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 어제의 나를 넘으려 오늘 나를 몰아친다

박경은 기자 2016. 1. 2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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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아이돌·래퍼·프로듀서…대중음악계가 주목하는 가장 핫한 뮤지션

경향신문은 올해 초 대중문화계 활약이 기대되는 스타를 선정했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다수의 전문가들이 지코(본명 우지호)를 꼽았다. 아이돌그룹 블락비의 멤버이자 리더. 힙합신에서 이미 이름난 래퍼인 그는 주류 음악 시장에서도 가장 트렌디하고 스타일 좋은 곡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다. 지난해 그가 만들었던 곡은 22개. 작업량도 놀랍지만 대부분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병립 불가능할 것 같은 정체성들을 조화롭게 소화해내며 만만찮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그는 올해 고작 스물네살이다. 연초부터 상하이, 오사카, 도쿄 등 해외 공연일정으로 바쁜 그를 25일 만났다. 마침 이날 발표된 그의 신곡 ‘너는 나 나는 너’는 주요 차트 정상을 휩쓸었다.

세븐시즌스 제공

- R&B 발라드곡을 선보인 건 처음이다. 전 장르를 아우르는 뮤지션이 된 것 같다.

“지난 한 해 동안 음원을 자주 냈다. 식상하다고 느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최대한 다양한 음악적 채널을 통해 내 감성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걸 재미있게 받아들여주신 것 같다.”

- 어릴 땐 미술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들었다.

“고교 때까지 진로는 미술이었다. 그림을 통해 자존감을 얻었다. 음악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즐겨 듣는 음악도 없었다. 그저 소풍 가거나 장기자랑 할 때 친구들과 안무 짜서 춤추는 걸 좋아하는 정도였다. 동방신기의 ‘라이징선’이나 신화의 ‘너의 결혼식’ 같은 걸 따라 했다. 잘한다고 하니 신나서 했다.”

- 주목을 받는 게 신났다면 아이돌을 꿈꿀 법도 했을 텐데.

“사실 중학교 때 SM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된 적이 있다. 그땐 지금보다 좀 귀여운 미소년 스타일이었다(웃음). 멋모르고 몇차례 오디션과 테스트를 받았는데 그해 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가면서 흐지부지됐다.”

- 그럼 힙합에는 언제 관심을 갖게 됐나.

“고교 시절 취미로 힙합을 듣는 정도였다. 그런데 친구가 랩가사를 쓰는 걸 보며 호기심이 생겼고 점점 빠져들었다.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서 입시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주말엔 클럽에 갔다. 그러다 음악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더니 나중엔 새 비전이 되더라. 입시를 앞두고 갈등을 많이 했다.”

-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았나.

“두 분은 어릴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셨다.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이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스스로 룰을 정하고 책임감을 갖게 됐다. 사춘기도 별문제 없이 보냈고.”

- 데뷔할 때와는 음악시장 환경이 많이 변했다.

“6년 사이에 정말 달라졌다. 지금이야 래퍼가 각광받는 시대이고 랩 자체로 완성형으로 인정받지만 데뷔를 준비할 때만 해도 다들 나에게 ‘노래를 연습하라’고 했다. 래퍼가 어떤 가사를 쓰는지보다는 노래와 외모에 관심이 많던 시기였다. 그래서 춤과 노래야 연습하면 되겠지만 외모는 방법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 랩 메이킹 센스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감의 원천이 뭔가.

“평소에 듣고 보고 접하는 모든 것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의 행동이나 말투의 특징과 디테일을 잘 잡아내는 편이다. 경험과 관찰, 그것을 토대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일벌레로 소문났더라. 심지어 수도승 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옭아맸다. 아직은 한눈팔 때가 아니라고 여겨 스튜디오와 집에 틀어박혀 음악만 하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어놓는 곳은 무대 위였고.”

- 지금은 좀 나아졌나.

“가끔 술자리도 가고 사람들도 만난다. ‘썸’ 타는 감정 비슷한 것도 느껴봤고(웃음). 나름 스스로를 풀어놓는다고 하는데 여전히 주변에선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 여가 시간에는 뭘 하나.

“얼마 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놀란 건 그 질문에 할 대답이 없다는 거였다. 나가서 커피 마시고 방에서 영화 보는 것 말고는.”

-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나.

“글쎄. 난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한번도 누구를 따라잡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이전의 나를 못 넘을까 고민이고 그 고민이 나를 추동한다.”

- 지드래곤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그만해주셨으면 한다. 누구는 뭐가 낫고 못하니 하는 식으로 비교하는 분들도 있더라. 그런데 지드래곤 선배님과 나는 아이돌로 분류되고 랩을 한다는 것만 비슷할 뿐 가는 길은 완전히 다르다.”

- 지난해 <쇼미더머니>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시작 전부터 ‘아이돌이 언더신의 래퍼를 심사한다’는 등 말이 많았는데 결국 지코의 존재감이 빛났다.

“소중한 터닝포인트였다. 나 자신에 대한 편견과 상처를 깰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만족한다. 그런데 많은 분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부담감도 크다.”

- <쇼미더머니>를 통해 힙합이 대중화되기도 했지만 왜곡된 인상도 심어준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니 자극적인 부분이 부각된 점은 안타깝다. 그렇지만 그런 논란에 대해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비판이든 지지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힙합은 그 자체로 멋지고 즐길 거리가 충분하다. 켄드릭 라마처럼 사회문제나 인간의 심리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고민을 담아낸 래퍼들도 많다.”

-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힘들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많다. 언젠가 잘될 거라는 식의 근거 없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안타깝고 슬픈 건 절망과 무기력의 나락에서 일어나 뭔가를 시도하는 것도 겁내고 있다는 거다. 일단 일어나서 발걸음을 떼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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