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양대지침' 후폭풍]지침 → 가이드북 → 지침..저성과자 해고 압박 '사실상 법'으로

김지환 기자 2016. 1. 24. 22: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기준·절차 못 박아…오늘 전국 기관장 회의서 시달
ㆍ노사정 대타협 결렬 위기 때 ‘핸드북’ 등 표현서 돌변

고용노동부가 저성과자 해고의 기준·절차를 명확히 하는 178쪽 분량의 책자를 발표하면서 그 성격을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이라고 못 박았다.

지난해 4월 노사정 대타협 결렬 이후 ‘가이드북’이라는 표현을 쓰며 “(지침이 아닌) 핸드북이나 매뉴얼의 성격”이라고 애써 강조하던 입장에서 돌아선 것이다.

부당해고 문제가 노동위원회·법원의 소관 사항인 상황에서 노동부가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된 사항을 지침의 성격으로 규정해 이를 지방관서에 시달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부가 지침으로 최종 입장 정리를 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동부는 최근 1년여간 ‘저성과자 해고’ 규정과 관련, ‘지침’과 ‘가이드북’ 사이에서 오락가락해 왔다. 노동부는 2014년 12월29일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위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면서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2015년 중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때의 가이드라인은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행정예규의 성격을 갖는 지침은 상급행정청인 노동부가 하급행정청인 지방관서에 대해 그 감독권의 발동으로서 시달하는 행정규칙이다. 지침은 법적 효력은 없지만 일선 근로감독관들이 참고하는 기준이어서 현장에선 사실상 법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노동부는 지난해 4월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결렬을 공식 선언한 뒤 지침 대신 가이드북, 핸드북 등의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결렬의 원인 중 하나인 만큼 현장에서의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가이드북으로 그 위상을 다소 낮춘 것이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8월 입수한 노동부 내부 문건에서도 “부당해고 사건은 노동위원회 및 법원 소관 사항으로 노동부 가이드라인은 한계가 있다. 업무 부적응자 해고 부분에 집중할 경우 판례해설서, 평가 등 인사관리 전반을 다룰 경우 핸드북 내지 매뉴얼 성격”이라고 적혀 있다.

노동부 역시 지난달 30일 열린 전문가 간담회까지만 해도 지침 대신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 운영 가이드북’이라는 표현을 썼다.

당시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지침과 가이드북은 그 성격이 다르다”면서 “가이드북은 현장 노사가 참고하는 매뉴얼이나 안내서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지침과 가이드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노동부는 노사정 합의 파기 사흘 뒤인 지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선 또다시 지침으로 선회했다. ‘공정인사 지침’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지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25일 전국 47개 기관장 회의에서 지침을 시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달 30일 간담회 때 쓴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 운영 가이드북이라는 표현은 부제로 삼았다.

취업규칙의 경우 사용자가 변경 시 지방관서에 변경 신고를 하고 근로감독관이 심사를 하기 때문에 지침으로 시달하는 게 맞지만 저성과자 해고 문제는 지침으로 시달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어 부제를 다는 방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박성우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장은 “정부가 지침으로 최종 정리를 한 것은 좀 더 공세적으로 이 내용을 현장에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덕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는 “예전처럼 부당해고 시 형사처벌 조항이 있다면 근로감독관이 참고할 수 있게 지침을 시달할 명분이 있지만 지금은 처벌 조항이 사라졌기 때문에 지침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선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현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업무능력 부진을 이유로 한 해고가 더 늘 것이라고 봤다.

민주노총이 24일 발표한 ‘노동위원회 판정례로 본 일반해고 지침의 위험성’을 보면,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 지침 시행을 예고한 2015년 업무능력 부진을 이유로 한 해고 등 구제신청은 183건이었다. 2012년 107건, 2013년 129건, 2014년 144건 등으로 해마다 전년에 비해 20건 안팎으로 사례가 늘고 있긴 하지만 2015년엔 평소에 비해 2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처리가 완료되지 않은 사건까지 더할 경우 2015년 저성과자 해고 사례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