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인생이 순탄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원하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면서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한 걸음씩 성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 누가 '진짜' 내 사람인지, 아니면 내 사람인 '척'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1995년 충청남도 온양. 10살 홍성용(29, kt)은 전교에서 가장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홍성용은 육상, 수영,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그런데 홍성용이 야구를 선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홍성용이 제 4의 인생을 시작했다. 야구인생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다. 그러나 홍성용은 극한 상황에서도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사진=표권향 기자>
홍성용이 재학 중이던 온양온천초 야구부는 발이 빠른 그를 영입하기 위해 특급(?)작전을 펼쳤다. 축구를 가장 좋아했던 홍성용에게 "일주일에 두 번 축구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던 것. 이 달콤한 유혹은 야구에 '야'자도 몰랐던 홍성용에게서 긍정의 끄덕임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야구부 가입 한 달 만에 거짓말이었음 깨달았다.
"당했다"란 생각이 들었을 땐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격했던 그의 아버지가 단호하게 "야구를 계속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얌전히 야구만 했다고 한다.
오른손잡이면서도 좌완 글러브를 착용했던 '골통(본인의 표현이다)'이었지만 하나에 집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홍성용이었다. '축구쟁이'였던 홍성용은 꾸준한 훈련 덕에 온양중학교 시절 "야구를 참 예쁘게 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체구가 작았지만 타자들과의 싸움에서 뒤지지 않았다.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후 체인지업을 장착한 홍성용은 유일한 왼손 투수로서 강정호(28,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박병호(29, 넥센), 정의윤(29)·최정(28, 이상 SK) 등과 함께 2004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고 한다. 홍성용은 두 번째 눈물을 야구 때문에 흘렸었다. 사진=표권향 기자>
한때 주목을 받았던 홍성용이었지만, 그에게 프로의 생활은 지옥과도 같았다. 아니, 작은 추억조차 남기지 못했을 만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홍성용은 2005년 신인 2차 드래프트 5순위(전체 35번)로 LG 유니폼을 입었고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나 밋밋한 구질과 오르지 않는 구속 탓에 기량부족이라는 이유로 방출됐다.
태어나서 그렇게 울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홍성용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2시간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연락도 드리지 못 했다. 소식을 들은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왔지만 어느 누구와도 통화하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라고 당시 처참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홍성용이다. 홍성용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내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3개월 동안 야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끊었었다"라고 말하며 한 숨을 쉬었다.
홍성용과 연락두절이 된 그의 부모님은 고향인 온양에서부터 그가 있는 구리까지 찾아왔다. "제가 극단적인 생각을 할까봐 걱정하셨던 것 같다. 제게 "괜찮다. 힘내"라고 위로해주셨다"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다신 야구장 쪽을 쳐다보기도 싫었던 홍성용이었는데 왜 그의 뇌리에는 '야구'만이 박혀서 잊혀 지지 않았었던 것일까.
때마침 지방의 한 구단에서 그에게 입단 테스트를 제안했다. 그러나 홍성용은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테스트를 받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자신감도 떨어져있었기에 정중하게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홍성용이 일본에 도착했지만 한국 프로야구를 잊을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이겨내야만 했다. 사진=표권향 기자>
대신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했다. 홍성용은 동갑내기 박가람 씨를 따라 일본의 독립리그에 도전했다. 테스트를 받는 구단마다 족족 합격했다. "한국 프로야구 2군보다 수준이 낮지만 큰 차이를 느끼지 못 했다"는 홍성용은 좋은 조건으로 입단에 성공하면서 추락했던 자존감을 되찾았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홍성용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독립리그 3년 동안 월급과 인센티브를 받으며 원활하게 야구를 하는가 싶었다. 4년째 되던 해 팀을 지원해주던 스폰서가 손을 떼면서 야구만 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실정까지 닥쳤기에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극한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한국으로 돌아갈 면목도 없었다. 홍성용은 "우리 집에서 희망은 나 하나"였다며 "자식으로서 도리가 아니었다. 돌아가봐야 짐만 될 것 같았다. 일 년만 더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버텼다"라고 말했다.
2013년 그가 27세가 되던 해, 결국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었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던 홍성용은 야구에 대한 절실함과 돈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독기를 품은 그에게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홍성용은 청소년국가대표 동기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했다. 홍성용은 신인일 때부터 존경했던 봉중근(35, LG)과 작은 이승호(34, NC)의 투구폼 뿐 아니라 인성까지도 본받으려 노력했다. 홍성용은 자다가도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쉐도우 피칭을 했다.
2013년 홍성용은 NC 입단 테스트를 위해 마산으로 내려가던 길에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오시라"고 말했다. 그만큼 절실했고 자신과도 끝판승부를 보기 위해 이를 악물었었다.
<kt가 2016시즌 투수조 조장으로 홍성용을 꼽았다. 2015년 중반 팀에 합류한 홍성용이지만, 그의 성실함과 강인함이 나이차가 많은 kt투수들의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사진=표권향 기자>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홍성용의 투구를 본 NC는 테스트를 마치자마자 "바로 계약하자"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날 긴장하긴 했지만 140km대 직구가 깔끔하게 뿌려져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프로선수로서의 삶. 홍성용은 2군에 머문 시간이 길었지만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점점 기량을 회복하던 중이었던 홍성용은 NC를 거쳐 kt와 또 다른 인연을 맺었다.
다만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해줬던 NC에게 보답하지 못한 미안함은 평생 짊어지겠다고 다짐했다. 홍성용은 "배석현 단장님께서 직접 전화하셨었다. NC에게 정말 죄송하다. 나를 좋게 봐줘서 뽑아줬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며 "인생을 살면서 기회가 많이 오지 않는다. 대신 kt에 와서 잘 하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인터뷰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홍성용은 "2015년은 행복하게 지나갔다"라며 처음으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직접 보여주는 듯한 승자의 표정이었다.
홍성용은 "지금 나는 누구에게 대우를 받을 선수가 아니다. 아직도 내가 가야할 길이 멀었다. 아직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마운드 위에서 혼을 담고 던질 것이다. 진다는 생각이나 상대 타자가 무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딪힐 것이며 포수의 미트만 보고 던질 것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 에피소드...
"일본 독립리그 시절, 한국 프로야구를 볼 때마다 선수들이 부러웠다. 일본에서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선수들이 부러워 미련이 남았었다.
야구를 포기하지 못해 내 바지 끄덩이를 잡고 통곡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차명석 코치님(당시 LG 투수코치, 現 kt 육성총괄코치)과 나도현 팀장님(당시 LG 운영팀장, 現 kt 운영팀장)께 연락이 왔었다. LG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으라며 기회를 주셨지만 야구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때이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시 강속구 투수를 선호할 때였고 자칫 나를 불러준 이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kt에서 다시 만났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다. 차명석 코치님은 여전히 좋은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주시고 계시며 나도현 팀장님은 내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
성실하게, 절실하게, 감사함을 잊지 말고 야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