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

[인터뷰] '혁신 DNA' 후지필름 코리아 이다 사장 "반도체 역량 가진 디지털카메라 회사만 살아남는다"

한동희 기자 2016. 1. 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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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렌즈(위)와 소니 이미지센서. /각사 제공

2015년 10월 6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정기 임원세미나를 마치고 강당을 나오는 LG 임원들의 머리에는 한 기업의 이름이 계속 맴돌았다. 일본 '후지필름'이다. 이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단호한 어조로 "변하는 환경에 발맞춰 근본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며 후지필름을 '혁신의 사례'로 언급했다.

후지필름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2000억엔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다. 후지필름과 함께 필름 업계 대표주자였던 코닥은 파산을 피하지 못했을 때 후지필름은 활짝 날개를 폈다. 혁신과 실적 개선의 비결은 무엇일까.

후지필름 글로벌시장 전자영상·광학기기사업 총괄 겸 후지필름 코리아 대표인 이다 토시히사 사장(사진)은 지난 28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코어(core), 즉 핵심 역량을 재활용해 사업을 다각화한 덕분이다"고 털어놓았다.

이다 사장은 1991년 후지필름에 입사해 25년 근무한 정통 '후지필름맨'이다. 회사의 번창기와 위기, 재도약을 모두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꼈다. 그는 "2000년까지의 후지필름은 고감도 필름과 일회용 카메라를 기반으로 호황을 누렸다"면서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회사 실적이 꺾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도요타에 차가 없어진 위기…핵심 역량 재활용해 극복"

위기는 개별 회사가 아닌 산업 전체에 찾아왔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용 필름 산업 자체가 붕괴했다. 도요타에 차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다 사장은 "필름 생산의 주재료를 LCD 생산 재료로 공급하고, 피부 노화 방지 화장품과 제약에 쓰는 등 다양한 신규 사업 기회를 찾았다"며 "근본을 뒤집기보다는 근본을 다시 정의하는 혁신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지필름은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파도도 정면으로 맞섰다. 이다 사장은 "디지털 카메라는 전자회사들이 앞장설 수 있는 시장이었지만, 사진의 핵심 가치에 대해서는 후지필름이 더 이해도가 뛰어났다"고 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3가지는 렌즈와 센서, 신호처리 기술이다. 지난해 후지필름의 디지털 카메라사업 이익은 5년 전보다 50% 늘었다. 강점을 가진 렌즈와 렌즈 관련 기술 공급으로 수익성을 높인 것이다.

후지필름은 82년의 역사 중 70년을 렌즈 연구 광학 기술에 바쳤다. 렌즈는 빛을 얼마나 들이느냐에 따라 사진의 느낌을 좌우하는 카메라의 핵심 구성요소다.

이다 사장은 후지필름이 "이 '감'을 잘 알고 있다"며 "방송국 TV부터 스타워즈 영화를 촬영한 시네마 렌즈, 스마트폰 등 다양한 분야의 렌즈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후지필름은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가진 회사이기도 하다. 디지털 카메라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이미지 센서를 직접 설계해 쓴다.

현재 시중에 나온 35mm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의 규격은 라이카가 100년 전에 만든 형태를 따르고 있다. 후지필름은 이 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했다. 이다 사장은 "후지필름은 센서의 기술을 고도화해 이 사이즈의 절반 크기로 만든 이미지센서로도 풀프레임 만큼의 해상도를 나타낼 수 있게 했다"며 "라이카가 100년 전에 일으켰던 혁신을 미러리스에서 후지필름이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지필름은 이달 이런 센서를 쓴 신제품 미러리스 카메라 3종(X-Pro2, X70, X-E2S 등)을 한국에 출시했다.

이다 사장은 "사진의 정보를 빨리 처리해 반응 속도를 높이는 신호처리 기술 역시 사진 사업에서 축적한 화상처리 기술에서 따왔다"고 했다. 그는 코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가운데 후지필름이 건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사진 문화를 발전시킨 노력"을 꼽기도 했다.

2011년 일본 대지진 때 들이닥친 '쓰나미'는 많은 가정을 파괴했다. 그러면서 흙탕물에 휩쓸린 사진들도 많았다. 지진으로 가족들이 소중하게 간직해 온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다.

후지필름은 바다에 떠내려간 이 지역 주민들의 사진을 회수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모은 사진들은 모두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씻어내고 복구했다. 복원된 사진들은 주인의 품으로 되돌려보냈다. 이다 사장은 "소중한 순간을 보존하는 사진 문화를 계승하자는 게 후지필름의 생각이다"라며 "혁신 속에서 근본을 잊지 않는 노력인 셈이다"고 했다.

◆ "카메라 시장…반도체 기술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을 것"

이다 사장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미러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컴팩트 카메라(똑딱이)가 스마트폰 확대에 위축되고, DSLR(일반안사식)과 같은 무거운 시스템에 대한 수요도 줄고 있다"며 "반면 미러리스는 읽기, 포커스, 입력 속도가 빨라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다 사장은 "현재 카메라에는 기계 셔터가 들어있는데, 이 경우 연사 속도는 겨우 초당 8~10프레임에 그친다"며 "앞으로는 반도체인 센서의 발달로 기계 셔터의 종말이 올 것이다"고 했다. 연사 속도가 초당 30프레임을 넘어서면서 고화질 동영상 촬영도 쉽게 해낼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이다 사장은 "이런 카메라들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서 나올 것"이라며 “반도체 기술이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다 사장은 카메라시장 생존자로 경쟁자인 소니 정도만을 꼽았다. 소니는 국내 미러리스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업으로, 이미지센서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005930)에 관해 묻자 이다 사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국에서 삼성전자라는 존재는 막강했다"면서도 "그러나 앞으로는 상황이 변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디지털카메라 사업은 지난해 말 철수설에 휘말린 바 있다.

이다 사장은 아날로그 느낌이 살아있는 후지필름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서는 "꼭 옛날 감성을 강조하려는 디자인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카메라는 스마트폰 처럼 2년만에 바꾸는 게 아니다"라며 "5~10년이 지나도 싫증이 나지 않을 디자인에 최적의 조작성을 고려하다보니 이런 제품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다 사장은 5년간 한국 시장을 지켜봤다. 그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을 통한 쇼핑패턴이 이렇게 발달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 것 같다"며 "그러나 고가의 카메라는 직접 만지고 체험하지 않으면 100% 이해하기 어려운 제품이다"고 했다.

그는 오는 4월 서울 강남구 학동사거리에 직영 체험관을 열고, 한국 시장에서 고객들과의 접점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또 제품을 더욱 많이 써볼 수 있도록 임대 서비스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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