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권향의 여우사이] 김하성·이용하·임동휘·임병욱, 내일을 향한 영웅들

영하 6도까지 떨어졌던 1월의 어느 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 위치한 한 매장에서 건장한 청년 4명이 차례대로 나와 약속 시간에 늦은 기자에게 "벌금!"을 외쳤다.

이들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미성년자였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했었다. 2013년 10월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훈련에서 만났던 이들은 여드름이 난 얼굴에 몸집이 왜소했고 말수가 적었다. 익숙하지 않은 인터뷰에 대답보단 미소로 답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걸음걸이부터 자신감이 넘쳤고 외모는 세련돼졌으며 누가 봐도 운동선수의 몸을 가진 체격이었다.

<(위) 2013년 10월 가고시마 마무리훈련, (아래) 2016년 1월 6일 시무식 현장. (왼쪽부터) 임병욱, 임동휘, 김하성, 이용하. 사진=표권향 기자>

프로데뷔 3년 만에 연봉 1억원 대열에 당당히 합류한 김하성과 다이어트로 날렵한 턱선을 자랑한 이용하, 이지풍 넥센 트레이닝 코치가 놀랄 정도로 거포의 포스를 가진 임동휘, 시무식에 맞춰 각오를 새로이 다지면서 까까머리를 한 임병욱(이상 21, 넥센)이 주인공이다.

오전부터 이어진 개인훈련으로 출출할 때였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삼겹살과 목살을 주문했는데 종업원이 주문내역을 듣고 놀라는 모습을 들켰다. 이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하겠다"며 키득키득 웃었다.

<(왼쪽부터) 이용하, 김하성, 임병욱, 임동휘는 2014시즌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넥센에 입단한 동기들이다. 동갑이면서 시작도 한 팀에서 같이 했기에 서로 의지하고 있다. 평소에도 자주 만나 어울린다는 이들은 누구보다 친한 동료다. 사진=표권향 기자>

▲ 정글에서 만난 진한 우정

예전에 비해 확실히 세련돼졌다. 이들에게서 풍기는 인상 자체가 바뀌었다. 프로의 물이 네 사람을 바꿔놓았다.

이들도 알고 있는지 부정하지 않았다. 최근 배우 류준열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임병욱에게 "네가 더 잘 생겼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물론 임동휘의 급정색 후에 말이다.

정신없이 고기를 먹으면서도 이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몸 관리를 위해 술 한 잔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마치 취기가 오른 느낌이었다. 웃음소리는 이들의 대화를 거들 뿐이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경쟁자였다. 안 보이는 신경전도 있었다. 승부욕도 발동했다. 하지만 사석에서만큼은 야구 이야기는 잠시 접어뒀다. 이 시간만큼은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 하는 평범한 젊은이로 돌아갔다.

1차 지명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시즌을 치르지 못했던 임병욱은 기회를 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김하성의 가치를 높이 샀다.

임병욱은 "울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낮은 자리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자리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성이가 잘 했기에 얻은 당연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김하성은 "우린 같이 운동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응원한다. 일 년 동안 수고 많았다. 올해도 힘내자"고 인사했다.

<(왼쪽부터) 김하성과 임병욱은 프로 데뷔 이후 1군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하성은 지난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사진=표권향 기자>

▲ 추억이 익은 그라운드

한 시즌 동안 기억에 남았던 경기들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상대 투수와의 대결, 자신이 생각해도 멋졌던 플레이, 홈런을 쳤던 순간 등 각자의 에피소드를 털어 놓았다.

김하성은 "(박)병호형이 없었다면 난 정말 실책이 많았을 것"이라며 박수를 치자 임병욱이 "나였으면 뒤로 빠뜨렸을 공을 병호형은 어떠한 공이든 다 잡아낸다"며 박병호(31, 미네소타 트윈스)의 플레이를 상상하며 그의 말을 거들었다.

에스밀 로저스(31, 한화)에게 1타수 1안타로 승리했다는 임동휘가 그로부터 홈런을 뽑아냈던 날을 떠올렸다. 표정이 밝아진 임동휘를 보며 김하성은 "동휘가 1군에 못 올라오는 이유는 아롤디스 채프먼(29, 뉴욕 양키스) 정도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없기 때문"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임동휘가 "내 스윙 스피드가 빠르기 때문에 120년 뒤에 구속 170km를 던지는 선수가 나오면 그때 맞대결해보겠다"고 받아쳤다.

친구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켜준 김하성은 "동휘의 방망이는 매섭고 힘이 넘친다. 올해에는 분명히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함께 가자"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4명 모두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로 삼성의 심창민(23)을 꼽았다. 유리한 볼카운트 2B에서 삼진을 당했었다는 임동휘는 울상을 지었다. 이런 모습을 귀엽게 여긴 동료들이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다시 기운을 차린 임동휘는 그의 제구와 파워에 대해 이야기하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홈런을 쳤으니 삼진을 당했던 날도 빠질 수 없었다. 김하성은 "니퍼트(35, 두산)가 나한테 연속으로 직구만 6개를 던진 날이 있다. 계속 151~153km로 던지는데 살벌했다. 이래서 니퍼트, 니퍼트하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좋은 공이었다"며 입을 벌렸다.

<2015년 ADT캡스가 선정한 8월의 수훈선수로 뽑힌 김하성의 당시 영상을 보며 그의 플레이를 칭찬했다. 사진=표권향 기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시작은 같았다. 그러나 현재 서있는 위치는 다르다. 하지만 길은 갈리지 않았다. 첫 시점이 달랐을 뿐,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같다. 이들도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강정호(30,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공백을 완벽하게 채운 김하성에게 시선이 쏠렸다. 김하성은 동료들이 칭찬한 플레이를 기억하며 동영상을 찾아 함께 이날의 짜릿함을 나눴다.

지난해 8월 10일 삼성과의 맞대결에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김하성이 7회말 1사 2루에서 이흥련의 타구를 점프해서 캐치한 후 강한 어깨를 이용해 1루에서 아웃시켰다. 이날의 수비로 김하성은 '8월 ADT캡스플레이'에 선정돼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자신의 한 달 용돈의 딱 2배였다.

용돈의 단위가 달랐다. 나아가 연봉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2015년 꾸준한 성적을 거둔 김하성은 구단 최고 인상률(300%)에 2016시즌 연봉(1억6000만원)을 계약했다. 덕분에 저금하는 액수도 높아졌다. 현재 계획은 한 달에 1000만원에서 1200만원을 생각하고 있다.

김하성은 "어려서부터 야구를 한 나 스스로에 대한 보답이었다. 하지만 내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빠질지 모른다"며 "누구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기회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를 위해 항상 긴장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 부러운 눈빛이었으나 "하성이가 그만큼 잘 했다", "동기지만 정말 대단하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김하성의 수고를 인정했다.

칭찬을 들은 김하성은 "입단 동기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보다 1년 먼저 기회를 받아 조금 빨랐다"면서 "고등학생 때부터 너희를 봐왔다. 충분히 잘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응원했다.

<야구를 잘 하면 돈과 명예가 따라온다. 하지만 이들은 야구를 하면서 함께 나누는 우정과 미래가 더욱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표권향 기자>

▲ 힘들 때 더 안아주는 친구

이런저런 소재로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3년 전과 달리 말수가 줄고 조용해진 한 사람이 있었다. 지난해 포수 마스크를 벗고 내야수로 전향한 이용하였다.

이용하는 입단 당시 이병훈 해설위원의 아들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어쩌면 언론의 집중관심이 갓 프로에 입단한 신인선수에게 부담을 줬었는지도 모른다. 2시즌 동안 1군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신인 2차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62번으로 지명을 받았던 선수가 육성군으로 내려갔다.

목동구장에서 운동하는 김하성, 임동휘, 임병욱과 달리 이용하는 이날 경기도 화성에서 개인훈련을 마치고 서울에 왔기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반가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러나 목동구장의 소식이나 1군 경기, 특히 다가오는 스프링캠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다시 조용해졌다.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오키나와로 떠나는 김하성, 임동휘, 임병욱과 달리 이용하는 2군 캠프지인 대만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임동휘가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운을 띄웠고 김하성과 임병욱이 "대만에 가서 홈런을 빵빵 쳐서 꼭 오키나와에 합류하라. 오키나와에서 만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자"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동갑내기들의 응원에 힘을 얻은 이용하가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한 번 해보자"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2016년 95년생들의 패기가 당차다. (왼쪽) 임병욱은 중견수로 변신해 그라운드에 설 예정이다. (오른쪽) 임동휘는 '제 2의 박병호'를 꿈꾸며 몸을 키우고 있다. 사진=표권향 기자>

▲ 상상하라! 꿈을 위해...

3년 전 자신에게 썼던 각자의 편지(<가고시마 일기> 넥센 '신인 4인방', 나에게 보내는 편지. MK스포츠 표권향 기자)를 돌려봤다. 가장 먼저 적힌 임병욱이 소리 내어 읽자 김하성, 임동휘, 이용하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노릇노릇해져가는 고기에만 응시했다.

일본에 가기 전에 세웠던 목표와 새로운 목표, 내가 서있는 자리, 땀을 흘리며 이루고자 했던 소망 등을 다시 떠올리며 신인 시절로 잠시 돌아갔었다.

임병욱이 "우리 그라운드에 누워서 사진 찍은 거 기억나?"라고 묻자 김하성과 임동휘가 당시 상황을 재현하며 "야구공으로 2014 만들었었잖아"라며 즐거워했다.

이젠 이들에게도 후배들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이들도 모르게 더 이상 막내가 아닌 선배가 되어 있었다.

김하성은 "(김)민성이형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고 하자 임동휘가 "상남자"라고 덧붙였다. 김하성은 이어 "형의 실력은 물론 성격까지 닮고 싶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임동휘와 이용하는 "2군에서 김성갑 감독님, 송지만 코치님, 채종국 코치님, 허문회 코치님, 임진수 코치님, 안영태 코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성적으로 보답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유격수로 지명을 받았으나 내년부터 외야수로 나서게 될 임병욱은 "(야구선수가 장래희망이었던) 아버지의 꿈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앞으로 헤쳐 나가야할 일이 많은데 정신 바짝 차리고 내 자신을 다스리겠다"며 "부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질투와 시기, 전쟁과 같은 경쟁의 넝쿨 속에서 이들은 우정을 나누며 내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진=표권향 기자>

이용하는 "야구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이라고 정의했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인생의 거울로 표현했다.

이 말을 들은 임동휘는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인생 이야기다. 야구가 재미있기에 야구선수를 하는 것이다. 매일 잘 할 수 없다. 못할 때도 있어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이 즐거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추억으로 배를 채운 김하성, 임동휘, 임병욱, 이용하는 식당에서 나와 홍대 거리를 걸으며 누가 먼저 시작할 것도 없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지아의 <술 한 잔 해요>. 미성년자였던 4명의 신인선수들이 벌써 스물한 살이 되어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각자 설정한 목표는 다를 수 있지만 걸어가는 길이 같기에 대화가 통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동료의 의미를 넘어 감정까지도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