com

지난 16일 ‘나이 두살 줄이자’ 시리즈가 나간 이후 독자 여러분들로부터 뜨거운 성원과 질책을 받았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관심과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메일과 전화, SNS 등으로 한꺼번에 문의가 들어오면서 일일이 답변 드리지 못했던 점에 대해 양해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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