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스토리] 白壽 '해군의 어머니'는 늙지않는다
초대 해참총장 故손원일 제독의 부인 홍은혜 여사
‘바다로 가자’ 등 해군 군가 다수 작곡·삯바느질로 전투함 도입 기여
영원한 사랑·존경의 대상으로
“우리들은 이 바다 위해 이 몸과 맘을 다 바쳤나니,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
해군 최초의 군가이자 지금도 장병들이 즐겨 부르는 ‘바다로 가자’의 한 구절이다.
대한민국 해군과 함께 7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 ‘바다로 가자’는 초대 해군참모총장 고(故) 손원일 제독이 노랫말을 짓고 부인 홍은혜(99) 여사가 곡을 붙였다.
홍 여사는 ‘바다로 가자’를 비롯해 ‘해군사관학교 교가’와 ‘해방행진곡’, ‘대한의 아들’ 등 수많은 해군 군가를 작곡했다. 맨땅에서 시작한 창군기 해군 부인들과 함께 삯바느질로 성금을 마련, 우리 해군의 첫 전투함 도입의 길을 여는 등 해군 창설에 공헌해 지금도 ‘해군의 어머니’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11일 해군이 주관한 호국음악회에서 99세 백수(白壽) 생일상을 받은 홍 여사는 속눈썹까지 고운 흰빛으로 새었지만 해군 창설 과정과 손 제독과의 일화를 전할 때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꼽아낼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1917년 마산에서 태어나 1940년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자 전문학교 음악과를 졸업한 당대 대표적인 신여성이던 홍 여사는 일제 강점기와 8ㆍ15 광복, 6ㆍ25 전쟁, 미 군정, 그리고 이승만ㆍ박정희 정부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손원일 제독과 운명적인 사랑=홍 여사의 인생에서 남편 손원일 제독의 얘기를 빼놓을 순 없다.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손 제독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던 손 제독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귀국해 “이 나라 해양과 국토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사람들을 규합, 해군 창설에 나선 인물이다.
손 제독은 모든 것이 부족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동분서주하며 선비 ‘사’(士)가 겹치는 1945년 11(十一)월 11일 11시에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가 된 ‘해방병단’을 창설, 초대 단장에 취임했다. 오늘날 해군 창설기념일(11월 11일)의 기원이다.
손 제독은 이후 인재양성을 기치로 해군사관학교의 전신 해군병학교를 설립하고 1948년 8월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6ㆍ25 전쟁 때는 대한해협 해전과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등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했다.
손 제독이 우리 군에 미친 영향은 해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1953년 8월 제5대 국방부장관에 취임해 국군의 날과 현충일 제정, 국립현충원과 국방대학교 건립을 주도하며 대한민국 군의 기틀을 다졌다.
손 제독의 이 같은 업적 뒤에는 홍 여사의 내조가 있었다. 마산에서 태어나 바다를 좋아했던 홍 여사는 “내가 훗날 바다 사나이 손 제독을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같다”며 “둘 사이에 바다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손 제독을 회고할 때 홍 여사는 백수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수줍은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홍 여사는 사촌언니의 소개로 손 제독을 만났다고 했다.
“이화여대 1학년 때였어. 어느 날 정동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데, 훤칠하게 잘 생긴 청년이 뚜벅뚜벅 구두소리를 내며 들어와. 손 제독이었어. 처음 보고 나도 마음에 들었지. 나중에 손 제독에게 그랬어. 혼인은 나중이라도 할 수 있지만 공부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장가 오고 싶으면 졸업 때까지 3년을 기다리라고…. 손 제독도 ‘대장부가 3년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 그러더군. 3년 뒤 난 오전에 졸업식을 하고 오후에 바로 결혼식을 올렸어”
그 후 두 사람은 해군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자식 같은 해군을 낳고 키웠다.
▶마음의 안식처이자 후원자인 ‘해군의 어머니’=대한민국 해군의 70년 역사와 함께 한 홍 여사가 ‘해군의 어머니’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건 손 제독의 부인이라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홍 여사는 해군 군적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해군발전에 끼친 공헌은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우선 손꼽을 수 있는 것이 음악 전공을 살린 군가 작곡이다. 창군기 해군은 변변한 군가 하나 없이 일본 노래에 한국말을 얹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홍 여사는 어느 날 군인들이 행진하는 노랫소리를 듣다가 손 제독에게 “여보, 저 노래 좀 들어보세요. 일본 군가에 한국 가사를 붙였네요. 당신이 쓰는 가사에 제가 곡을 붙여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손 제독은 “그거 좋은 생각이오. 한번 만들어 봅시다”고 화답했고, 해군 최초의 군가 ‘바다로 가자’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홍 여사는 배 한 척 없는 현실에서 전투함 마련을 위해 다른 해군 부인들과 함께 삯바느질과 모금운동을 벌여 6만달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에 감복한 이승만 대통령이 6만달러를 더해 12만달러로 해군 첫 전투함 ‘백두산함’ 등 4척의 배를 도입할 수 있었다.
1950년 4월 10일 실전 배치된 백두산함은 6ㆍ25 전쟁 이튿날인 6월 26일 대한해협을 통해 부산으로 침투하던 북한군 600여명을 실은 수송선을 격침시킴으로써 후방을 지켜내는 전과를 올렸다.
홍 여사가 6ㆍ25 전쟁 기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삯바느질을 해가며 후방을 지원한 건 해군에 잘 알려져 있는 일화 중 하나다.
“이것저것 모자라지만 군복이라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부산에는 공장 지을 땅이 없었어. 그래서 헌 배 네 척을 가져다 붙여서 거기서 해군 부인들하고 안 입는 작업복 같은 거 얻어서 바느질해 보내고 했지”
해군부인회를 조직해 전쟁 고아들, 해군병원 환자와 상이군인들을 위해 빨래해주고, 편지 써주고, 밥을 먹여주고, 대소변 보는 것까지 돌보는 일도 홍 여사의 몫이었다. 해군이 붙여준 ‘해군의 어머니’라는 별칭에 대해 홍 여사는 “고맙지”라면서 “불쌍하니깐 붙여준 거지”라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마산에 내려와 연설할 때 자신이 남자들이 입던 저고리에 다 떨어진 고무신을 입고 나타난 걸 보고 한참을 울고 갔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홍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해군을 많이 사랑했어. 말할 때마다 꼭 육ㆍ해ㆍ공이 아니라 해ㆍ륙ㆍ공군이라고 했어”라고 전했다.
▶“사랑하면서, 기도하면서 살아야지”=손 제독이 1957년 서독 공사에 이어 1958년 첫 서독 대사로 독일에 부임한 이후에도 홍 여사의 내조는 빛을 발했다.
유럽에서는 생소한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하던 당시 홍 여사는 대사 부인으로서 ‘한국의 밤’(Korean Night) 행사를 직접 기획해 무대 위에 올려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유럽에 심어줬다. 한국의 밤은 현지에서 크게 화제가 되면서 현지언론의 인터뷰가 잇따랐다고 한다. 홍 여사는 그 때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대사관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 사려고 하는데 어디서 왔냐고 묻고, 코리아라고 대답하면 ‘너희들 다 거지 아니냐’며 물건도 안 팔았어. 그래서 한국의 밤을 준비해 뮤지컬 식으로 한국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모습 같은 걸 보여줬더니 한국에 대한 인상이 조금 바뀌더라고. 손 제독이 원체 잘 생겼고 나도 그 땐 미인이었으니깐(웃음)”
홍 여사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언급한 말은 ‘사랑’과 ‘아픔’이었다. ‘아픔’은 젊은 시절 가진 것 없는 형편에서도 나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모든 열정을 바친 손 제독과 함께 하느라,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챙기지 못한 데서 오는 회한이었다. 홍 여사는 자녀 이야기에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 생각하면 눈물만 나지. 죽은 딸이 가끔 꿈에 나타나 ‘나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엄마한테서 나고 싶어, 엄마 사랑 더 받고 싶어’라고 그러는데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야. 그래도 불쌍한 해군들 보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라고 기도하며 살았어. 눈물로 기도하면서,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았어”
홍 여사는 지금도 기도하면서,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오래 살게 해주셨어. 나이 먹고 느끼는 게 많아. 아무 것도 모르던 여섯 살 때 동네 할머니를 따라 교회 다니면서 ‘하나님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나라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나라가 독립 되고 잘 살게 됐으니 기도에 응답해주신 거지”
홍 여사의 해군사랑도 여전하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들을 지켜보고 장래를 염려하는 많은 해군 선배들이 계심을 기억하시고, 인내와 노력으로 다듬은 몸 함부로 천하게 쓰지 마시고, 고매한 인격의 전통을 이어받아 해군의 뿌리 되게 하시고, 멋있고 신사다운 훌륭한 지도자들이 다 되어 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 올립니다”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홍 여사는 “당신들도 100살까지 살아보소”라는 덕담과 함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리=신대원 기자/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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