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 농업인 행복찾기>토속작물 된 '히카마'.. 고춧가루에 무치니 '딱 총각김치'


대전 무수동 무수천하마을
맑은 하늘 아래 황금빛 들녘이 물결처럼 출렁였다. 노랗게 익은 벼들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릴 때마다 빛을 냈다. 울긋불긋 물든 가을 산 단풍과 잘 익은 벼가 어우러지면서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지난 10월 28일 찾은 대전 중구 무수동 무수천하마을의 가을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가을바람에 벼들이 넘실거리며 보는 이의 마음도 풍요롭게 했다.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는 순간 들녘 한편을 가득 채우는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정 도령의 물 명주 수건은 처녀 손길에 놀아나고~. 유명 갑사 수건 댕기는 총각 손길에 때 묻는다~. 이러쿵, 저러쿵 절씨구. 저러쿵 이러쿵 좋을씨구!”
경남 밀양 일대에서 전승되는 민요로 중부 지방에서도 부르는 ‘는실·댕기타령’이다. 구슬구슬 넘어가는 민요 가락에 황금빛 벼들이 박자를 맞추듯 굽이쳤다.
평소라면 먹거리 준비로 번잡했을 ‘식(食)사랑 농(農)사랑’ 행사. 그러나 이날만은 색달랐다. 가을을 맞아 우리 음식에 여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음식은 언제나처럼 무수천하마을 주민들이 인천시와 의왕시에서 마을을 찾은 도시민 300여 명과 함께 준비했고 여흥은 는실·댕기타령에 일가견이 있는 최윤영(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씨와 경상도 민요보존회가 마련했다.
최 씨는 우리 민요계에서는 유명한 여성 가수다. 미모도 미모지만 경상도 민요의 구구절절한 맛을 잘 살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흥을 돋은 것은 민요뿐이 아니다. 민요 공연에 이어 재즈 연주까지 곁들여 한 마당 마을 잔치로 진행됐다. 한마디로 한해의 시름을 모두 털어버리는 자리였다. 행사 취재를 위해 오전 8시 서울을 떠나 대전까지 3시간가량 급하게 달려온 마음도 말끔히 씻겼다. 마침 마을 이름도 없을 무(無)에 근심 수(愁), 근심이 없다는 무수마을이다.
마을은 대전이 숨겨놓은 보물이다. 현대식 건물 가득한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5분도 안 돼 금강 줄기가 나오고 강변 농촌 마을이 나온다. ‘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산 넘어 산, 물 건너 물, 이제 길이 없나 했더니, 버드나무 무성하고 꽃 예쁜 마을이 또 있네)의 심정이랄까. 도심이다 싶었는데 어느새 마을이다.
본래 11시 30분 도착하기로 한 도시민들이 마을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다 돼서였다. 서둘러 주민들이 마련한 점심을 마친 도시민들은 마을 회관 앞 들녘에 마련된 공연을 보러 삼삼오오 모여든 것은 1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회관은 ‘ㄷ’ 자 모양으로 들을 마주하고 있었고 공연은 들에서 회관을 마주 보고 진행됐다.
“이에 에헤야 데헤야 ~ 는실 는실.”
들으면 들을수록 참 묘한 게 우리 가락이다. 느리면 구슬프고, 빠르면 흥이 난다. “이 골 저 골 흐르는 물은 파도소리가 처량해라~.” 느린 장구 타령에 서글픈 듯 시작한 댕기타령은 빨라지면서 흥을 돋운다. 여성 고음으로 후렴구 “는실 는실”을 부를 때면 묘한 성조까지 느껴진다.
댕기타령이 끝나고 ‘뱃노래’, ‘애기 재우는 소리’, ‘동래 아리랑’이 불렸다. 동래 아리랑은 최근 가사가 복원된 우리의 구전 민요다. 한 곡 한 곡 저 가슴 바닥 슬픔부터 어깨춤이 절로 나는 흥까지 모든 감정의 층위를 긁어낸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더니, ‘곡토(曲土·노래와 땅)불이(不二)’다. 노래도, 벼도, 마음도 굽이쳤다.
“잘한다! 잘한다!”
관중의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점심에 걸친 막걸리 한 잔이 감정을 더 잘 녹아들게 했다. 한바탕 감정의 풍파를 은은한 재즈 연주가 정리를 했다. ‘앙코르’까지 이어진 공연이 끝나도 도시민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식사랑 농사랑의 본래 음식 체험 행사는 2시 30분을 훌쩍 넘겨 시작됐다.
무수천하마을에서 준비하는 식재료는 세칭 멕시코 감자로 불리는 ‘히카마’였다. 본래 남미에서 나오는 것으로 감자처럼 자라지만 맛은 무와 배처럼 달콤하고 바삭거린다. 고혈압, 당뇨에 좋은 음식으로 2011년 미국 허핑턴포스트가 선정한 세계 20대 건강식품으로 꼽았다. 기후 변화로 우리 농촌에서 잘 자란다. 멕시코 감자도 이 땅에서 자라 우리 음식이 됐다.
요리는 히카마 무침. 우리 주먹 감자보다 10배는 큰 멕시코 감자를 칼로 다듬어 사각 모양을 만들고 우리 고춧가루에 버무리니 모양은 영락없이 총각김치다.
“히카마를 칼로 손질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다쳐요!”
바삭거려 잘 썰리는 멕시코 감자를 칼로 다룰 때 주의하라고 주민들이 연신 주의를 준다. 멕시코 감자의 하얀 속살이 윤기를 내며 반짝인다. 고춧가루로 옷을 입히니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간다.
“아 고것 맛있게 생겼네!” 오늘 행사를 위해 학교도 빠지고 엄마와 함께 온 신연주(여·9) 양이 젓가락을 놀리며 말한다.
“음 신기하네요. 무김치의 새로운 탄생이네요!” 공연을 마친 최윤영 씨가 바라보며 역시 예술인다운 평을 한다. “자 한번 맛보세요.” 버무리기를 마친 한 도시 아주머니가 멕시코 감자 김치 한 점을 최 씨에게 권한다. 최 씨가 잠시 눈을 감고 입을 오물거리더니 엄지손가락을 번쩍 쳐든다. “아이요, 술술 넘어가는 게 바로 우리 타령, 그 맛이네!!”
이날 식사랑 농사랑 행사는 이어진 고구마 캐기 체험까지 오후 4시가 넘어서 끝났다. 아쉽게도 멕시코 감자를 다듬던 한 아주머니가 손을 다치는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도시민들은 우리 가락의 소중함이 새로워진 때문일까? 떠나야 하는 순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전 = 박선호 기자 shp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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