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단독] 빙상연맹 102억 공개합니다

권종오 기자 입력 2016. 2. 1. 09:05 수정 2016. 2. 1. 13: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규정을 둘러싼 각종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반성은커녕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9일 대의원총회를 비공개로 개최한 것도 모자라 2015년 사업보고서와 수지결산서 내역 공개도 거부했습니다. 국민 세금의 지원을 받는 공공기관으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행태를 연이어 저지른 것입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각 경기단체 대의원총회는 1년 중에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굳이 비유하면 청와대 국무회의와 국회 본회의에 해당합니다. 전국 시도 연맹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모여 해당 경기단체의 새해 예산과 전년도 결산을 승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 자리입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2016-정기-대의원총회

대의원총회에서 어떤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거나 임원 선출을 위한 투표를 하는 등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안건은 공개하는 것이 국내 체육계의 오랜 상식입니다. 이번 빙상연맹 대의원총회 안건을 보면 언론에 공개하지 못할 사항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비공개를 고집했습니다.

빙상연맹은 이날 대의원총회에 앞서 포상 수여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지난해 각 부문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사람들이 상을 받았습니다. 11살 ‘피겨 신동’ 유영을 키워낸 한성미 코치에게는 지도자상이 수여됐는데 제자인 유영 선수가 직접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해줬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왜 연맹은 널리 알리지 않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포상 수여식이 끝나기 무섭게 빙상연맹은 방송 취재진에게 퇴장을 요구하며 대의원총회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저는 빙상연맹 고위관계자에게 “총회장에서 나갈 테니 대신 대의원총회에서 다룰 2015년 사업보고서와 수지결산서를 1부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습니다. 빙상연맹은 관련 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대한체육회는 물론 수많은 다른 경기단체에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한체육회의 고위 관계자는 “상급기관인 체육회도 1년 예산과 결산을 모두 언론에 공개하는 데 체육회의 지원을 받는 일개 가맹단체가 특별한 이유 없이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스포츠 취재기자를 하면서 대의원총회를 위해 인쇄된 사업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경기 단체를 경험한 것은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처음이자 유일합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빙상연맹 일반 직원들도 2015년도 사업보고서와 수지결산서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의원총회에 고문 자격으로 참석한 빙상 원로들도 아무 자료 없이 빈손으로 대의원총회 진행 상황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련 서류를 확보한 사람은 빙상연맹 수뇌부와 대의원 등 모두 20명 안팎이었습니다. 빙상연맹은 사업보고서와 수지결산서를 마치 남에게 절대 보여줘서는 안 될 국가 1급 기밀문서처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빙상연맹은 도대체 그 안에 어떤 비밀이 들어 있기에 공개를 그토록 꺼리는 것일까요? 저는 국내 체육계의 한 인사를 통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지난해 1월에 작성한 2015년도 사업계획서(안)와 수지예산서(안)를 확보했습니다. 확인 결과 연맹이 이번 대의원총회에서 대의원들에게만 제출한 사업보고서 내용과 총액에서 거의 똑같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SBS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빙상연맹의 지난해 예산은 약 102억 원입니다. 이 가운데 대한체육회가 기금 명목으로 지원하는 금액은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42억6천9백82만1천 원입니다. 빙상연맹이 공익사업적립금 명목으로 역시 대한체육회로부터 받는 금액은 5억9천99만4천 원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약 48억6천만 원이 됩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2015년 예산안

이밖에 회장사, 즉 삼성그룹이 경기력 향상 지원 목적으로 내는 후원금이 16억 원입니다. 2014년에 비해 1억 원 늘어났습니다. SK텔레콤, KB금융, 동서식품 등 각종 스폰서로부터 받는 돈과 국제대회 입장권 수입을 합친 총 마케팅 수익금이 약 16억4천9백만 원입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스피드스케이팅을 후원하는 SK텔레콤이 6억3천7백50만 원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KB금융이 잇고 있는데 쇼트트랙은 1억2백만 원, 피겨스케이팅은 8천5백만 원을 내고 있습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2015년 마케팅 수입

국제대회 개최 사업 수익은 약 14억5천5백만 원입니다. 지난해 2월 4대륙 피겨선수권을 개최하면서 국제빙상경기연맹(ISU)으로부터 8억6천9백만 원을, 서울특별시로부터 2억 원을 각각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타 세부 사항은 아래 사진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국제대회 개최 사업 수입

그럼 빙상연맹은 1년에 102억 원이라는 거금을 어디에 쓸까요? 세부 항목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고 몇 가지만 간추리면 국가대표팀 훈련비, 해외 전지훈련비, 후보 동하계 합숙 훈련비, 각종 국내외 대회 개최, 연맹 직원 급여 등에 사용됩니다. 한 예를 들면 국가대표팀 코치와 선수의 수당, 그리고 국내 훈련비로만 총 19억4천6백8만 원이 들어갑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사업 지출 예산

사실 빙상연맹의 예산 규모와 지출 내역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의 성격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중앙 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대한체육회로부터 지난해 받은 48억 원은 결국 우리 국민의 혈세에서 나온 것입니다. 설사 다른 돈은 공개하지 않더라도 국민 세금의 지원을 받은 48억 원은 반드시 공개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혈세로부터 나온 돈을 쓰고도 추후 세부 내역의 공개를 거부한 것은 법에도 맞지 않고 상식에도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대한빙상연맹은 최근 ‘빙속 여제’ 이상화와  볼썽사나운 규정 논란을 벌였고, 자신들의 늑장 대응으로 장거리 스타 이승훈은 월드컵 1차 대회에서 기권해 충격적인 ‘0점’을 받았습니다. (1월26일 취재파일 ‘빙속 스타 이승훈, 연맹 잘못으로 0점’ 참조) 뼈를 깎는 반성을 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대의원총회도 공개하지 않고 48억 원에 대한 지출 내역도 국민에게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을 존중한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행태입니다. 최근 잇따라 터진 국가대표 선수 폭행과 미성년자 음주 파문, 그리고 미숙한 행정 등 수많은 잘못을 범했으면서도 스스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끝내 깨닫지 못한다면 빙상연맹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저작권자 SBS & SBS Digital News Lab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