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권향의 여우사이] '경쟁자에서 베프 된' 박건우·정수빈·허경민의 우정

200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캐나다 에드먼턴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한국 대표팀은 대만(8강전, 5-4 승), 쿠바(준결승전, 6-1 승)를 차례대로 꺾고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7-0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우승컵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 대표팀은 서로 껴안으며 기쁨을 나눈다. 누가 봐도 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팀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흔히 그라운드는 전쟁터라고 말한다.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살아남으려면 싸워서 이겨라'라고 배웠다. 고교야구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선수들이 모였기에 소집 당시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라이벌이었기에 서로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태극마크가 가슴에 달린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오르는 순간, 18명의 선수들은 '적'이 아닌 '동료'라는 것을 깨달았다.

<2008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 중에서도 '베스트 프렌드'라고 알려진 (왼쪽부터) 허경민과 정수빈, 박건우는 2009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에 입단해 '잠실 아이돌'로 불리고 있다. 사진=표권향 기자>

90년생 동갑이라는 공통분모도 한 몫 했다. 이들 사이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게 했다. 학교 대 학교의 맞대결이 아닌 국가 대 국가의 승부라는 것을 인지했다. 허경민은 "오랫동안, 몇 년 같이 야구를 한 사이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 멤버들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로 우정을 나누며 프로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중에서도 유독 붙어 다니는 세 명의 선수가 눈에 띈다. 이들은 이듬해 두산에 입단해 7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또 2015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14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잠실 아이돌' 아니 이젠 '90트리오'란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박건우와 정수빈, 허경민(이상 25)의 이야기다.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온 허경민은 하얗고 머리카락이 긴 박건우가 신기했다고 한다. 허경민은 "(박)건우에게서 귀공자 스타일과 도시남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다가가기 힘들었고 말 걸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겉모습과 달리 성격이 쾌활해 오히려 (정)수빈이보다 편했던 것 같다"며 "수빈이는 말수가 적고 나와 비슷하게 내성적이었다. 정말 야구밖에 몰랐다"고 이들과의 첫 번째 만남을 떠올렸다.

박건우가 장난조로 허경민을 거들었다. 박건우는 "수빈이는 대표팀에 늦게 합류했다. 머리가 매우 짧았고 어리바리했다"고 회상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수빈이 "건우는 서울고에서도 잘 나가던 선수였다. 솔직히 쪽팔렸다"며 박건우를 향해 엄지를 치켜 올렸다.

<이들은 해외 전지훈련에서도 늘 붙어 다녔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추억이라고 말했다. (왼쪽 시계방향으로) 박건우, 김진형, 최재훈, 정수빈, 허경민. 사진=정수빈 제공>

7년이 지난 현재 각자 이미지는 어떻게 변했을까.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박건우는 생각이 '너무' 많아졌고, 정수빈은 평소 집중을 잘 하지만 일상에서는 정신줄을 자주 놓는다고 한다. 즉 멍 때릴 때가 많다고... 허경민에 대해서는 "소심하다"란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박건우와 정수빈은 "허경민이 '또' 삐칠까봐 걱정된다"며 개구지게 웃었다.)

장난꾸러기들의 폭로전은 계속 이어졌다. 단, 보통 친하지 않다면 서로 나눌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제대로 날 잡은 박건우는 "수빈이는 우리만의 의리가 필요하다. 혼자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린 수빈이를 챙겨주는데 그때마다 욕을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말을 들은 정수빈은 "건우는 말수를 줄여야 한다. 옆에서 쉴 새 없이 재잘재잘한다.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많이 한다. 사연이 많다.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며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던 이들은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이내 차분한 분위기를 되찾는 듯 했다. 불과 30초 전과는 완전히 반전된 표정을 지으며 진지한 모습을 보였으나 역시나 오래 유지되진 못 했다.

정수빈은 "건우는 의리가 있다. 절대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는 말은 건우를 보고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장난기로 가득 찼던 박건우는 "수빈이는 정말 착하다. 순진한 건 아니지만(웃음) 악의가 있는 아이는 아니다"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허경민에 대해서는 박건우와 정수빈이 입을 맞췄다. 이들은 "경민이는 붙임성이 있다. 같이 있으면 항상 즐겁고 재밌다. 잘 삐쳐서 그렇지..." 박건우와 정수빈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왼쪽부터) 박건우와 정수빈이 서로의 장단점을 주고받고 있다. 자칫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말 속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사진=표권향 기자>

모였다하면 그 자체가 추억이 된다고 했다. 매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는 삼총사는 올해 첫 여행을 갈 계획이다. 개인훈련 스케줄이 있기에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양평 펜션을 생각하고 있다.

박건우는 "그동안 시간을 못 맞춰 여행을 가지 못 했는데 이번에는 셋이 편하게 쉬다 오려고 한다. 서로 놀리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웃던 박건우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정수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박건우는 "수빈이와 경민이가 부러웠다. 야구장에 갔을 때, 1군에 올라갔을 때도 경기에 많이 못 나갔다. 수빈이의 유니폼을 입은 많은 팬들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며 "물론 내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아주시는 팬들게 항상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올해 가을야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야구를 잘 했어도 당시만 기분이 좋다.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다음 경기와 2016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건우는 정수빈이 올해 하락세를 극복한 사례를 들었다. 박건우는 "수빈이는 마인드가 참 좋다. 지난 7월 타율 0.204를 기록했을 때도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속으로는 굉장히 괴로웠을 것이다. 수빈이는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변함없이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고 했다.

<그라운드에서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선수들이지만, 사복을 입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장난꾸러기로 돌변한다. (왼쪽부터) 박건우, 최재훈, 정수빈, 허경민. 사진=정수빈 제공>

2016시즌이 더욱 간절하다는 박건우는 "수빈이가 친구지만 어떻게 어깨를 나란히 하겠는가. 수준이 다르다. 올해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까불까불한 친구이긴 하지만 야구로써는 배울 점이 정말 많다"며 "평소 얌전하지만 결국 한 방이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수빈은 "경민이와 건우가 군대에 갔을 때 혼자 남아 외로웠다. 예전부터 셋이 주전으로서 그라운드에 함께 서는 날을 상상했었다. 그날이 거의 다 온 것 같다. 세 명이 팀의 주축선수로서 90년생 시대를 열고 싶다"며 "경기상황마다 도움이 되는 스나이퍼(Sniper, 저격수) 같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허경민은 "수빈이는 계속 경기에 뛰었지만 나와 건우는 아직 백업선수다. 꾸준히 라인업에 올라 규정타석을 채우고 싶다. 셋 다 성향이 비슷하긴 하지만 건우가 홈런을 많이 칠 것이다"며 "안타, 타점, 도루를 많이 기록해 매년 성적이 조금이나마 상승되도록 하겠다. 수치상 목표를 정하는 건 시기상 이른 것 같다. 전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며 팀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이 방향에 맞춰 준비하겠다"고 계획을 구상했다.

박건우와 정수빈, 허경민은 팀 내 '87동기' 김현수, 민병헌, 양의지(이상 28, 2006 입단)를 본받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팀의 주축선수들로서 멋있게 야구하는 모습이 부럽다. 우리도 멋지게 야구해서 두산에서 은퇴하고 싶다"며 꿈을 키우고 있다.

<정글이라고 불리는 야구판에서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만났다. 그러나 이들은 우정을 나누면서 각자 부족한 점을 채워가고 있다. (왼쪽부터) 박건우, 정수빈, 성영훈, 허경민은 주전 선수로서 그라운드에 설 날을 꿈꾸고 있다. 사진=정수빈 제공>

▲ 1boon, Talk Talk!

'크리스마스에는 '독거남_90트리오'에게도 축복을... 셋이 뭉칠 예정인 '잠실 아이돌'의 이상형'

정수빈 : 연상이며 키가 적당히 큰 여성. 참하게 생기고 이해를 많이 해주며 웃을 때 예쁜 사람.

박건우 : 누나보다는 동생. 키가 조금 작고 아담한 스타일. 애교가 많은 여성.

허경민 :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현명한 여성. 기가 세거나 애교가 많은 스타일은 별로. 일편단심인 것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