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한 권의 식물도감 숲, 홍릉수목원











홍릉수목원은 한국 최초의 수목원입니다. 나무 몇 종류만 갖고 몇 년 새에 얼렁뚱땅 만들어진 숲이 아니라 고궁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 자라는 여러 나무를 한 곳에 집합시켜 놓았으므로 식물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그래서 수목원 구석구석에 심어진 식물들을 찾아 공부하다 보면 홍릉수목원이 한 권의 살아 있는 식물도감 숲처럼 느껴집니다.
홍릉수목원에서 꼭 보아야 할 곳은 입구 왼편의 약용식물원입니다. 이곳은 홍릉수목원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으로, 계절에 맞추어 온갖 약초와 다양한 식물들이 피어납니다. 봄에는 개복수초, 노루귀, 깽깽이풀, 양지꽃, 들현호색, 백미꽃, 백작약, 사상자, 흰붓꽃, 백미꽃, 두루미천남성, 백선 등이 차례로 꽃을 선보입니다.
여름이면 약모밀, 종덩굴, 지리강활, 속단, 여로, 황금 등이 연달아 피어납니다. 항상 그곳에 심겨 있으므로 새싹일 때부터 식물을 관찰할 수 있어 좋습니다.
꽃이 부족한 이 시기에는 주변의 나무들을 관찰하면 됩니다. 모감주나무, 장구밤나무, 황철나무, 박달나무, 비술나무, 구주피나무,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황벽나무 등이 큰 키로 서서 자신만의 봄을 준비합니다.
그 너머의 활엽수원에는 더 많은 나무가 기다립니다. 이름처럼 각종 활엽수가 촘촘하게 심어진 곳입니다. 본관동을 정면에서 바라본 방향에서 양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왼쪽의 활엽수원에서는 옻나무, 개회나무, 까마귀베개, 박쥐나무, 청사조, 페칸, 느릅나무, 두충, 복장나무, 복자기, 괴불나무, 댕강나무, 문배, 양벚나무, 만첩풀또기, 풍년화 등이 심겨 있습니다.
그중 성질 급한 풍년화는 조금만 이상고온이 지속돼도 못 참겠다는 듯 꽃을 피워댑니다. 향기도 그만이어서 꽃이 귀한 시기에 가장 반갑게 만나게 됩니다.
오른쪽 활엽수원에서는 히어리, 난티나무, 섬벚나무, 까치박달, 까마귀밥나무, 고욤나무, 이팝나무, 헛개나무, 노각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망개나무 등의 목본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는 팻말 없이 자라는 식물들이 눈길을 끕니다. 봄에 피는 것 중 봄망초와 털조장나무를 찾아볼 만합니다. 봄망초는 언뜻 개망초와 비슷하지만, 줄기 속이 비어 있고 꽃차례의 주변부에 흰색으로 달리는 혀 모양의 꽃(설상화)이 많은 점이 다릅니다.
대구 주변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하여 대구망초로 불리다가 시기상 봄에 피는 점을 고려해 봄망초로 개명했습니다. 봄망초는 개망초와 비슷해서 꽃맹(盲)이신 분들은 언뜻 알아보기 어렵지만, 경복궁 같은 고궁 안에서도 퍼져 자라는 꽃입니다.
<봄망초 자세히 알기>
“누가 털을 조장하는가?” 털조장나무를 처음 접한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저 제목을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중국명 모조장(毛釣樟)에서 변형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숲에 털조장나무의 꽃이 피어 있으면 누가 여러 개의 작은 촛불을 켜두고 간 것처럼 보입니다.
3월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데, 생김새가 생강나무와 비슷해서 혼동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인 전남 조계산이나 무등산, 모악산 등에서 드물게 자라므로 그 외의 지역에서 만날 일은 없습니다.
게다가 털조장나무는 꽃이 주로 가지 끝에 달리는 점이 다르고 잎이 전혀 갈라지지 않는 점도 다릅니다. 그런데 홍릉수목원에 심어진 털조장나무는 약간 다른 종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털조장나무는 분명히 암수딴그루여서 암그루에는 암꽃이, 수그루에는 수꽃이 달리며 ‘단성화가 핀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홍릉수목원의 것은 특이하게도 양성화로 보이는 꽃이 핍니다. 즉, 암술과 수술이 모두 정상적인 성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꽃이 달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 그루밖에 없음에도 열매를 잘 맺곤 합니다.
<털조장나무 자세히 알기>
본관동 뒤쪽의 연구동 앞 홍림원은 여름에 가보면 좋습니다. 커다란 능소화가 넓은 치맛자락을 펼치고 앉아 주황색 꽃을 주렁주렁 매단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거기서 가까운 곳에 서 있는 반송도 수형 하나는 참 멋집니다.
홍림원 옆 나무병원 근처의 작은 동산에는 각종 모란이 단체로 피어나 관람객들을 끌어모읍니다. 그 외에 꽃댕강나무, 흰병꽃나무, 히어리, 구슬댕댕이, 팥배나무, 등대꽃, 미국낙상홍, 화살나무, 배롱나무, 때죽나무, 서부해당화, 왕벚나무 등이 줄줄이 피어나는 곳이니 빼놓지 않고 꼭 들러봐야 합니다.
홍림원에서 곧장 올라가면 제8수목원인 활엽수원이 나옵니다. 이곳에도 다양한 풀꽃나무들이 촘촘하게 심어져 제각각의 이름표를 달고 서 있습니다. 이곳의 나무 중 가장 특이한 것은 뽀뽀나무입니다.
Pawpaw라는 영어명에서 온 이름으로 포포나무라고도 하지만 뽀뽀나무가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연인들은 그 나무 앞에 가서 이름을 핑계로 뽀뽀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수작입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는 아니고 북미가 원산지인 나무입니다.
열매가 으름을 닮아 길쭉하지만, 속살은 주황색입니다. 바나나와 망고가 합쳐진 맛이 나며 식용할 수 있습니다. 화장품 냄새가 난다며 싫어하는 분도 있지만 뽀뽀를 핑계로 소량의 립스틱이라도 먹어본 분들은 아마 먹을 만할 겁니다. 대개 관상수로 심으며 최근에는 열매를 얻기 위해 과수용으로 심어 기르기도 합니다.
<뽀뽀나무 자세히 알기>
활엽수원에서 조금 더 가면 조경수원이 나타납니다. 이곳에서는 자목련, 함박꽃나무, 수양벚나무, 아로니아, 눈홍자단, 모과나무, 서양산딸나무 같은 조경용 나무를 비롯해 복사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같은 유실수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은종나무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국이 원산지인 은종나무는 은종 모양의 꽃이 가지 가득 피어난 모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처음 은종나무의 꽃을 본 분들은 때죽나무의 꽃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은종나무는 때죽나무과의 나무이고, 별칭으로 ‘미국때죽나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열매를 보면 사뭇 다른 편입니다. 은종나무의 열매에는 4개의 넓은 날개가 달려 있어서 저희끼리 부딪히면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은종나무 자세히 알기>
서울 시내에 이런 수목원이 있다는 사실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개방하고 주차 시설이 없다는 점이 아쉬우나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일입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후대에 물려줄 재산으로 이만한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26 증시]⑤ 김정수 미래에셋 본부장 “삼성·하이닉스 영업익 각 100조 시대… ‘차별화 장세’
- [단독] 7000억 사기극 이철의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끝내 파산
- [르포] “‘아이폰17·갤S25·플립7’ 공짜에 용돈까지”… KT 위약금 면제가 촉발한 통신사 갈아타
- [CES 2026] ‘연필 한 자루’ 두께 무선 TV 나왔다… LG전자, OLED 제품 강화
- 건보 적자 2050년 44兆…‘급여 확대 남발’에 젊은 세대 등골 휜다
- 업무 과중으로 우울증 악화돼 숨진 공무원… 법원 “순직유족급여 인정”
- [트럼프 귀환 1년, 세계는 어디로] ② ‘성장’과 ‘해고’ 사이… 두 얼굴의 트럼프노믹스
- “지금 주문하면 언제 받을지 몰라”… 올해 GPU 공급 부족 정점, 대체재 찾는 빅테크
- [팩트체크] 李 대통령이 ‘비싸다’ 한 생리대값…1년 새 25% 상승, 독과점 구조 도마 위
- 대 잇는 금투업 ‘큰손’ 2세들... VC서 종횡무진 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