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북한 수소폭탄 아직 멀었다고?
ㆍ이번 4차 핵실험은 ‘증폭 핵분열탄’ 추정… 핵융합 성공한 기술 수준 수소탄에 근접
새해 첫날 육성으로 한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핵 관련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정부 당국이나 다수 언론은 “북한이 경제개발을 강조했다” “대외관계 회복에 역점을 뒀다”는 식으로 긍정 평가했다. 이런 김정은이 일주일도 채 못된 6일 조선중앙TV ‘특별 중대보도’로 수소탄 실험 성공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북한 체제를 면밀히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알 만한 예견된 ‘사고’였다. 앞서 세 차례에 걸친 플루토늄탄, 우라늄탄 실험에 이어 핵무기 개발의 거의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다.
김 비서는 지난해 12월 10일 평천혁명사적지 시찰에서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가 수소탄을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정보당국자들은 “수소폭탄 기술은 아직 갖지 못했다. 수사적 의미”라고 폄하했다. 아직 말뿐이란 뜻인데 과연 그럴까.
안타깝게도 북한 핵능력을 검증할 방법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우선 북한 시설 접근이 불가능하다. 또 핵실험 이후에도 원인물질 포집조차도 어렵다. 고작 인공 지진파의 크기 정도로 핵능력을 유추하는 방법뿐이다. 근래 예외가 있었다면 2011년 미국 민간 전문가를 초청해 보여준 것이다.
수소탄은 핵무기 개발의 최고단계
북한은 최근 수년 동안 기회만 있으면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를 이뤘다고 강조해 왔다. 일차적으로는 소형화·경량화가 쟁점이다. 이는 핵탄두를 줄여서 탄도미사일 같은 무기에 장착한다는 뜻이다. 대체로 1톤 아래를 가리킨다. 2006년 1차 핵실험 후 9년이 지난 북한은 이미 소형화·경량화를 상당 부분 성공시켰을 것으로 한·미 당국은 본다. 소형화·경량화는 특히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하려는 데 중요 관문이다.
핵무기의 다종화는 곧 기존 원자폭탄에 이은 수소폭탄 등을 가리킨다. 플루토늄탄·우라늄탄은 기본적으로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원리가 같은 초기 형태 원자탄이다. 반면 수소탄은 한 단계를 넘어서 ‘핵융합’ 에너지를 적용하는 면에서 기술 수준이 핵무기 개발의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냉전 이래 미국, 소련 같은 강대국들은 기밀을 유지해오다가 나중에 공개하는 식이었는데, 북한은 개발 단계마다 내놓고 광고하는 특이한 핵무장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핵 억지력에 갈증을 가진 심리전 차원도 크다”고 말했다. 실전에서는 원자탄만 해도 감히 써먹기 힘들 만큼 파괴적인데, 더한 수소탄은 그 기술을 가졌다는 상징성이 더 크다.
어쨌거나 북한의 4차 핵실험 내용과 성패는 확인키 어렵다. 국가정보원은 이번 폭발력이 6.0㏏, 지진파는 4.8로, 2차와 3차 핵실험 사이쯤으로 수소탄은 아니라고 추정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규모가 3차에 비해 0.1 작아 에너지의 양 역시 70% 안팎으로 축소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유럽 지중해지진센터(EMSC)와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은 인공지진 규모를 5.1까지 더 크게 측정했다. 이렇게 봐도 위력 자체는 히로시마 투하 원자탄급이며, 일반 수소탄 수준은 아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발력 16kt의 우라늄탄과 나가사키에 투하된 21kt의 플루토늄탄을 근거로 대개 20kt을 원자탄의 위력으로 감안한다. 익명을 요구한 당국의 핵무기 전문가는 “수소탄은 원자탄보다 적어도 100배, 많게는 1000배 정도 위력이 높기 때문에 이번은 수소탄 실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했다. 그는 “진짜 완전한 형태의 수소탄은 위력이 너무 커서 북한 내에서 실험 자체를 할 데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1954년 3월 남태평양 마셜군도의 비키니섬에서 수소폭탄 폭발 실험을 했다. 구소련은 시베리아에서, 중국은 내륙의 사막에서, 프랑스는 적도 인근 식민지령 섬에서 실험을 했다. 북한으로서는 동해에서 하는 방안이 있지만 환경 영향을 고려하면 쉽잖다. 이 때문에 만약 수소탄 실험을 하더라도 위력을 최소화한 형태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중간 형태
그렇다면 이번 실험은 수소탄의 중간단계 내지는 변형된 형태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소형화한 수소탄”이라고 자랑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수소탄 요소가 포함된 소형 폭발로 결론을 지었다’고 미국 보수매체인 워싱턴 프리비컨이 미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7일(현지시간) 보도하기도 했다.
성공 여부를 떠나 정부 당국도 대체로 중간단계인 ‘증폭 핵분열탄’ 실험 정도로 본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은 “규모는 3차 실험과 비슷하지만 아직 평가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증폭 핵분열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명칭에 들어간 ‘핵분열’에 집착하면 북한의 수준을 잘못 보게 된다. 사실 증폭탄도 기술 면에서는 ‘핵융합’이 가미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다. 중간단계이면서도 내용상은 수소폭탄에 성큼 다가선 것으로 보는 게 더 냉정한 평가다. 전문가인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에 증폭 핵분열탄 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성공시켰다면 수소탄 개발은 실험만 남은 시간문제일 뿐, 기술적으론 거의 다 된 단계”라고 해석했다. 지진파로 유추한 폭발력만 놓고 ‘수소탄은 아직 멀었네’라고만 하면 오판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평가를 할까. 수소탄과 증폭 핵분열탄이 어떤 관계인지 보면 이해가 간다. 일반 원자탄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기폭장치로 터뜨린 뒤 핵분열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원자탄은 폭발해도 내장된 핵물질(고농축 우라늄 235나 플루토늄 239 등)의 10% 정도만 분열한다. 그만큼 위력이 욕심만큼 안 나온다. 나머지 핵물질도 완전히 분열시킨다면 무시무시한 메가톤급 폭발력이 생긴다. 이것이 수소탄이다.
그 중간단계로 미처 분열하지 못한 핵물질을 다시 반응케 한 것이 증폭 핵분열탄이다. 폭발하는 과정에 핵융합 기술이 쓰인다는 점이 포인트다. 증폭 핵분열탄을 성공시키면 기술로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이고, 곧 수소탄에 근접했다고 본다.
기술적으로 들어가면, 일반 원자탄은 격발장치를 터뜨리면 내부 중성자가 순식간에 늘어나고 우라늄이나 플루토늄과 부딪쳐 폭발한다. 수소탄은 일반 원자탄에는 없는 2중수소와 3중수소를 핵분열 물질에 넣는다. 내부에 기폭장치로 터뜨리면 중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헬륨을 만들고, 이때 고속 중성자가 다량 뿜어져 나온다. 중성자는 다시 주변의 우라늄, 플루토늄과 부딪쳐 엄청난 폭발력을 만든다. 즉 핵분열(원자탄 폭발)→핵융합→핵분열을 거치는 ‘다단계 열핵폭탄’이다. 수소탄은 천연의 우라늄 238과 수소, 리튬을 쓰기 때문에 방사능 문제가 더 적다고 알려졌다.
수소탄이 이런 핵융합 반응을 내려면 핵물질이 흩어지기 전 순식간에 터뜨려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수단(기폭장치)은 현재 원자탄뿐이다. 또한 핵융합 기술이 있어야 고속 중성자를 만들어내고 핵분열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증폭 핵분열탄은 핵융합 반응을 통해 핵분열을 더 늘리지만 수소탄처럼 다단계 분열 전 단계다. 한 군사 전문가는 “증폭 핵분열탄 위력은 일반 원자탄보다 3~4배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파괴력이다. 크기는 유지하면서도 효율은 높인 것이다. 중수소나 우라늄, 플루토늄의 양을 조절하면 수소탄의 위력도 달라진다. 북한이 이번에 기폭장치인 원자탄을 최소화하며 실험했다면 전체 폭발력은 3차와 비슷해도 핵융합 에너지가 상당 부분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발표에서 “소형화된 수소탄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해명”했다고 한 점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 북한식 표현은 수소탄 크기를 줄여 위력을 검증했다는 뜻으로, 기술력 실험이지 완전한 수소탄 자체를 터뜨린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춘근 박사는 “만약 규모를 줄여서 시험할 수 있다면 오히려 기술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이 성공했는지 외부에서 확인하려면 대기 중에 헬륨이나 리튬을 잡아내야 한다. 그러나 앞서 1차 핵실험 때는 한반도 상공의 제논을 확인했지만, 2차·3차 핵실험 때는 포집하지 못했다. 북한이 지하 핵실험장을 격벽 등으로 밀폐해 밖으로 가스가 거의 새나가지 않도록 한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과 달리 수소탄 여부를 가릴 헬륨 등은 자연 대기 중에도 존재한다. 포집하더라도 출처를 가리기가 애매해진다. 지진파만 가지고 눈 감고 코끼리 만지듯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대체로 앞서 개발한 나라들을 보면 핵실험 2~3년 뒤 증폭 핵분열탄을 성공하고, 늦어도 9년 안에 수소탄을 만들었다. 수소탄 기술 자체는 공개된 수준이고 갈수록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편이다. 북한은 1차 실험 뒤 9년이 지나서 시간상으로 가능하다. 특히 북한은 이미 1989년 5월 노동신문에서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집단’이 상온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5월에는 상온 핵융합 반응장치를 제작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노동신문은 2013년 1월 20일에는 ‘수소-붕소 핵융합에 의한 직접발전 기술’이라는 내용으로 ‘플라즈마집초 방식’의 핵융합 기술을 설명했다. 국군 화생방방호사령부는 북한이 플라즈마집초 방식으로 핵무기 융합방식을 전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령부는 북한의 중수소 분리시설로 영변 원자로 주변을 감시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잠수함탄도미사일(SLBM)사출 시험. / 조선 중앙 TV |
“규모 축소해 실험했다면 기술력 상당” 대개 바닷물에서 중수소를 얻는 과정은 크게 어렵지 않아서 여건상 장벽이 별로 없다. 거꾸로 관심은 북한의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보유량이다.
2차 핵실험까지는 플루토늄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플루토늄은 영변의 5MW 실험용 원자로를 가동해 나온 사용후핵연료봉을 재처리해 확보했다. 추가로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얻었다는 정보는 없다. 북한이 적어도 두 차례 실험 때 플루토늄의 상당량을 써버렸을 것으로 한·미 당국은 추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수단인 우라늄탄이다. 3차 핵실험의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대체로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했을 개연성이 높다. 바로 북한이 만든 원심분리기를 가동해 추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10년 11월에 초청해 방북한 미국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게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1000기를 보여줬고, 당시만 총 2000기 정도 보유했다고 밝혔다. 이론적으로는 원심분리기 2000기로는 1년에 우라늄탄 1~2개를 만들 만한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것으로 계산된다. 추가 농축시설을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
원심분리기는 원전 없이도 천연 우라늄을 이용해 농축하는 시설이다. 원전보다 규모가 작고 이동도 가능해 찾아내기 훨씬 어려워 더 위협적이다. 게다가 북한에는 천연 우라늄이 다량 매장돼 있다. 원심분리기를 통해 북한 핵능력이 한 단계 올라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중국 모델을 따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 마오쩌둥이 이룩한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 수소탄과 인공위성)’의 길이다. 여기서 위성은 군사적으로는 ICBM 기술을 일컫는다. 북한은 2012년 12월 ‘은하 3호’를 대기권 밖으로 쏘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아직 ICBM까지는 대기권 재진입 같은 기술 난제가 적잖지만, 로켓 추진체는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중국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통해 양탄일성의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에 주력했다”며 “김정은도 핵과 경제발전 병진노선은 비슷한 구조인데 북한이 과연 어디까지 따라할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오는 5월 36년 만에 열릴 당대회에서 김정은의 입을 주목하는 이유다.
고삐 풀린 북한의 핵 위협이 점입가경이다. 북핵 능력이 높아질수록 이를 풀 한·미의 계산서도 더 커지게 된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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