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임금의 얼굴 '용안'을 만나다
500년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후손들이 만든 드라마 속에 자주 불려나오는 인기 있는 임금이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태조를 연기하는 건 천호진이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정도전’에서는 유동근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나, 아들을 굶겨죽인 냉혈한이기도 했던 영조 역시 출연 빈도가 높은 군주다. 영화 ‘사도’의 송강호, 드라마 ‘비밀의 문’의 한석규가 영조를 연기했다. 사극 속 임금 하면 정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도에서 소지섭이었고, 영화 ‘역린’에서는 현빈이 정조였다.
임금을 연기한 배우들은 빼어나게 잘생겼거나, 지금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실제 임금의 모습을 어땠을까. 태조와 영조는 “털끝 하나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초상화 제작의 원칙이 가장 충실하게 반영된 어진이 있다. 정조의 경우에는 표준영정이 있긴 하지만 현대적 상상의 산물이어서 실제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어진이든 표준영정이든 임금의 얼굴에는 그들이 살아간 시대,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이 담기기 마련이다.
◆“노년의 품격, 군주의 위용을 더한 태조 어진”
국립고궁박물관이 내년 2월까지 개최하는 특별전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에 가면 장년과 노년의 태조 얼굴을 친견할 수 있다. 노년상은 1872년에, 장년상은 1900년에 원본을 모사한 것이다. 노년상은 얼굴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만 장년상은 1954년 화재로 거의 대부분이 훼손됐다. 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찍은 흑백사진을 토대로 훼손된 장년상을 복원했다.
복원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노년상은 위풍당당한 군주의 모습으로 노인임에도 눈에 정기가 가득차 있는데, 장년상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장년상과 노년상이 일견 인상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안면윤곽이나 이목구비가 너무나도 흡사하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다른 초상화의 장년상과 노년상은 윤곽선과 이목구비가 어느 정도 다르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노년상은 장년상을 근거로 노년의 품격과 군주로서의 위용을 좀 더 가미해 그려낸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영조의 초상화는 ‘연잉군’으로 불린 왕자 시절 모습을 담은 예진과 재위 20년인 1744년 그린 어진 두 점이 있다. 예진 속 연잉군은 눈매가 날카롭고 수척하다 싶을 정도로 호리호리해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이복형인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의 극심한 대립 속에 불안한 생활을 했던” 당시의 처지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 어진은 탁월하게 묘사된 수염이 인상적이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 초상화에서 수염은 대단히 중시돼 화사들은 수염을 얼굴의 연장으로 본 듯하다”고 설명했다. 사도에서 송강호가 흰수염을 귀밑까지 덥수룩하게 분장한 것은 이 어진의 묘사 그대로다.
전시회에는 태조, 영조의 어진 외에 철종과 후대에 추존된 원종(인조의 생부), 문조(헌종의 생부)의 어진, 사진까지 전하는 고종, 순종의 어진이 전시되어 있다. 철종·문조·익종 어진은 얼굴의 일부가 훼손되어 있다. 문조 어진은 왼쪽 귀부분만 남아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상상의 산물 표준영정…역사성도 엄격히 심사
표준영정은 1호의 주인공인 이순신부터 고려의 외교관 서희까지 94점이 지정돼 있다. 이 중 12점이 임금의 영정이다. 태조, 영조, 철종 등의 영정은 현전하는 어진을 모사한 것이지만 세종대왕, 광개토대왕, 김수로왕, 태조 왕건 등의 영정은 창작품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지정해 ‘표준’이라고 정해 놓은 그림을 작가의 상상에만 맡겨두지는 않는다. 얼굴은 물론 복식, 머리모양, 장식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
영정심의위원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영정 제작은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생김새나, 복식, 기물 등은 사료와 대조해 구체화한다”며 “얼굴은 후손을 만나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점을 추출해내 표현한다”고 말했다.
임금이 아니어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5만원권 주인공 신사임당의 영정은 제작과정에서 역사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다시 그리기도 했다. 신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 여성의 옷은 저고리춤이 길고 소맷자락이 널찍했다. 그러나 작가가 그린 영정은 짧은 저고리춤에 좁은 소맷자락으로 18세기 작품인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와 비슷한 모습이어서 다시 그려야 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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