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서울 야경은 멀리서 봐야 제 맛? 타임스퀘어와 차이는?

최재영 기자 2016. 1. 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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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지정한다고 '타임스퀘어'되나?

“서울 야경, 이쁘다”

남산에 올라 서울의 야경을 바라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도심으로 들어오면 이런 생각은 사라집니다. 멀리서 빛을 내던 네온사인은 정신을 혼란스럽게만 하고, 외래어로 가득한 광고판과 간판은 보기 불편합니다. 서울야경은 멀리서만 봐야 제 맛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 뉴욕을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일부러 찾는 곳이 있습니다. 특히 밤이 되면 불나방처럼 그 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바로 타임스퀘어 광장입니다. 광장에는 화려함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화려함은 우리가 서울에서는 불편하게 생각했던 광고판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광고판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배경이 너무 밝아서 얼굴이 어둡게 나온다고 매일 보는 광고판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구도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이게 타임스퀘어의 힘입니다.

타임스퀘어 (사진=게티이미지)

이런 타임스퀘어의 광고판, 이 광고판이 만들어내는 화려함은 자본주의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뉴욕 중앙에 있는 광장, 그리고 그 광장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광고판들은 자본주의가 가져온 번영과 화려함을 과시하고 있다는 느낌도 줍니다.

그럼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영광을 직접 느끼기 위해 이 광고판들이 가득한 곳을 찾을까요. 아닐 겁니다. 타임스퀘어의 화려함 속에는 세속적인 욕망의 소비가 아니라 문화의 소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타임스퀘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타임스퀘어는 미국 뉴욕의 42번가, 7번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사람이 많이 다니기는 하지만, 그 지역에서 소비가 일어나지 않으면 광고주들은 비싼 돈을 주고 광고를 하지 않을 겁니다.

타임스퀘어 광장 주변은 여전히 소비가 일어나는 지역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영화나 공연을 보고, 인근 쇼핑센터에서 쇼핑을 합니다. 그리고 주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습니다. 외국 관광객들은 인근 호텔에서 비싼 가격을 부담하고도 그 생동감을 즐깁니다. 그래서 이곳에 광고판이 몰렸고 지금도 몰리고 있고 앞으로도 몰릴 겁니다. 한마디로 돈이 돌고 있기 때문에 광고도 있는 겁니다.

 이런 소비는 타임스퀘어 주변에 있는 브로드웨이를 살렸고, 주변 쇼핑지역을 살렸고, 주변 레스토랑과 호텔을 살렸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영화 ‘접속’의 마지막 장면 기억하시겠습니까. 주인공이 영화 마지막에 처음 만나는 그 광장은 종로 3가에 있는 피카디리 극장 앞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그 모습은 전혀 없습니다. 낡고 작았지만 추억이 있던 극장 자리에는 대형 복합상영관이 들어서 있습니다.

어디가나 볼 수 있는 복합상영관으로 변신한 극장 주변은 더 이상 매력적인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더 크고 깨끗한 복합상영관으로 몰립니다. 주변은 더 이상 발전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은 타임스퀘어 광장 주변의 문화와 역사를 살렸고, 보존했고, 그 문화를 지금 팔고 있는 겁니다. 그 생동감이 바로 화려한 광고판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타임스퀘어 인근에 있는 오래된 극장들도 한때는 철거 위기에 처했습니다. 경제 성장과 함께 따라다니는 ‘개발’이 ‘전통’을 파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공공 민간단체들이 생겨나서 철거에 반대하고 보존을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공공단체인 MAS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자치예술협회(Municipal Art Society, MAS), MAS는 1893년, 뉴욕의 예술가와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시민단체입니다. 초기에는 주로 시의회 의원들에게 도시 미적인 문제에 대한 자문 정도의 역할을 하다 뉴욕의 도시계획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습니다.

특히 타임스퀘어 일대가 보전 가치가 있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 지구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극장 건축물의 물리적 보전과 함께 타임스퀘어 일대의 특성을 보전하기 위해 44개 등록 극장들을 랜드마크로 지정하고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해나가면서 지금의 타임스퀘어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심성욱 교수(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부) 공청회 발표 자료 일부 인용. 

결국, 이런 단체들의 노력이 바탕이 된 뉴욕의 도시 재생사업의 결과는 뉴욕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그대로 보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 녹아 있는 문화는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매혹적입니다. 결국, 이런 것들이 모여서 타임스퀘어 화려한 광고판은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타임스퀘어와 같은 곳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습니다.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을 지정해 마음껏 옥외에 화려한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 청사진은 이르면 올해 말에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6개월 이후에 지방자치단체에서 광고자유표시구역을 신청하면 법무처 심위위원회를 거쳐, 통과된 안을 행정자치부가 지정해서 한국판 타임스퀘어가 등장하는 겁니다. 이미 부산 해운대에도 샌텀시티 지역을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명동 코엑스, 강남역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1~2곳 정도 지정해서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만들려고 하는 복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를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제안을 하려합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제출한 계획서가 낙관적인 기대효과로만 가득찬 신청서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고 유동인구가 얼마나 많고, 이 지역에는 어떤 문화가 있는지만 나열한 계획서가 아니길 바랍니다. 앞서 미국의 타임스퀘어 사례에서도 봤지만, 중요한 건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문화’입니다.

그게 ‘상품’입니다. 그래서 그 상품으로 지역에서 소비가 일어나고 그 소비가 있어야 광고도 따라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문화’는 단기간의 노력으로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의 노력과 계획이 필요합니다. 긴 호흡의 도시재생계획이 기본이 돼야 할 겁니다.

만약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 지정을 원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투자와 노력이 지금부터라도 선행돼야 합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지역의 가치가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장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랜드마크가 될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이 10년 후, 20년 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명동은 지금 관광객들이 많이 몰립니다.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 관광객들입니다. 그들이 명동에 와서 하는 일은 쇼핑입니다. 그것도 화장품 쇼핑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지금 명동에 가면 화장품 가게들만 보입니다. 화장품 쇼핑 이외에 명동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명동 (사진=게티이미지)

주변과 연계된 문화 소비는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극단적인 가정으로 명동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옥외광고 자유표시구역으로 지정돼 특별한 규제가 없다면 명동에는 화장품 광고로 도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중국인들이 더 이상 명동에서 화장품을 사지 않게 되는 시점에는 그 광고판은 비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극단의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합니다. 당장 눈 앞의 성과에만 집중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사업을 바라보는 겁니다. 이는 정책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시행까지 6개월의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어디에 사람이 많이 몰리지? 어디에 관광객이 많아서 관광객 유치라는 명분을 살릴 수 있지? 이런 것에 대한 고민보다는 대한민국의 상품은 무엇인지부터 고민하길 바랍니다.     

최재영 기자stillyo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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