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만 있다면..女작가들 부엌 화장실 가리지 않아
여성 작가들은 어떤 공간에서 글을 쓸까. 이 질문은 미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이다. 여성도 생각을 할 수 있고 교육이 필요하며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믿음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 35인의 창작 공간을 들여다 본 ‘글 쓰는 여자의 공간’(남기철 옮김ㆍ이봄)이 출간됐다. 그 자신도 여성 작가인 타니아 슐리는 프랑수아즈 사강, 거트루드 스타인, 한나 아렌트, 토니 모리슨, 수전 손택, 시몬 드 보부아르, 애거사 크리스티 등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활동했던 여성 작가들의 집필 장소를 조사해 책을 냈다. 카페, 부엌, 화장실, 도서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위대한 생각과 서사들이 나왔다. 운 좋게 자기만의 서가와 책상을 갖춘 방에서 글을 쓴 여성 작가도 있다. 물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치른 대가는 막대하다.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사후 200년이 돼서야 이름이 알려졌으나, 생전의 그가 원한 것은 글을 써서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것 자체였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 그는 당대의 완전한 이방인이었고 그는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에 대한 불만을 늘어 놓는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데만 몰두하면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겠어?” 자신의 이름이 아닌 ‘어느 숙녀(by a lady)’란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던 오스틴은 죽기 8년 전에야 오빠가 유산으로 물려 받은 집에 정착할 수 있었고, 여기서 1796년에 썼던 ‘첫인상’을 개작해 ‘오만과 편견’을 완성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20대 초반 그의 평생 연인이 될 장 폴 사르트르의 방을 구경하게 된다. 책과 종이로 가득했던 방은 보부아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나 그에게 집필 공간이 생긴 것은 1954년 ‘레 망다랭’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덕분이었다. 그 전까지 보부아르의 작업실은 주로 카페였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그는 남을 위한 살림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살림도 거부했고, 일생 동안 요리를 비롯한 가정사에 일절 손대지 않았다.
대담한 보부아르와 달리 상당수의 여성 작가가 가정사와 창작의 여유를 맞바꿨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는 1956년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했다. 휴즈는 플라스보다 먼저 유명해진 시인이었고 전통적인 부부 역할을 당연시하는 남자였다. 플라스는 대학 시절 장학금을 받던 우수한 재원이었으나 유명 시인과 결혼함과 동시에 두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고 정원을 가꾸고 식사를 준비하는 데 하루를 바친다. 자전소설 ‘벨 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버디 윌라드는 빤한 얘기라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내게 아이가 생기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그때는 시를 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면 의식이 세뇌된다는 게 사실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조사 태도는 치열하다기보다는 낭만적이다. 글의 상당부분은 조사 결과가 아닌 작업실 사진에 대한 감상문 혹은 추정이다. 그러나 당대의 모욕을 무릅쓰고 쟁취한 방에서 안광(眼光)을 뿜으며 앉아 있는 여자들의 사진은 어떤 글보다 강력하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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