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트존>세계팔씨름연맹 1977년 출범.. 韓 등 85개국 가입


팔씨름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 3가 한 건물의 지하에 ‘팔뚝 굵은’ 남성들이 모였다. 헬스클럽인 듯 웨이트트레이닝 기구가 빼곡하게 들어찼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러닝머신 같은 하체 강화 기구는 없고 바벨, 덤벨 등 팔 운동 기구만 잔뜩 모여 있기 때문.
딱 봐도 힘깨나 쓸 것 같은 사나이들은 ‘그립보드’의 아지트에서 조그만 테이블에 마주 앉더니 팔을 맞잡고 자웅을 겨뤘다. 그립보드는 포털사이트 다음카페이며 1만3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한 국내 최대 팔씨름 동호회다. 자타가 공인하는 팔씨름의 강자 김도훈(30), 홍지승(28), 오동표(25), 이태경(23) 씨가 한판 대결을 펼쳤다. 손을 맞잡자마자 ‘알통(상완근)’이 불끈 솟아올랐다. 팔씨름 국내 랭킹 ‘톱10’ 안에 든다는 4인방은 “살살 하자”고 약속했지만, 쉽게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팔뚝엔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팔씨름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기에 오래전부터 인기를 누려왔다. 해외에서는 팔씨름이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1977년 불가리아에서 세계팔씨름연맹(WAF)이 출범했고,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85개국이 WAF에 가맹했으며, 매년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7년 팔씨름을 소재로 한 영화 ‘오버 더 톱’이 개봉됐는데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이 전설적인 팔씨름 챔피언 존 블젱크를 연기했다.
4명의 ‘하드웨어’는 믿기 힘든 수준이다. 홍지승 씨의 상완근, 흔히 알통이라고 부르는 위팔의 둘레는 42㎝다. 김도훈 씨는 44㎝, 오동표 씨는 48㎝, 이태경 씨는 50㎝에 이른다. 50㎝면 19.7인치로 웬만한 여성의 허벅지 굵기다. 팔꿈치에서부터 손목까지를 이르는 전완근(아래팔), 즉 팔뚝도 어마어마하다. 홍지승 씨의 팔뚝은 36㎝, 김도훈 씨는 37㎝, 오동표 씨는 40㎝, 이태경 씨도 40㎝다.
이태경 씨는 서울대 팔씨름 챔피언이다. 서울대 에너지공학과를 수료했고 졸업을 미룬 채 사회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다. 로스쿨에 진학한다는 계획이다. 팔씨름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평소 웨이트트레이닝을 즐기다 팔씨름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오는 3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널드스포츠페스티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한다.
그립보드 멤버들은 자체 선발전을 치러 아널드스포츠페스티벌에 선수를 파견하고 있다. 아널드스포츠페스티벌은 2013년부터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개최되고 있다. 할리우드 액션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최하며 암레슬링 챌린지, 즉 팔씨름이 인기 종목이다.
이태경 씨의 목표는 동메달. 지난해엔 홍지승 씨가 암레슬링 챌린지에 참가해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입상(3위)했다. 이태경 씨는 “아직은 학생이라서 300만 원 가까이 되는 참가 비용을 부모님께서 후원해주셨다”며 “스폰서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입상하고 싶다”고 말했다.
팔씨름은 많은 훈련이 요구된다. 웨이트트레이닝은 기본. 팔심을 키우기 위해 고탄력 밴드 당기기, 바벨 들고 버티기 등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손가락 힘도 중요하므로 스포츠 클라이밍 훈련을 응용하기도 한다.
이태경 씨는 “팔씨름은 30초 안팎에서 승부가 가려진다”며 “그래서 70∼80㎏의 바벨을 들고 20∼30초간 버티는 ‘맞춤형’ 훈련을 한다”고 설명했다. 홍지승 씨는 “팔씨름 훈련과 일반 근력 운동의 차이점은 팔을 움직이는 가동범위에 있다”며 “팔씨름을 할 땐 팔을 수직에서 수평으로 90도 정도 움직이기 때문에 이 각도 내에서의 근력을 집중적으로 키운다”고 말했다. 경희대 교육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홍지승 씨는 2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 5시간 30분 동안 1000 대 1의 팔씨름 대결을 펼쳤었다. 170㎝, 75㎏으로 크지 않은 체구지만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도훈 씨는 팔씨름 전용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팔씨름 경력은 2년. 이젠 팔씨름과 결혼했다는 말까지 듣곤 한다. 김도훈 씨는 “하루 9∼10시간씩 팔 훈련을 할 때도 있다”며 “소문을 듣고 팔씨름 체육관에 찾아오는 마니아들에게 무료로 팔씨름을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비보안업계에 근무하는 오동표 씨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태권도, 복싱, 팔씨름 등으로 몸을 단련해왔다. 오 씨는 2014년 10월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열린 닛산자동차의 홍보 이벤트 팔씨름대회에서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과 맞붙었다. 오 씨는 “유도와 격투기의 세계적인 스타였기에 긴장했지만, 손을 잡아보니 ‘느낌’이 오더라”면서 “생각보단 추 선수의 힘이 약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팔씨름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훅, 탑롤, 프레스 등 기술을 익혀야 진정한 강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훅은 손목을 꺾고, 탑롤은 반대로 비틀며, 프레스는 누르는 기술이다. 세 가지 기본 기술을 손가락의 위치, 힘의 방향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응용한다. 비교적 간단하지만 규정이 있다. 엄지와 검지를 잡을 때 반드시 검지의 첫 번째 마디가 드러나야 한다. 또 처음 준비 자세에서는 손목을 곧게 펴야 한다. 어기면 반칙이다.
체격이 크면 팔씨름을 잘한다는 건 ‘이 세계에선 잘못된 상식’으로 통한다. 김도훈 씨는 “체격이 크면 힘이 세고 그래서 팔씨름에 유리하겠지만 훅, 탑롤, 프레스 등의 기술로 팔심을 얼마든지 상쇄할 수 있다”며 “정확하고 올바르게 기술을 갈고닦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에선 대개 20대, 늦어도 30대 초반에 전성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팔씨름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절정기다. 홍지승 씨는 “팔씨름은 텐돈, 즉 힘줄을 쓰는 운동이고 사람의 힘줄은 20대보다는 30∼40대에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해외 유명 팔씨름 선수 중 40∼50대 연령층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그립보드 운영자인 배승민(32) 씨는 “미국 유학 시절 팔씨름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미국에선 악력이 하나의 스포츠이고, 그립 스포츠라고 부른다”면서 “국내에선 팔씨름이 스포츠로선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저변이 더 확대돼 많은 이가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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