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스포츠

[표권향의 여우사이] '勢玹'으로 다시 태어난 김영민이 살아가는 이유

입력 2015. 12. 08. 13:37 수정 2015. 12. 20. 11:02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가족, 숨 쉴 수 있는 원동력

넥센의 김영민(28)이 '세현'으로 개명했다. 권세 '세(勢)' 옥돌 '현(玹)'. 이름에 특별한 뜻을 담은 건 아니다. 완봉승을 이루는 등 '잘 나가던' 2015년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도중에 시즌아웃 됐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앞길을 막는 악의 무리들을 접근금지 시키기 위해, 또 박수칠 때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름을 바꿨다.

지난 9월 피로와 복통을 호소해 정밀검사를 받았던 김영민은 충격적인 진단을 받고 잠시 글러브를 내려놓았다. 의사로부터 "말이 백혈병이지 약물치료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들었기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별 다른 치료는 없었다. 충분한 휴식이 최고의 약이었던 김영민은 아내 김나나 씨의 내조를 받으며 힐링 타임(Healing Time)을 가졌다.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11월 마무리훈련에 합류했다. 정상훈련이 가능한 김영민은 현재 구단의 배려로 목동구장 내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개인훈련 중이다.

< 2012년 12월 김영민은 김나나 씨와 결혼했다. 지금은 2세 별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사진=김영민 제공 >

백혈병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겁이 났던 건 사실이다. 김영민은 "무서운 병이기에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풀시즌이 목표였는데 끝까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답답하고 막막할 때 아내가 '일단 치료를 받자'라며 도와줬기에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어떠한 보양식보다 아내가 챙겨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 아내의 음식은 보양식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최고다"라며 "잘못된 삶을 살았던 업보라고 생각한다. 벌 받는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 "사람들이 나로 인해 딸의 이름으로도 욕을 한다"며 가슴 아파한 김영민은 "내가 잘 해야한다. 아내와 딸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김영민이 숨을 쉬고 야구만 생각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아내 김나나 씨와 딸 별이 때문이다. 시즌 내내 짧은 머리를 고수했던 이유도 가족 때문이었다.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바로 "삭발"을 외치며 직접 머리카락을 잘랐다. 기자가 "못 생겼다. 머리빨로라도 살아야지. 그만 자르고 길러라"고 이야기해도 "잘라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야구만 하겠다'는 의지를 담았기 때문이었다.

< 김영민은 매일 아침 딸 별이의 등교를 책임지고 있다. 찬바람이 불 때 생각나는 한 광고가 생각난다. "우리 아빠 보기 보다 순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사진=김영민 제공 >

아내 김나나 씨와 딸 별이가 김영민이 세운 삶의 목표를 완성시켜줬다. 올해 가장 많은 경기(57경기)에 나가 4승5패8홀드 평균자책점 4.38을 기록했으며 9월 5일 생애 첫 완봉승을 이뤄냈다. 인간적으로는 이지풍 넥센 트레이닝 코치도 "영민이가 결혼을 한 뒤에 인간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인생이 바뀌었다. 거칠었던 말투도 자상하게 바뀌었고 걸음걸이나 손짓 하나하나가 부드러워졌다.

김영민은 매일 오전 9시 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간다. 가정통신문도 김영민이 직접 쓴다. 가정통신문에 'ㅋㅋㅋ'를 쓰는 부모는 김영민 밖에 없을 것이다. 거칠고 큰 손으로 꼼꼼하게 썼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냥 말을 안 하겠다.ㅋㅋㅋ

김영민은 "가족은 나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아내와 딸이 없으면 자포자기 했을 것이다. 아마 난 못 살았을 것이다"라며 "지금 내가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의 또 하나의 가족, 동료들을 잊을 수 없다.

다시 야구장에 돌아온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김영민은 "내가 다시 운동할 수 있구나란 생각에 설렜다. 운동을 하다 다친 것이 아니기에 구단에서도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첫 번째로 몸이 빨리 회복돼야 하기에 이지풍 코치님도 일단 쉬는데 집중하라고 말씀하셨다.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김영민의 아내 김나나 씨와 딸 별이는 아빠가 등판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야구장을 찾아 넥센을 응원했다. "팀이 있고 동료가 있기에 내 남편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김나나 씨다. 사진=김영민 제공 >

'사람이 아픈 다음에 성숙해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영민은 "완봉승을 이룬 날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해 있을 때 동료들이 하나같이 기뻐해줬었다.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고 그런 감정을 처음 받아봐 행복했다"며 9월의 '그날'을 기억했다.

이어 "소름이 돋았고 코끝이 찡했다. (이)택근이형이 가장 먼저 끌어 안아줬고 야수들도, 불펜에 있던 투수들도 뛰어와 축하해줬다. 야구하면서 처음 느껴본 기분이었다. '이게 팀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때문에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김영민은 "준플레이오프를 텔레비전으로 봤다. 투수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팀이 못 한 것이 아니다. 운이 안 따라줬을 뿐이다"라고 운을 뗐다.

김영민은 "선수 개개인이 이날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시즌 시작부터 '우리는 우승할 수 있다. 우승만 보고 가자'며 각오를 다졌었다. 팀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 시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아쉽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강해졌으니 내년을 준비할 수 있다. 김영민은 "시즌을 깔끔하게 끝내지 못해 죄송하다. 풀시즌을 뛰어본 적이 없어 아쉽다. 2016년에는 내 몸이 부서지도록 공을 던지겠다"고 약속했다.

< 김나나 씨는 김영민이 전지훈련을 떠날 때마다 공항을 찾는다. 남편이 타지에서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하기 위해서다. 사진=김영민 제공 >

▲ 12월 8일 결혼기념일에 '아내' 김나나 씨가 '남편' 김영민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 세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해마다 참 다사다난했던 것 같아. 내 이상형과는 정반대인 당신을 만나 불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 준비를 하던 중 열애설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모델과 운동선수의 만남에 색안경을 끼며 바라봤고 축복 대신 악플 세례를 받으며 시작되었던 결혼 생활.

프로야구 선수 최저 연봉을 받던 연애 초반 시절만 해도 '당신은 꿈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딱히 없어'라고 대답하던 여보를 보며 이 남자 내가 꼭 정상에 올라가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었어. 그랬던 당신이 지금은 묻지도 않았는데 '나 내년엔 꼭 10승할 거야', '나도 '꼭 해외 진출할 거야'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의 공수표를 마구마구 날려줄 때면 이미 다 이뤄진 것 마냥 정말 설레고 행복해.

야구의 룰도 전혀 몰랐던(실은 지금도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신혼시절, 1군 무대가 아직은 낯설었던 당신이 빈볼을 던질 때마다 상대 선수분께 정말 죄스러운 마음에 사과를 한 박스씩 보내드렸었는대 해가 지날수록 그런 횟수가 줄어드는 것만 봐도 당신이 해마다 점차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여보의 인생 경기. 2015년 9월 5일. 완봉승을 하던 그날. 나는 그동안의 설움과 그 생들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고 너무나도 행복하고 벅찬 마음에 며칠 동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어.

그런데 그런 기쁨도 잠시, 일주일 뒤 당신이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지. 우리 가족 모두 충격에 빠졌지만 나는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았어. 안 그래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당신 앞에서 나까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어. 담당 선생님께 따박따박 질문만 하던 내게 당신은 '어쩜 그리 독하냐'며 섭섭함을 표했지만 아마 보름 동안 밤마다 당신 몰래 숨 죽이며 혼자 우라 지쳐 잠들었던 것 같아. 여보가 아픈 게 다 내 탓인 것 같고 가엾은 우리 신랑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어.

다행스럽게도 혈액 수치는 점점 정상을 되찾아 가고 있고 신앙생활과 운동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사는 당신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지금도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그래, 백혈병 따위 우리 앞에 펼쳐진 긴 인생길에 사소한 해프닝일 뿐, 당신이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지. 풍족하진 못해도 가진 게 너무 많은 우리 가족 앞에는 이렇게 감사의 제목들이 넘쳐나.

연애 때부터 나는 항상 당신에게 '돈이야 내가 벌면 되니까 성적에 연연해 하지 말고 야구는 즐기면서 하면 된다'고 그랬어.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마운드 위에 서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줘. 그래서 우리 공주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빠가, 투병 중인 백혈병 환우 분들에게는 희망의 메신저가 되어주길 바라. 항상 기회 주시는 고마운 구단 관계자 분들과 팬 분들게 보답하는 길은 오직 좋은 성적 뿐이야.

혈액암을 이겨낸 MLB 레드 삭스팀의 좌완 투수 존 레스터처럼 당신도 KBO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그런 멋진 투수로 성장하길 매일 기도할게. 힘내요. 내 남자♡

당신의 영원한 팬 *NANA*

PS. 당신을 선택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김영민 선수가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성장할 것이라는 나의 확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 김영민과 김나나 씨는 결혼생활도 연애할 때의 마음으로 이어가고 있다. 사진=김영민 제공 >

▲ 에피소드..

2015년 1월 1일. 날씨도 추웠지만 가슴도 시리고 외로웠던 날이다. 거실에 앉아 도란도란 가족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 죽여 울고 있을 때 김영민과 김나나 씨의 전화를 받았다. 집 근처이니 저녁을 먹자고..

당시 기자는 직업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쪽팔리니까 어디 가서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 서럽고 황망했었다. 그때 김영민, 김나나 씨 부부가 내 옆에 있었다.

이들은 평소와 같았다. 김치찌개와 부침개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일상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고민을 털어 놓으니 "괜찮다. 잠시 쉬었다 가도 된다. 지금까지 달려왔으니 숨 고르고 가자. 수고 많았다"라고 말했다.

그들과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 차갑게 얼어있었던 기자의 심장이 따뜻해졌었다.

< 저작권자(c)다음스포츠.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재
    더보기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