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 몸으로 말해도..자살자 가족 81% "몰랐다"
[경향신문] ㆍ복지부 ‘자살 사망자·유가족 심리부검’ 첫 발표
ㆍ현금인출 등 주변에 신호, 19%만이 ‘자살 징후’ 인지
ㆍ사망자 대부분 우울증 등 앓아…약물 치료 15% 불과
40대 남성 ㄱ씨는 숨지기 3개월 전부터 식사량이 급격히 줄고 체중이 감소했다. 건강검진을 받았으나 만성피로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전부였다. ㄱ씨는 피로감과 무력감이 점점 더 심해졌고 숨지기 1개월 전부터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부인에게 “회사에 가기 싫다”거나 “죽고 싶다”고 호소했으며, 뜬금없이 “내가 없으면 당신은 뭘 먹고 살래?”라고 묻기도 했다. ㄱ씨는 어느 날 출근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자살 사망자의 대다수가 사망 전 ‘경고신호’를 주변에 보냈지만 유가족의 81%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26일 ‘2015년 심리부검 결과 보고회’를 열고 성인 자살사망자 121명과 유가족 1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부검 결과를 이같이 발표했다.
심리부검은 가족·지인 등 주변인의 진술을 토대로 자살자의 사망 전 행동 변화를 재구성해 자살 원인을 추정하는 방법을 뜻한다. 정부 차원의 심리부검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리부검 대상 사망자의 93.4%가 사망 전 주변에 경고신호를 보냈다. 이들은 가족에게 ‘먼저 갈 테니 건강히 잘 지내라’고 하거나, 주변을 정리할 목적으로 현금을 다량 인출해 가족에게 줬다. 이발·면도 등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고,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거나 말이 없어지는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가족의 81%는 이런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해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신호를 알아차린 19%도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랐고, ‘설마 자살로 이어질까’ 하는 생각에 적극 나서지 못했다. 심리부검 대상자 중 88.4%는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이 중 우울장애의 비중이 74.8%로 가장 높았다. 그런데도 정신질환이 있는 사망자 중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은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사망 한 달 이내에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이용한 사망자는 전체의 25.1%에 불과했다. 오히려 복통 등 신체적 불편감이나 수면 곤란 등에 대한 대증적인 치료를 위해 동네의원·한의원을 방문한 경우(28.1%)가 더 많았다.
자살자들은 여러 가지 생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빚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49명(40.5%)이었고, 사망 3개월 이내에 직업이 없었던 사람이 반 이상(66명, 54.5%)이었다. 84명(69.4%)은 가족 관련 스트레스, 56명(46.3%)은 부부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망 당시 음주 상태인 자살자는 39.7%였으며, 본인 외에 가족이 과다음주·주폭 등 알코올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53.7%나 됐다. 사망자가 살아 있을 당시 가족 중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 비율은 28.1%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살 경고신호를 보내는 본인은 물론이고 자살 유가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심리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정신질환의 조기발견·치료 활성화와 자살예방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을 다음달 중 수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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