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화 찬성 여론' 조작 의혹]인쇄소 측 "자정까지 교육부 보내야..오전에 급한 주문받아"

송현숙·정원식 기자 2015. 11.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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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자로부터 파일 받아 밤 9시 넘어까지 4만부 출력작업"계약서 없이 현금 결제하기로..대규모 조작 정황 드러나교육부·새누리, 수상한 서류 준 '올역사' 배후·실체 쉬쉬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교육부에 전달된 찬성의견서·서명지의 ‘조작·동원’ 의혹이 베일을 벗고 있다. 이 작업에 관여한 인쇄업체를 통해 국정화 찬성 서류가 인쇄·배달된 작업의 실체와 주도 단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박스들을 전달받은 교육부나, 박스 전달 단체와 함께 국정화 지지 세미나도 연 새누리당은 쉬쉬하고 있다.

■베일 벗는 찬성 의견서

출력을 맡은 인쇄소가 모처로부터 전화 주문을 받은 것은 행정예고 마감일인 2일 오전이었다. 인쇄소 관계자는 “오늘 12시 전까지 세종시에 꼭 도착해야 한다. 트럭까지 수배해 배달도 담당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 인쇄소에서는 그날 작업 가능한 4만부 정도를 출력했고, 이 업소 외에도 대여섯 곳의 인쇄소에서 당일 작업한 물량들이 택배 차와 오토바이 등으로 속속 도착했다. 파일들을 여러 건으로 나눠 출력을 부탁했으며, 마지막 파일을 오후 7시 정도에 넘겨받아 오후 9시까지 출력 작업을 하고, 불러놓은 트럭에 실어 교육부에 전달했다. 이 관계자는 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고, 돈은 나중에 현금으로 준다는 얘기만 듣고 작업을 진행했다고 했다. 국정화 여론수렴 마지막 날 급히 찬성 서류 작업을 진행한 정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의원 보좌관들은 국정화 접수 의견들을 열람한 결과 “상당수 찬성의견서가 제목이나 형식, 찬성이유가 비슷하고, 분량도 한 명당 9~10장으로 같아 여론조작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보좌관들은 특히 일반인이나 단체가 보낸 10~62번 박스엔 새 종이나 다름없는 A4용지들이 찬성의견서 인쇄물로 채워져 있어 한곳에서 이름만 바꿔 출력해 2일 밤 트럭으로 실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견서를 보낸 적이 없는 사람의 찬성의견서도 발견돼 명의도용 의혹도 제기됐다. 서명지의 경우도 한 사람의 필체로 10여명씩 이름·주소·전화번호가 써 있거나 이름은 다른데 10여명의 주소가 같은 곳으로 되어 있는 것, 사진으로 찍어보내거나 컴퓨터로 작업한 찬성 서명지도 확인돼 대규모 조작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세미나 자료집에 주관 단체로 이름을 올린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올역사)’(위 사진). 국정화 의견수렴 마감일인 지난 2일 교육부에 제출된 찬성 의견서 박스들 표면에 ‘올역사’라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덮기 급급한 정부·여당

교육부에 의문의 박스를 전달한 ‘올역사’가 마감 당일 파일을 5~6개 인쇄소에 쪼개 맡겨 대량 인쇄한 정황까지 꼬리가 밟혔지만, 정체불명의 이 단체가 어떤 파일을 어떻게 작업해 맡겼는지, 인쇄·배달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는지 등은 모두 의혹에 싸여 있다.

올역사와 함께 국정화 지지 세미나를 연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 측은 지난 17일 “이 단체는 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하시는 단체로 친분이 있던 양 교수 부탁으로 장소만 빌려줘 우리가 주최로 들어간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강 의원 측은 ‘올역사’ 단체는 모른다면서도 올역사의 ‘국정화 시리즈’ 세미나를 열 계획이 있는지 묻자 “양 교수 요청이 있으면 협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의혹이 커진 찬반의견서·서명지들을 함께 열람하자는 야당 측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16일 열린 국회 예결소위에서 여당 의원들은 야당의 열람 요구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이유로 반대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 2일 오후 11시쯤 정부세종청사에 수십 개의 박스가 실린 트럭이 도착하기 전 교육부가 문자로 ‘국정화 찬성 20만부가 온다’며 직원들에게 분류 작업 동원령(경향신문 11월16일자 9면 보도)을 내린 데 대해 “2일 밤 트럭 기사로부터 교육부에 배달 가는 길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올역사’ 스티커가 붙은 박스 50여개였다”며 “문자 발송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략의 찬성 숫자까지 미리 알고 새벽까지 분류 작업을 시킨 교육부가 트럭 기사 전화를 받고 움직였다는 데 대해서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송현숙·정원식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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