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들여놓기 쉽게"..문턱 낮춘 호스피스 소모임이 활력소
[경향신문] ㆍ영국 런던 호스피스 ‘세인트 조셉’ 가보니…
“우리 호스피스에는 정말 별의별 모임이 다 있어요. 치매 환자들이 만든 ‘치매카페’ 모임도 있고 레즈비언 할머니들의 친목 모임도 있어요. 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하는 그룹도 있죠. 호스피스 환자가 아닌 지역 주민들도 여기 와서 놀아요.”

영국 런던 동북부 해크니에 있는 ‘세인트 조셉 호스피스’(이하 세인트 조셉)를 방문했을 때 사회복지사 에이미 아우팅다이크는 호스피스가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활기찬 목소리로 소개했다. 그는 “우리의 가장 큰 임무는 누군가가 저 현관문을 열고 호스피스에 첫발을 들여놓게 만드는 것”이라며 “진단 초기 단계에 호스피스에 들어와 사람들과 친해지면 병세가 악화됐을 때 더 편안한 마음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05년 설립된 세인트 조셉은 영국 내에서도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전문인력을 갖춘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연간 1700명 이상의 환자가 세인트 조셉의 호스피스·완화의료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한다. 이곳의 목적은 호스피스 돌봄이 필요한 지역사회 주민을 가능한 한 빨리, 많이 호스피스로 끌어들여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세인트 조셉은 호스피스의 문턱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상담과 입원·등록 창구를 1개의 전화번호로 통일했다. ‘퍼스트 콘택트’(First Contact·첫 접촉)라는 이름의 이 전화는 365일 24시간 운영된다. 세인트 조셉은 주민들이 필요할 때 전화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가 인쇄된 냉장고 자석을 만들어 집집마다 돌렸다.

전화는 통상 환자의 주치의나 환자 본인, 가족이 한다. 영국은 모든 주민이 거주지역 내의 일반의(GP)를 주치의로 등록하고, 주치의의 의뢰서가 있어야만 상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치의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호스피스로 보냄으로써 환자가 대형병원에서 고통스러운 연명치료를 받는 상황을 방지한다.
세인트 조셉은 매일 오전 9시 의사와 간호사·사회복지사·물리치료사 등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전날 ‘퍼스트 콘택트’로 접수된 상담 내역을 검토한다. 전문가들은 이 회의에서 환자들의 위급도를 녹색·황색·적색의 신호등 체계로 분류한다. 증상이 양호한 녹색 환자는 5~7일 내에 완화의료팀이 가정방문을 나가고, 이보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황색 환자는 2~3일 내에 가정방문을 한다. 증상 조절과 통증 완화가 시급한 적색 환자는 24시간 내에 방문한다. 세인트 조셉의 지역사회방문팀장 캐롤라인 브래넌은 “올해는 녹색 환자의 비중을 더 늘리려고 한다”며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호스피스를 찾아오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증·증상이 심해 집에 있기 어려운 사람들은 입원할 수 있다. 세인트 조셉에는 총 42개의 입원 병상이 있으며 이 중 34개 병상이 환자를 위한 것이다. 나머지 8개 병상은 간병인이나 가족에게 쉴 시간을 주기 위한 병상이다. 휴식이 필요한 가족·간병인은 환자를 이 병상에 1~2주가량 입원시킬 수 있다.
입원환자는 집에서 입던 실내복과 잠옷, 쿠션, 침대 커버 등을 가져올 수 있고 책이나 잡지, 노트북컴퓨터, 아이패드 등을 가져와도 된다. 밥은 하루 세 끼 식사와 간식이 나온다. 유대교식 식사나 무슬림을 위한 할랄 음식도 제공된다. 가톨릭과 성공회 신자, 무슬림, 유대인, 시크교도 등을 위한 종교 예식도 각각 열린다.
입원 병동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은 출퇴근 방식의 ‘데이 서비스’(Day service·주간 서비스)다. 데이 서비스에 등록한 환자는 일주일에 1번씩 12주 동안 세인트 조셉을 방문하게 된다. 증상 조절을 위해 의사의 처치를 받거나 심리상담, 물리치료, 재활훈련, 언어훈련, 마사지 등을 받을 수 있다. 산책 클럽, 명상 수업, 미술 동호회 등 각종 행사와 소모임에 참석할 수도 있다. 소모임 중엔 일반 지역 주민들이 만든 합창단도 있다. 지역사회로 파고들기 위해 세인트 조셉이 공간을 무상 대여한 것이다.
환자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만나 친구를 사귀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활력을 얻는다. 이곳에서 가족을 떠나보낸 사별 가족들도 이와 같은 이유로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아우팅다이크는 “12주 프로그램이 끝난 환자는 ‘졸업’시키고 있지만 상당수 환자들이 다시 등록하길 원한다”며 “오늘 오전에도 어느 환자의 주치의가 e메일을 보내 재등록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세인트 조셉은 시설과 재정 형편이 다른 호스피스들에 비해 우수하고 이용자들의 반응도 좋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인트 조셉이 관할하는 지역은 영국에서도 가장 빈곤한 곳이고, 다양한 민족적·종교적 배경을 지닌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도 호스피스 이용자의 대다수는 여전히 백인들이다.
아우팅다이크는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코카서스 인종은 내 딸 하나뿐이고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방글라데시인”이라면서 “하지만 난 우리 호스피스에서 아직 방글라데시인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자들이 호스피스 수요를 지역사회 내에서 이미 충족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우리 호스피스를 더 많이 홍보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며 “올해 우리는 더 자주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것을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 |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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