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할아버지, 고철 모아 9년간 2300만원 장학금

글·사진 이삭 기자 2016. 1. 1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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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2일 오후 충북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 번듯한 통나무집 마당에 고철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다. 농기계 부품으로 보이는 큰 고철 덩어리부터 손가락 크기만 한 쇳조각까지 다양했다. “고철이라고 우습게 보이지만 꾸준히 모으면 생활의 토대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는겨.” 고철을 정리하던 남해원 할아버지(93)가 고철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농한기가 시작되는 늦가을부터 마을을 돌며 고철을 수집해 고물상에 내다 판다. 이렇게 모은 돈은 금왕장학회에 전달된다. 2010년 6월 출범한 금왕장학회는 매년 대학생 6명과 고등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남 할아버지가 9년째 고철을 모아 내놓은 장학금은 2300만원가량이다.

12일 남해원 할아버지가 자신의 집 마당에 모아 놓은 고철 더미 앞에 서 있다.

남 할아버지는 2008년부터 매년 100만~2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2만3140㎡가 넘는 논에서 농사를 짓는 그는 추수를 모두 마친 늦가을이 되면 마을을 돌며 버려진 농기계와 전선·빈병·폐지 등을 주워 마당에 보관한다. 큰 고철 덩어리부터 가느다란 철사까지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1년을 꼬박 모은 돈은 100만원 남짓이다. 남 할아버지는 여기에 농작물을 판 돈을 보탠다. 그는 올해 큰 결심을 했다. 고철값이 뚝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되자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보태 장학금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올해는 고철값이 바닥을 칠 정도로 경기가 나쁜데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은 더 힘들 것 같아 5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놨다”고 말했다.

남 할아버지가 고철을 모으는 이유는 자신이 어렵고 힘들 때 주변에서 받았던 따뜻한 온정 때문이다. 두 살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랐다. 자식들도 모두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갔고 번듯한 직업도 가졌다. 남 할아버지의 첫째 아들은 한 국립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잘 가르치지 못했는데 여러 곳에서 도와줘 자식들이 학위도 따고 번듯하게 커줘 항상 마음속에 빚이 있었다”며 “사회에 진 빚을 갚고 싶어 고철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 할아버지의 가족들도 장학금 모으기에 동참하고 있다. 남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자 금왕장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성엽씨(59)는 “아버지 재산은 어느 자식도 안 건드린다”면서 “아버지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틈틈이 고철 더미를 고물상에 대신 가져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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