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양극화 심화 '리우 올림픽의 그늘'
유치 확정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정부는 파벨라 119곳을 철거 대상으로 발표했다. 2013년 파벨라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지난 3월까지 올림픽 때문에 이주당한 인구는 최소 29개 지역 1만6000여명으로 추산된다.
2016년은 지구촌 최대 축제, 올림픽이 열리는 해다. 개최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2014년 월드컵에 이어 올림픽까지 연달아 대형 스포츠 행사의 무대가 됐다. 남미에서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치르는 도시라는 영예도 얻었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이미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경기장 건설 지연, 심각한 수질오염, 치안 불안 등으로 행사 자체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더욱이 브라질 경제는 ‘신흥국 위기’라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고, 정치도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연일 불안정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올림픽을 계기로 극심한 빈곤과 불균형 개발 등 사회적 모순이 폭발하고 있다.
리우의 비야 오토드로모(Vila Autodromo)는 올림픽공원 건설이 한창인 지역과 가림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어선 슬럼가, 즉 ‘파벨라(favela)’다. 1970년대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파벨라는 리우 시내에만 수백개에 이른다. 파벨라는 강도나 마약·살인 등 범죄가 창궐하고 갱단이 마을을 지배하는, 게다가 경찰 등 국가 통치기구마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위험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대대로 수십만명의 주민들이 살아온 터전이기도 하다.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파벨라)에 사는 한 소녀가 굴착기로 마을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보고 있다. / ‘리우 2016: 배제의 게임’ 보고서 (유튜브) 캡처 |
강제로 쫓겨나는 슬럼가 주민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 27일 전한 비야 오토드로모의 풍경은 폐허를 방불케 한다.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집들은 대부분 무너졌고, 곳곳에 버려진 살림살이가 나뒹굴고 있다. 부서진 콘크리트와 타일은 진흙더미와 함께 쌓여 있다. <타임> 기자는 굴착기가 마을을 파헤친 지 오래며, 흡사 전쟁지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사라졌다. 리우의 파벨라 지원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캐털리틱 커뮤니티(Catalytic Communities)’는 과거 이 곳에 모여살던 700여가구 중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이들은 40가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대다수는 브라질 당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벌여온 파벨라 ‘정비’ 대책에 따라 이주했다. 리우 시정부는 파벨라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빈민들에게 이주보상금을 주거나 공공주택으로 옮기도록 주선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파벨라에 수십년간 대대로 살아왔던 주민들로서는 강제로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네 딸을 파벨라에서 키운 산드라 수자(47)도 “그들(정부)이 주겠다는 돈은 더러운 돈”이라고 비판했다.

| 올림픽으로 강제철거 위기에 처한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 비야 오토드로모의 모습. 마을에 남은 몇 안 되는 집 벽면에는 철거를 반대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캐털리틱 커뮤니티’ 제공 |
올림픽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파벨라 주민들 중 극소수는 아직 마을을 지키고 있다. 손수 일군 삶의 현장을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20년간 이 곳에서 살아온 한 주민은 “처음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이 땅을 일궜다. 이 집은 내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철거 반대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루이즈 클라우디오(53)는 “올림픽은 핑계일 뿐, 그들은 우리의 인생사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올림픽 유치 초기만 해도 파벨라 주민들에게는 기대감이 있었다. 올림픽 ‘특수’가 지역 발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부도 포용적인 올림픽 개최를 공언한 터였다. 하지만 유치 확정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정부는 파벨라 119곳을 철거 대상으로 발표했다. 2013년 파벨라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지난 3월까지 올림픽 때문에 이주당한 인구는 최소 29개 지역 1만6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올림픽이 브라질의 오랜 골칫거리인 빈곤과 양극화를 오히려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야 오토드로모의 주민들은 올림픽이 끝나면 호화 콘도 개발 붐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고 있다. 라군을 끼고 있어 관광지로 적합한 데다 인근의 부유층 지역 ‘바하 다 티주카’ 때문에 부동산값이 폭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쫓겨난 원주민들은 개발의 혜택에서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다. 리우 최대 슬럼가인 호싱야(Rocinha)에 최근 만들어진 골프장 역시 부유층의 전유물일 뿐이다.
올림픽이 약속한 ‘번영’이 반쪽짜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AP통신 리우데자네이루 특파원 줄리아나 바르바사는 월드컵과 올림픽 탓에 도시 개발이 주로 서부지역에 쏠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도심과 경기장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도 정작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리우 북부지역 대신 개발에 따른 이득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서부에 집중되고 있다.
함부르크, 2024년 올림픽 포기 선언 가뜩이나 위기인 브라질 경제가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더욱 휘청거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림픽에 소요되는 예산은 무려 400억 헤알(약 12조6200억원). 저유가와 환율 폭등으로 2015년 -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브라질이 감당하기 힘든 규모다.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로 탄핵위기에까지 몰린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도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리우 올림픽이 과연 브라질만의 문제일까. 브라질이 현재 당면한 정치·경제적 위기가 중첩되어 있기는 하지만,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다. 대규모 이벤트를 이유로 벌어지는 도심 정비, 그리고 원주민들의 강제이주는 올림픽 역사상 되풀이돼 나타났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른 우리에게 놀랍도록 익숙한 내러티브다.
국제적 규모의 행사를 위해 엄청난 돈을 치르느라 나라 전체가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결코 낯설지 않다. 특히 올림픽의 효과가 사회 전반에 골고루 미치기는커녕 결국 부유층이나 개발업자들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지적은 뼈아프게 들린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그런 면에서 최근 일부 나라들이 올림픽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다. 지난달 말 독일 함부르크는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 포기를 선언했다. 주민투표 결과 과반인 52%가 올림픽 유치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파리 연쇄테러 이후 실시된 투표인 만큼 테러 불안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림픽이 환경을 파괴하고 재정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앞서 미국 보스턴과 캐나다 토론토도 비슷한 이유를 들어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어쩌면 올림픽을 통한 발전모델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김유진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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