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3D터치?"..토종 벤처, 먼저 내놨다
(지디넷코리아=정현정 기자)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5'에선 중국 스마트폰업체 화웨이에 시선이 쏠렸다. 화웨이가 세계 최초로 ‘포스터치’ 기술을 탑재한 스마트폰 ‘메이트S’를 공개한 때문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번엔 애플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신기술 ‘3D 터치’를 탑재한 ‘아이폰6S’ 시리즈를 선보였다.
애플의 3D 터치는 사용자가 디스플레이를 터치하는 강도에 따라 특정한 기능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다. 애플 최고 디자인책임자 조너선 아이브는 3D 터치 기술을 “멀티터치의 다음 세대”라고 강조했다.
포스터치는 차세대 유저 인터페이스(UI)로 각광을 받고 있는 기대주. 흔히 포스터치는 애플이 원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화웨이가 애플보다 한 발 앞서 포스터치를 탑재한 메이트S를 출시하는 덴 국내 기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의 벤처기업 하이딥이다.
■ "5년 전 회사 설립한 뒤 1년 고민 끝에 포스터치 기획"
“2009년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보름 간 밤을 새며 아이폰을 만졌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2010년 회사를 설립하고 1년 동안 고민한 끝에 포스터치 기술을 기획했어요. 아이폰이 성공한 이유가 멀티터치 기술로 매일 쓰는 인터페이스를 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이를 더 쉽고 편하게 만드는 인터페이스 기술이 스마트폰의 핵심이라고 답을 얻은 거예요. 지구 상에 전혀 다른 두 회사가 비슷한 생각을 한 거예요. 핵심을 보는 눈이 통한거죠.”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고범규 대표는 한껏 고무돼 있었다. 전 세계 직원수가 10만명이 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회사와 불과 직원 60명이 근무하는 벤처기업이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 그것도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과 핵심을 보는 생각이 통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포스터치는 몇 개월 사이 나온 것이 아니예요. 2011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으니까 상용화까지 4년이 걸린 셈이죠. 개발하는 도중에 올해 애플이 애플워치를 내놓는 것을 보고 애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맥북과 아이워치, iOS도 포스터치를 지원하는데 아이폰이 안 할리는 없다는 거죠. 실제로 시장에서도 올 가을 애플이 내놓는 아이폰6s에 포스터치가 탑재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구요.”
그때부터 고범규 대표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가 아니면 의미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구랑 함께 할지가 문제였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 업체들을 만나 이 기술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파트너는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중국 화웨이가 적극적으로 이 기술을 채택하고 싶어했다. 처음 미팅을 하고 최고 경영진들이 일주일씩 한국에 와서 얘기를 나눴다. 그게 올해 2월이었다. 화웨이는 불과 3~4개월 후 양산에 들어가야 하는 제품을 원점부터 다시 개발한 셈이다. 고 대표는 “애플이 곧 내놓을 것 같다. 우리 목표는 애플보다 먼저 내는 거다. 할 수 있겠냐?”고만 확인했다. 결국 9월 화웨이는 세계 최초 스마트폰 포스터치 기술을 발표하는데 성공했다.
“콜럼버스는 달걀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으로 모두가 실패한 달걀 세우기에 성공했죠. 그때도 사람들은 그랬어요. ‘에이, 그건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들은 하지 못했죠. 팔로워(follower)들은 항상 그래요. 별 거 아니라고요. 하지만 무언가를 최초로 시도 하는 사람들은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판교 하이딥 사무실 입구에는 '최초가 되자(Be the first)'라는 문구와 함께 콜럼버스의 달걀 그림이 있다. 세계 최초에 대한 집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 대표는 세계 최초로 휴대폰용 DMB 튜너 칩을 개발한 인티그런트의 창업자다. 이 회사는 지난 2006년 미국 반도체 회사 아날로그디바이스에 1억6천만달러(약 1천870억원)에 팔렸다. 당시 미국 기업이 매출 400억원인 한국 스타트업 기업을 4배가 넘는 가격으로 인수한 사례는 현재까지 전무후무하다.
■ "스마트폰의 핵심은 인터페이스"란 점에 착안
대박의 비결은 모바일 TV의 핵심이 방송을 휴대폰으로 볼 수 있는 기술이 아닌 콘텐츠에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었다. 콘텐츠를 휴대폰으로 가져오려다 보니 큰 방송 수신 모듈을 작은 반도체 칩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기술은 목적이 아닌 도구인 셈이었다. 포스터치를 개발한 과정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의 핵심이 인터페이스이고 이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이 터치라는 것을 파악했다. 국내외 터치센서 업체는 한 두 곳이 아니지만 스마트폰의 핵심이 인터페이스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저 터치칩을 더 작고 더 싸게 만드는 방법에 골몰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고 대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더 편리하게 터치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한 것이다. 그렇게 나온 포스터치는 기존에 X축과 Y축으로 움직임을 측정하는 멀티 터치에 깊이를 측정하는 Z축이 하나 더 추가된 기술이다. 하이딥의 포스터치 기술명은 '아울루지(Aulu Z)'다. '아우르다'는 한글에 알파벳 'Z'를 결합한 이름이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압력에 따라 미세하게 강화유리도 휘어진다. 하이딥이 만든 터치칩에 탑재된 포스터치 엔진은 터치 강도에 따라 강화유리와 터치센서에 간격이 바뀌면 거리에 따른 정전용량을 측정하고 이에 따라 특정한 기능을 구현해준다.
딱딱한 강화유리의 휨 정도를 측정하기 때문에 센서는 아주 민감해야한다. 또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만큼 두께가 얇아야하고 디스플레이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투명해야한다는 전제도 붙었다. 그만큼 양산 기술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현재 많은 업체들이 특수 물질을 이용하거나, MEMS 센서를 탑재하는 방법, 네 모서리에 센서를 탑재하는 방식 등으로 포스터치 구현 기술을 개발 중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거나 두께가 두꺼워지는 등 스마트폰에 탑재하기는 적합하지 않아 상용화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포스터치 개발에 나선 여러 업체들 중 현재까지 양산에 성공한 애플과 하이딥은 똑같이 필름 형태로 터치센서를 탑재하는 방식을 택했다. 강화유리와 디스플레이 밑에 얇은 센서 레이어를 탑재해 정전용량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애플이 앞서 맥북이나 애플워치에 구현했던 포스터치와는 엄밀히 다른 기술이다.
기존 멀티터치에 강도를 측정하는 기술을 더했을 뿐인데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졌다. 예를 들어 위챗 애플리케이션 친구 추가를 하려고 하면 기존에는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해 친구추가 버튼을 누르고 ID나 연락처를 검색해 추가해야했지만 이제는 홈화면에서 위챗 아이콘을 한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기만 하면 친구추가 '바로가기' 메뉴가 바로 나타난다. 문자메시지 안에 하이퍼링크가 포함돼 있다면 기존에는 링크를 눌러 브라우저가 뜨고 내용을 확인한 후 다시 홈버튼을 눌러 메시지로 돌아와야했지만 포스터치 기술이 있으면 링크를 꾹 눌러 내용을 미리 보고 닫을 수 있다.
사진의 특정 부분을 세게 누르면 확대해주는 돋보기 기능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스크롤을 올리고 내리는 대신에 화면 상단과 하단을 꾹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터치 압력을 감지하기 때문에 붓글씨 같은 효과도 줄 수 있다.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 세게 누르면 기기를 활성화 시키는 잠금해제 기능에도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 게임을 할 때는 액셀레이터를 꾹 누르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고 전쟁게임에서는 쉽게 더 센 무기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커플끼리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은 터치 강도로 내 마음의 상태를 알려주는 로맨틱한 기능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 내년 매출 10배 이상 성장 기대
물론 사용자들이 이 기술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솔루션 회사 뿐만 아니라 휴대폰 제조사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사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지난해까지 고 대표의 걱정도 이 기술을 사용자들이 잘 쓸 수 있게 하는 방법이었다. 포스터치 기술을 넣으면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다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플이 이 기술을 준비 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애플이 자연스럽게 사용자들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는 애플보다 먼저 내놓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카카오톡으로 연락처를 주고 받는다고 쳐요. 상대방은 아이콘을 꾹 누르면 바로 QR코드 추가하기 메뉴가 뜨는데 난 3D 터치 기능이 된다고 가정해 볼까요. 단순한 기능인데 없으면 불편해지는 시기가 올 겁니다. 1년에 2억대씩 팔리는 아이폰과 iOS에서 3D 터치를 지원하는데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겠죠. 아이폰을 쓰는 사용자들도 여기에 익숙해 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애플이 아이폰6S에 포스터치 기술을 적용한 만큼 이 기술은 향후 스마트폰 인터페이스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현재로썬 대안이 하이딥 밖에 없어 사실상의 표준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고 대표는 당장 내년 중 중국에서 출시되는 하이엔드 스마트폰의 80%에 포스터치 기술이 탑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른 터치 센서 업체들도 빠르게 포스터치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이면 매출 측면에서도 올해 대비 10배 이상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단 그때까지 목표는 '아울루지'를 좀 더 많은 기기에 보급해 많은 사람들이 쓰도록 하는 것이다. 또 비용을 더 줄이고 두께를 더 얇게 만들면서 성능을 높이는 작업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6개월 안에 모든 터치 회사는 '우리도 포스터치 기술이 있다'고 얘기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사를 잃게 될 테니까요.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하이딥 기술을 벤치마킹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내년 상반기가 돼 특허가 본격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하면 엄청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센서 구조부터 양산 방법에 이르기까지 이미 100여건의 특허를 출원해놨습니다. 누구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혁신을 지키기 위해서요. 두고 보세요. 내년 상반기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 고범규 대표는 누구?
고범규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따고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서 3년 동안 CDMA 칩셋 개발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 불과 3년 만에 대기업 문을 박차고 나와 인티그런트라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회사를 설립한 2000년은 막 닷컴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자연히 투자도 얼어붙던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4년 내내 개발에 매달린 끝에 세계 최초로 휴대폰 DMB 수신용 RF 튜너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솔루션은 한국 DMB, 일본 ISDB-T, 유럽 DVB-H, 중국 CMMB에 모두 적용됐다. 2005년 첫 매출이 나올 때까지 투자를 받아 버티면서 기술 개발에 성공하자 주변에서는 경이롭다는 반응도 나왔다.
1억6천만달러에 회사를 매각하고 난 후에는 아날로그디바이스에서 임원으로 3년간 근무했다. 이후 다시 만든 회사가 하이딥이다. 하이딥에는 진대제 펀드로 유명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가 투자를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유명 벤처캐피탈인 월든인터내셔널의 립부탄 CEO도 주요 투자자다.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회사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도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온 아이폰이 영감을 줬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바일 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는 터치 기술을 개발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아이폰의 인터페이스가 터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폰의 인터페이스가 뭔가 다른 기술이었다면 그 기술에 베팅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칩만 만들던 사람들에게 인터페이스를 만들자고 하니까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다. UX·UI 토탈솔루션 업체를 표방했지만 결국엔 터치 센서부터 터치칩, 소프트웨어까지 다 만들게 됐다. 2D 멀티터치만 만드는 센서 회사들에 가서 앞으로 함께 3D 터치를 만들자고 했지만 왜 인터페이스가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와 근본적으로 협업이 불가능했다. 그들을 설득할 바에는 직접 하는게 낫다는 생각에서 할 수 없이 기반 기술부터 만들게 됐다.
현재 하이딥에는 6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고범규 대표는 늘 직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애플은 전세계 직원이 10만명이 넘는다. 우리는 60명이다. 지금 2천대 1로 붙는거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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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정 기자(iam@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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