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 '간현 이외수' 민경국] '간현 이외수'의 홀로 살아온 16년 이야기

글·월간산 신준범 기자 2015. 12. 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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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사 그만두고, 구학산 자락에 나무집 짓고 사는 클라이머

“이외수가 암벽등반을 한다고?”

그런 소문이 생길 정도로 닮은 사람이 민경국(60)씨다. 그는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간현 이외수’라 불린다. 흰 수염에 장발까지 너무나 비슷해, 소설가 이외수 선생으로 착각해 사인을 요청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돌아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오해를 받아요. 모르는 사람들이 인사하는 건 기본이고 사인 요청을 헤아릴 수도 없이 해요. 이외수씨는 나한테 광고비 내야 해요.”

흰 수염과 장발만 보면 할아버지인데 몸은 근육질이었다. 독특한 외모 때문에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오랫동안 원주 간현암에서 등반해 온 탓에 ‘간현 이외수’ 라는 별명이 생겼다.

[월간산]간현암 ‘별이 진다네’를 오르는 원주 클라이머 민경국씨
산기슭에 나무집 짓고 16년간 살아
[월간산]구학산 자락의 직접 지은 나무집
산을 좋아하게 된 건 어린 시절 치악산을 찾으면서부터다. 초등학교 때 동네 형을 따라 치악산 비로봉 아래의 샘터에서 사흘간 야영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원주고등학교에 진학해 바로 산악부에 가입했으며, 상지대 영문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혼자 또는 친구들과 전국의 산을 찾아다녔다. 산행 경력이 길어지면서 자연히 비박과 야영을 하게 되었고 산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2006년 원주고교 동문산악회 창립멤버일 정도로 그의 산사랑은 원주에선 유명했다.

그가 클라이밍에 빠진 건 2004년부터다.

“산에 다니는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평생 워킹만하고 클라이밍이나 스키를 못 탄다는 건 가슴 한쪽이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민경국씨는 원주고교 후배이자 암벽등반 고수였던 조영순씨를 만나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후 조영순씨에게 등반을 배웠고 그의 소개로 원주 볼트락클라이밍클럽에 가입해 현재까지 열혈 클라이머로 등반하고 있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간현암의 고난이도 루트인 ‘형수2’ (5.12b) 프로젝트 등반을 했다.

일주일 중 최소 3일은 바위나 외벽에서 등반을 해왔다. 볼트락클럽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실내암장을 만들자 간현암과 실내암장, 인공외벽을 오가며 등반을 했다. 11년간 간현에서 등반을 했기에 “홀드 촉감 하나하나까지 외운다”고 할 정도다.

“등반의 매력은 흡입력이에요. 바위나 홀드 앞에 있으면 자꾸 잡아당겨요.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차오르는 거죠. 그러니 자꾸 달라붙게 되요. 떨어져서 녹초가 되도 다시 붙게 요. 클라이밍은 중독성이 있어요.”

평일에도 일을 하지 않고 암벽등반에 심취해 있던 그를 사람들은 기인으로 여기지만, 원래 누구보다 평범한 삶을 살아 왔다. 원주 토박이인 그는 고등학교 영어교사이며 아내와 딸 둘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 홀연히 명예퇴직하고 홀로 산에 들어왔다. 원주시 신림면의 구학산 자락에 나무집을 짓고 지금까지 16년을 혼자 살았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니 아내가 당연히 반대했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월간산]화목난로에 장작을 넣는 민경국씨. 늦여름부터 산의 장작을 모아 겨울을 난다.
“놀고 싶어서 그만뒀어요. 20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사회적으로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돈과 내 시간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갈등을 해왔고, 결론은 놀자는 것이었어요.”

그는 원래 톱질조차 못 하는 사람이었지만 독학으로 2개월 만에 나무집을 지었다. 복잡한 구조가 아닌 지붕과 벽,창문이 전부다. 지독한 추위와 더위를 어찌 견딜까 싶은데, 그는 구학산에서 보낸 16년을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이런 선택을 한 결정적 계기는 네팔 여행이었다. 1996년 백두산을 다녀오며 여행의 즐거움에 눈을 뜬 그는 1998년 한 달간 네팔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책만 참고해 혼자 여행길에 나섰다. 트레킹을 하면서 고산 원주민들의 집에 여러 날을 거주했는데 그들의 삶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간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 나이가 들면 제대로 즐길 수 없으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놀자’고 결심하고 과감하게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이후 지금까지 16년 동안 한 번도 수입이 있는 일
을 한 적이 없다.

구학산의 땅은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죽마고우들과 돈을 모아 2,000평을 샀다. 그 한 귀퉁이에 직접 집을 짓고 거친 산길을 다닐 수 있는 뉴코란도 SUV차를 샀다. 매년 겨울이 되면 네팔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지금까지 16번을 다녀왔다.

[월간산]수술 전까지 프로젝트 등반을 했던 ‘형수2’에 올라 환하게 웃음 짓는 민경국씨.

 

[월간산]턱걸이를 위해 매달아 놓은 나무 봉을 잡고 있다. 그의 집에는 오래된 등산 장비와 다양한 책, 음악 감상을 위한 음반으로 가득 차 있다.
버는 돈 없이 어떻게 살았냐고 묻자, “소비를 최소화하면 어렵지 않다”고 소탈하게 웃는다. 집 주위로 밭을 일굴만 한땅도 있지만 “농사를 지을 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며 “오로지 안 쓰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돈이 꼭 필요할 때는 조금씩 생기더라”고 말한다.
그가 학교를 그만둔 뒤부터 간호사였던 아내가 결핵협회 연구원으로 일하며 가장 역할을 해왔고, 큰딸은 장성하여 대안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는 “아내가 이해했다기보다는 포기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라 솔직하게 말한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는 까닭이 궁금했다.

“국수적인 이유가 있어요. 머리카락과 수염은 왜놈들에게 잘린 것이기에 옛생각을 회복하고 싶어서 자르지 않았어요. 교직에 있을 때도 머리카락 깎는 걸 싫어하고 약간 털보였죠. 퇴직한 뒤 면도와 이발을 안 했어요. 다만 등반할 때 불편하니 너무 길어지기 전에 가위로 조금씩 잘라요.”

그는 평생 술을 먹지 않았다. 다만 수술 전에는 담배를 하루에 한 갑씩 피웠다. 지금은 끊으려 노력 중이다. 혼자 집에 있을 때면 독서와 음악감상, 요리를 즐긴다. 조촐하게 먹더라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 먹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주로 김치를 재료로 한 요리를 즐겨 하는데, 돼지고기 김치찌개, 고등어 묵은 지찌개, 홍어김치찌개 등이 그가 말하는 스페셜 요리다.

독서는 이외수 작가의 책은 모두 보았지만, 김훈과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더 좋아하고 주로 고고사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혼자 있을 때면 시를 즐겨 쓰는데, 시집 3권을 내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산기슭이고 원래 추운 곳이지만 예전과 달리 요즘은 추위를 견디기가 무척 힘들다고 한다. 화목난로가 추위를 극복하는 방편이라 늦여름부터 장작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노동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몸이 약해져서 처음으로 장작을 샀다.

심장수술 후 체중 46kg으로 줄어

16년간 혼자 살았지만 고독이 싫지 않다고 말한다. 불안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외로움이 습관이 되어 더 편안하다고 한다. 다만 “혼자 밥 먹는 건 싫다”며 “밥먹을 때만큼은 여러 사람들과 먹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명예퇴직 이후 구학산 산막에서 살면서 11년간 ‘간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민경국씨가 사라진 건 올해 초부터였다. “4분 동안 심장이 멎었어요. 죽는 줄 알았죠. 수술 받고 다음날 병원 화장실에서 심장이 멎었어요. 전기 충격기로 심폐소생을 해서 살아났죠.”

올해 1월 선자령에서 비박을 갔던 그는 알 수 없는 구토 증세를 겪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는 피를 세 번이나 토하면서도 간현에서 ‘형수2’ 등반을 해왔다. 그러다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여행을 갔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병의 징후가 있었지만 그는 “산에 못 갈까봐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이 병을 키운 것 같다”고 한다.

원주에서 치료를 받다가 서울 삼성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았다. 72kg이었던 체중이 46kg으로 줄었다. 예전의 우락부락했던 근육이 다 빠지고 뼈만 남은 것이다. 지금은 주치의로부터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심장의 기능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병원에서는 심장 기능이 예전처럼 회복은 안 될 거라고 하지만 만성이 아닌, 급성이기에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재활하고 있다.

병원비가 꽤 들었는데, 친구들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듯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인간관계에서 비결을 찾는다. “상대를 거짓없이, 선입견 없이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 나의 사람 관계”라고 얘기한다.

“지금 이곳이 나의 파라다이스”

16년 된 민경국씨의 뉴코란도를 타고 간현으로 간다. 주행거리가 40만 km 넘은 차는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 안 되고, 엔진에서 별의별 소리가 나지만 그가 아끼는 애마다. “지금까지 속 썩이지 않고 잘 달려 주었고, 조금만 손보면 앞으로도 같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애정을 숨기지않는다.

고향집 같은 바위인 간현암에 온 그가 장비를 착용한다. 마음 같아선 최근까지 난이도 등반을 한 ‘형수2’를 오르고 싶지만, 왼쪽 벽을 택한다. ‘별이진다네’ (5.10b) 앞에 선다. 2년 만에 이 루트를 오른다는 그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오름짓을 보여 준다. 그러나 벽이 거칠어질수 록, 오버행 경사가 드세질수록 호흡이 거칠어지며 속도가 느려진다. 심장 기능이 약해 혈액에 제대로 산소 공급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상단 크럭스를 넘어서지 못하고 로프에 매달린다. 그는 “원래 눈 감고 가는 길인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며 하강한다. 등반은 조금씩 하고 있지만 심장이 약해 워킹산행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해 “답답하다”고 심정을 털어놓는다.

재활에 성공하면 하고 싶은 것을 묻자, 다시 히말라야를 가고 싶단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에 올랐던 토롱라 5,416m가 저의 최고 고도예요. 그걸 넘어 6,000m대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물론 심장 때문에 어려운 도전이 되겠지만 쉬엄쉬엄 가면 될 거라 믿어요.”

그가 20년간 몸담은 교직을 떠날 때도 시발점은 히말라야였고, 몸이 아픈 지금도 목표는 히말라야다. “히말라야에 가면 시간과 공간의 느낌이 착각 같아요. 우주 속의 미아가 된 느낌. 외계의 어느 외딴 별에 있는 것 같은 독립감이 들어요. 그 느낌이 좋아요.”

민경국씨는 남들과 다른 독특한 외모에,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왔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별의별 얘기를 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말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기 때문이다. 구학산에서 살고 간현을 오르는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파라다이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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