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한현우·주말뉴스부장 2016. 1.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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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날 문득]

산울림 노래 '청춘'이 발표됐을 때 나는 중3이었다. 그해 나는 소설책 몇 권을 읽고 속으로 '어른 선언'을 했었다. '나는 이제 삶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았다'고 일기에 썼다. 조숙한 게 아니라 미련했다. 여드름투성이 사춘기에게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하는 산울림의 노래는 청춘의 송가(頌歌)이자 송가(送歌)처럼 들렸다.

그로부터 20년도 넘어 음악 담당 기자로 김창완을 만났다. 그에게서 '청춘' 쓴 사연을 들었을 때 나는 당혹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꼈다. 이 노래는 김창완이 아들 신화 돌잔칫날 쓴 곡이었다. 김창완은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아들 돌잔치를 하느라고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데 갑자기 '내 청춘은 이제 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슬그머니 옆방에 가서 이 노래를 단숨에 썼어."

"달 밝은 밤"까지 이어지던 돌잔치의 시끌벅적한 "젊은 연가"가 슬그머니 "구슬퍼"졌고 "날 두고 간 님"은커녕 님도 있고 뽕도 딴 처지에 "정 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그때 김창완 나이 불과 스물다섯 살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김필이라는 가수가 '청춘'을 다시 불러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그의 노래로 청춘을 처음 알게 된 청춘들이 산울림의 청춘까지 찾아 듣고, 또 그러다 보니 청춘 시절의 김창완은 배우가 아니라 가수였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는가 보다.

김필의 노래는 축축하다. 김창완의 노래는 메말랐다. '청춘'처럼 축축한 노래는 메마르게 부를 때 훨씬 더 축축하게 들린다. 특히 김필이 "내 '섦은' 연가가" 하고 '젊은'을 [ʖ] 발음으로 노래하는 게 원곡 애호가로서는 거슬렸다.

그러나 어쩌랴. 젊은이든 섦은이든, 김창완이든 김필이든, 돌잔치든 응팔이든 청춘은 언젠간 가는 것이고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을 해봐야 슬퍼지기만 할 뿐인데.

좋은 음악이 드라마 덕분에 갑자기 알려진 것이 서글프기도 하고, 어찌 됐든 청춘들이 청춘이란 노래를 알게 됐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다.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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