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옮겨준 4천만원..알고보니 보이스피싱 피해금

70대 노인 남편 유산 1억원 사기범에게 고스란히 뜯겨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점심시간이 갓 지난 8일 오후 2시 30분께 인천 남부경찰서 숭의지구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이 4천만원짜리 만기 적금을 찾았으니 안전하게 집까지 수송해 달라는 은행 직원의 요청이었다.
전화를 받고 나선 경찰관 2명은 은행 자동화기기(ATM) 앞에서 기다리던 A(72·여)씨를 만났다.
많은 돈을 한꺼번에 찾은 이유를 묻자 A씨는 "내가 심장병을 앓고 있어 치료비로 쓰려 한다"고 답했다.
경찰은 곧바로 A씨가 말한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환자 명단을 확인했고 A씨가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을 파악했다.
이후 남구 숭의동에 있는 A씨의 집까지 4천만원을 안전하게 옮겨줬다.
사흘 뒤인 11일 오전 11시께 A씨는 남구 도화동의 한 은행에서 또다시 현금 4천만원을 인출하려 했다.
이번에는 은행 직원이 "거액을 인출하려는 손님이 있는데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의심된다"며 112에 신고했다.
'왜 많은 돈을 한꺼번에 찾느냐'는 출동 경찰관의 물음에 이번에는 A씨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의심이 든 경찰관은 A씨의 양해를 얻어 휴대전화 통화목록을 살펴봤고 '070'으로 시작하는 보이스피싱 의심 번호를 확인했다.
그제야 A씨는 경찰관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금감원 직원이라는 사람한테서 전화를 받았는데 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했어요. 은행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해두면 안전하게 보관해주겠다고 해서…"
하지만 이미 사흘전 경찰의 현금수송을 받은 4천만원과 다른 은행에서 찾은 1천만원을 인근 공원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범을 만나 직접 건네준 뒤였다.
같은날 오후 1시께에는 다른 은행에서도 현금 5천만원을 찾아 사기범이 시키는 대로 집 안 세탁기에 넣어뒀다.
사기범은 집 현관 옆 우편함에 집 열쇠를 두라는 말도 남겼고, A씨가 집을 비운 사이 이 돈을 갖고 사라졌다.
결국 A씨가 8일 3차례 인출해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건네준 돈은 모두 1억원에 달했다. 이 돈은 사망한 남편의 유산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인천경찰청과 금융기관들이 1천만원 이상을 출금할 때는 112신고를 하는 내용의 보이스피싱 예방협약을 맺었지만 강제성은 없다"며 "현금수송 때보이스피싱에 속은 A씨가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면서 추가 피해를 막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은 A씨의 통화 내역과 집 인근 폐쇄회로(CC)TV를 토대로 보이스피싱 사기 용의자를 쫓고 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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