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매그넘 컨택트시트..'결정적 순간'의 민낯
[경향신문] 세계가 주목하는 ‘한’ 장의 사진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강조하던 “결정적 순간”조차 편집된 결과물일까.
프랑스 사진작가 마크 리부의 ‘에펠탑 페인트공’ 사진 속 인물은 위험한 고공에서 우아하고 날렵한 포즈를 취한다. 공중곡예와도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밀착인화지’를 보면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착인화지(콘택트 시트·Contact Sheet)는 한 롤의 필름을 순서대로 인화해 놓은 것이다. 사진가는 촬영한 전체 장면을 한 눈에 살펴보며 최종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카메라에 담은 모습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도구이자, 유일무이한 단 한 장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스케치북인 셈이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지난 1월16일부터 <매그넘 콘택트 시트>전을 열고 있다. 국제자유보도사진가단체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의 대표작가 65명이 남긴 밀착인화지 70여점을 공개한다. 거장들이 찍은 결정적 순간의 ‘민낯’을 드러내는 셈이다.
전시에선 수동카메라만 사용하던 1930년대부터 디지털시대인 현재까지 한 세기의 궤적을 담았다. 사진가가 어떻게 주제에 접근했는지, 작업과정 중의 실수, 선택되지 않은 B컷들, 사진 편집과정이 낱낱이 드러난다.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폴 푸스코의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 필립 존스 그리피스의 베트남 전쟁, 토마스 횝커의 9/11 테러 사건 등 역사적 기록을 볼 수 있다. 체 게바라, 말콤 엑스, 마일스 데이비스, 비틀즈 등 다양한 인물들의 상징적인 초상도 만날 수 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밀착인화지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지만, 예술적 유물과도 같은 존재”라면서 “이번 전시는 세계 역사의 주요 순간들과 그것을 목격한 사진가들의 은밀한 작업과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밝혔다.
■MARC RIBOUD - Eiffel Tower Painter
“나는 곧장 탑을 걸어 올라갔다. 약 한 시간쯤 걸린 것 같다. 50mm 렌즈만 가진 채 빙글빙글 도는 계단을 올라가느라 근접이나 광각촬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정확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이런 제약조건, 즉 수단의 한계가 나에게는 오히려 행운이었다. 이 밀착인화지에서 사진을 골라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실로 드문 경우였다. 최고의 사진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확한 음이 귀를 때리듯이 말이다. (···)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페인트공에게 허락을 받았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큰일 날 소리! 그런 곳에서 말을 걸다가는 미끄러져서 실족할지도 모릅니다.’”
■RENE BURRI - Ernesto ‘Che’ Guevara
“곧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잠시 후 두 사람은 아예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대화는 점점 열띤 토론으로 발전했다. 이따금 그는 상대방을 매료시키는 톤으로 말하기도 했고, 때로는 서류뭉치를 움켜쥐기도 했다. 내가 찍은 사진 중에는 그가 무슨 숫자들을 적는 장면도 하나 있다. 때때로 체 게바라는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가, 군화에 전투복 차림을 한 채 되돌아오곤 했다. 그가 시가 끝을 물어뜯을 때면, 내게도 한 개피쯤 건네주기를 기대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그는 토론에 너무 깊이 몰두해 있었다. 두 시간 내내 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게 내게는 행운이었다. 그는 심지어 한 번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참 특이한 일이었다. 나는 계속 그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사진 속에서 그가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준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STEVE MCCURRY - Dust Storm
“길을 달리다가 모래폭풍이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몬순이 시작되기 전이면 으레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햇빛이 비치다가 갑자기 바뀌어 강풍과 함께 어두워지면서 먼지가 가득했다. 숨쉬기조차 힘들었고, 조류처럼 휘몰아치는 모래벽이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나타나 앞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빛은 어두운 오렌지톤으로 바뀌었고,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 내 최초의 본능은 휘몰아치는 모래먼지로부터 카메라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새 카메라는 항상 살 수 있지만 이 여인들을 찍을 기회란 절대 놓칠 수 없는 값진 것임을 깨달았다. 여인들은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직물로 된 옷을 입고 있었지만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THOMAS HOEPKER - 9/11
“다음 날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서, 매그넘 동료들이 무너진 잔해와 불길 가까이 접근해서 찍어온 엄청나고 충격적이며 감동적이기까지 한 사진들을 모두 봤다. 거기에 비하면 내가 찍은 사진은 보잘 것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골라보았지만, 느긋해 보이는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나오는 사진을 ‘B급’으로 분류한 박스 속에 던져 넣어버렸다. 그 사진은 거기 그렇게 3년 넘게 보관된 채로 있었다.
2005년, 나는 회고 전시회와 사진집 출판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고향인 뮌헨의 사진미술관 큐레이터였던 울리히 폴만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작업이었다. 그가 내 B급 박스를 살펴보고 컬러슬라이드 하나를 찾아냈는데, 그게 바로 오늘날 내 작품 중 가장 많이 출판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진이 됐다.”
“밀착인화지는 경험의 일기장이며, 또한 실수와 잘못, 그리고 막다른 길에 다다른 상황을 기록한 사적인 도구라 하겠다. 물론 행운의 순간을 포착한 도구이기도 하다.” - 크리스텐 루벤
글·사진 제공: 매그넘포토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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