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넓어지는 계단에 '아찔'..무용지물 점자블록


서울지하철 대부분 부실…"무성의한 장애인 시설, 사고 위험 초래"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갑자기 계단 간격이 평지처럼 넓어지는데 다시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점자블록이 없어요. 몇 번 아찔하게 '휘청' 하고 나니 계단에 들어서면 결국 난간부터 잡게 되더라고요."
김동성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장은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평소 혼자 서울시내 지하철을 이용해 오갈 때마다 느끼는 불편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과거보다 서울 지하철 역사에 점자블록이 확충된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성 없이 무성의하게 설치된 장애인 편의시설은 오히려 장애인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을 위한 정책연구원(이사장 정태근)도 1호선 신설동역, 4호선 길음역, 6호선 보문역 등 시내 지하철역 계단을 둘러본 결과 노선과 운영기관에 관계없이 대부분 점자블록의 디자인과 위치가 통일되지 않고 끊긴 곳이 많다고 24일 지적했다.
1호선 신이문역, 4호선 길음역 등 일부 출구에는 점자블록이 아예 없는 사례도 있다. 역사 바로 밖에는 점자블록 위에 정강이 높이의 볼라드(차량 진입억제용 말뚝)가 설치돼 길도 잃고 볼라드에 부딪혀 넘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점자블록이 설치된 곳은 계단 시작 지점과 종점에만 블록이 있을 뿐 계단 간격이 달라지는데도 표시가 전혀 없는 게 대부분이다. 시각장애인은 계단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되는지를 알 수 없다.
역사 내 교차지점과 스크린도어 앞 점자블록도 장애인들을 더 헷갈리게 한다.
지하철역 점자블록은 길이 나뉘는 지점에서 한쪽으로 가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상당수 시각장애인이 음성안내 리모컨을 휴대하지만 초행길에선 당황할 수밖에 없다.
김 관장은 "교차지점에서 버튼을 누르면 방향을 안내해주는 시설이 설치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들 한다"고 말했다.
열차의 몇 번째 칸인지 알려주는 스크린도어 앞 점자블록 역시 위치와 높낮이가 제각각이어서 무용지물에 가깝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지하철 역사 점자블록은 설치대상 27만 6천618m 중 26만 9천859m에 설치돼 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따른 법률 시행규칙과 국토해양부 고시에 점자블록의 규격과 색상, 설치방법이 규정돼 있긴 하다. 그러나 구체성이 부족해 제각기 달리 설치됐다.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구청 등 시공자도 모두 다르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태근 이사장은 "작년 8월 고위공직자의 연 1회 장애체험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건의한 이유도 이런 맥락"이라며 "장애 편의시설은 장애인 입장에서 설치되고 통일성 있게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올해 시설 개선을 위해 약 3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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