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임은정 검사 길들이기?
검찰 내부 방침을 어기고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 의정부지검 검사(41)가 검사적격심사에서 특정사무감사를 받게 됐다. 검찰청법 제39조에 따르면 '직무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검사로서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 적격심사를 통해 해당 검사를 강제 퇴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임 검사는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 검사들이 주로 간다는 서울중앙지검 발령을 받아 근무했으며, 2007년에는 공판 실적을 인정받아 검찰총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임 검사가 심층적격심사 대상자로 선정된 배경에는 ‘직무수행 능력’ 이외의 요소가 작용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검사 출신인 백혜련 변호사는 '검찰 상부에 미운털이 박히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검사들은 임명 뒤 7년마다 적격심사를 받는데 심층적격심사 대상으로 분류되면 특정사무감사를 받는다.
2012년 12월 임 검사는, 북한에 동조한 혐의로 1961년 혁명재판소에서 15년형을 선고받은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 재심 사건에서, 백지 구형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무죄를 구형했다. 백지 구형은 ‘법과 원칙에 의한 판단’을 구하는 것으로 검사는 의견을 진술하지 않고 사실과 법률 적용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법원에 맡긴다는 뜻이다. 임 검사는 재판 당일 사건을 재배당받은 다른 공판검사가 법정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검사 출입문을 잠근 채 재판에 들어갔다. 문 밖에는 메모지 한 장을 붙여두었다. '징계청원 글 게시판에 올려두었고, 난 무죄 구형할 것이다.'
임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징계를 각오하고 무죄 의견을 진술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검사는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분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를 우리 사회를 대신하여 말할 의무가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중략) 소위 ‘백지’ 구형이 피고인의 죄에 상응하는 구형을 해야 할,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의 구형인지 아직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해당 재심 사건의 무죄 구형은 재량권의 행사가 아니라 의무라고 확신하기에 저는 지금 무죄 구형을 위해 법정으로 갑니다.'
과거사 재심에서 무죄 구형은 전례가 없지는 않지만 꽤 드물다. 윤길중 간사 재심 사건을 맡았던 이덕우 변호사는 '내가 맡은 과거사 재심 사건이 30여 건 되는데 무죄 구형은 처음이었다. 백지 구형도 많지 않고 대부분은 원심을 인용해서 유죄 구형을 한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무죄 구형에는 사과의 의미가 있다. 백지 구형을 하는 데에는 대개 잘못된 과거사를 은폐하려는 생각도 깔려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임 검사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던 박형규 목사 재심 사건에서도 무죄 의견을 진술했다.
검찰은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징계처분 취소 소송 1, 2심에서 법원은 모두 임 검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항소심 법원은 '백지 구형 명령이 부당하다'라고 판결했다. 형사소송법은 검사에게 의견 진술(구형)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검찰청법은 검사의 직무와 권한으로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 청구를 규정하고 있는데 백지 구형은 이에 반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검사가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따라야 하지만 적법한 것에만 한정돼야 한다고 보았다.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 체제에서 골간이 됐던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2003년 검찰청법 제7조 ‘검찰 사무에 관한 지휘·감독’으로 변경됐다. 검찰청법 제7조는 2항에서 평검사의 이의제기권을 인정하고 있다.
징계처분은 취소됐지만 검사적격심사가 남아 있었다. 징계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변론을 맡은 오지원 변호사는 '소송할 때부터 예상했다. 일을 잘하느냐에 관계없이 눈 밖에 날 경우 심층적격심사 대상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임 검사는 검찰 내부 게시판을 통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왔다. 광주 인화학원 사건 1심 공판검사를 맡기도 했던 임 검사는 영화 <도가니> 개봉 뒤 '경찰, 검찰, 변호사, 법원의 유착이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싶다. (중략) 또 다른 도가니를 막을 수 있다면 감수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한 이진한 서울고검 검사가 정식 징계가 아닌 경고처분을 받았을 때도 그는 ‘성폭력 관련 사건 기준 문의’라는 글을 올리며 반발했다.
심사위원회 결과는 사실상 법무부 장관이 좌우
임 검사는 12월3일 페이스북을 통해 특정사무감사를 받게 됐다고 밝혔다. 대상자는 6명으로 알려졌다. 임 검사는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 구형한 후, 동료로부터 법무부 모 간부가 격노하여 적격심사 몇 년 남았냐고 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라고 적었다. 이를 두고 백혜련 변호사는 '적격심사가 검찰 길들이기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내가 검찰에 있을 때는 적격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임 검사가 심층적격심사 대상자로 선정된 이후로는 검사들이 의식하는 게 달라질 것이다. 검찰 방침에 반하는 검사들을 압박하고 구속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한상희 교수는 '내부고발자 논리와 비슷하다. 조직 내부에서는 배신자라고 해서 처단하거나 왕따시키지 않나. 적격심사가 그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청법은 적격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재적위원 중 3분의 2 이상 의결을 거치면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해당 검사의 퇴직을 제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때 위원 9명 중 검사 4명을 포함해 심사위원 3분의 2를 법무부 장관이 정한다. 사실상 위원회 결과를 법무부 장관이 좌우하게 되는 셈이다.
한상희 교수는 적격심사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사나 판사처럼 독립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는 인사 장치를 최고 권력자로부터 떼놓아야 한다. 위원회에 중립적인 인사가 들어가고 외부 감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기준이나 절차 등 아무것도 공개된 게 없다. 가장 잘못된 형태다.' 실제로 임 검사는 특정사무감사 대상자가 됐다는 사실만 통보받았을 뿐 그 이유는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제도 도입 이후 최초로 면직처분을 당한 A검사 역시 올해 2월 받은 공문에 ‘퇴직을 명함’이라는 말만 쓰여 있었다.
임 검사는 A검사의 퇴직을 언급하며 '법무부에서 원하는 검사상이 법률이 원하는 검사상과 일치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심층적격심사 대상이 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임 검사 페이스북에는 응원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김연희 기자 / uni@sisain.co.kr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