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국정교과서는 단수 낮은 기획"

권경성 입력 2015. 11. 16.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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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중국일기' 출간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통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도올 김용옥은 "역사는 시대의 공론이, 대중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그 가능성과 분위기를 차단하는 것이 곧 독재"라고 강조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도올 김용옥(67)이 신간 ‘도올의 중국일기’를 내놨다. 철학자와 한의학자, 극작가, 기자 등으로 도전을 거듭한 이력에다 도발적인 강연과 거침없는 화법으로 늘 이목을 끌어온 그다. 어쩐지 소식이 뜸하다 했더니 지난해 1년 간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延邊)조선족 자치주 소재 옌볜대에서 교수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한국을 떠나 있었다. 수업은 중국어로 이뤄졌다. 틈나는 대로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 사색했고 귀국해선 그 기록을 차곡차곡 다듬었다. 1~3권이 출간됐고 올해 안에 4~6권을 낸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통나무 출판사 사옥에서 만난 그는 “나라를 몇 개 기업이 가지고 놀고 정권은 저열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좌우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반드시 우리 역사가 바른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특유의 호통과 독설로 대변되는 그가 3시간여의 인터뷰 끝에 피력한 건 뜻밖에 이런 진보와 인간에 대한 강한 낙관이었다.

- 집필 동기는.

“중국 체류 중 고대사 터전인 동북을 샅샅이 뒤지며 충격 받았다. 우리가 고구려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신화로만 오해해 왔다. 신화적 표현에 숨은 광대한 역사적 사실을 더 많이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마침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진 지 1,600년이 되는 해였고,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삼국사기를 1만번 읽는 것보다 환도산성에 한 번 서보는 게 우리 역사의 본질을 깨닫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신 지 꼭 100년 만이었다.”

- 사관이 어떻게 왜곡됐나.

“현 중국 일대가 중원, 황허(黃河) 문명권이고 한국 땅은 동북쪽 변방이라는 인식들이 강하지만 비옥한 땅은 모두 중국 대흥안령 이남이다. 광개토대왕의 관심사도 여타 중원 지역이 아니라 동부여와 백제, 신라였다. 역사는 이매지네이션(상상) 아니냐. 고구려인들은 만주와 한반도를 잇는 남북축을 문명의 주축으로 봤을 거라는 가설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를 토대로 제시한 게 ‘고구려 패러다임’ 지도다. 어떻게 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 노래를 불렀다 하면 전 세계에 유행시키는 싸이 같은 가수가 나오고 글로벌 경영을 하는 기업이 배출되느냐 하는 의문의 답이 여기 있다.”

통용 지도를 뒤집은 고구려패러다임 지도를 책에 실은 김용옥은 "현재 우리가 아는 태평양중심의 지도는 세상을 도착적으로 보게 강요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고대사 문제에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과 민족주의ㆍ국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리는데.

“영토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일본인들은 그런 면에서 촌스럽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관심사가 영토에 머문다. 우리 역사의 통사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고려 중기 때 이미 역사를 바르게 볼 능력이 없는 자들이 우리 사료 대신 사마광의 주관이 많이 반영된 ‘자치통감’을 토대로 삼으면서 현지사를 제대로 못 쓰게 됐고, 이후 의존적이고 사대하고 분열하는 민족으로 우리를 폄훼하려는 일제의 목적의식에 의해 다시 고대사가 왜곡됐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이 정당하게 논의되지 않은 건 일제 식민사관 탓이나 빌미는 조선조의 사대주의 사관이 제공했다. 또 현대에 와서는 고대사가 우익이나 민족종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뤄지며 젊은 연구자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본래 역사학자가 아닌데.

“젊은 날 우리 역사에 눈을 떴다. 그런데 공부하려고 보니 자료의 99% 이상이 한문이었다. 한문부터 극복해야겠단 생각에 중국 철학을 택한 거다. 40년 간 중국학을 했고 이번 책이 국학으로 나아가는 내 인생의 전환 포인트다.”

-자긍심을 갖기 위해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정확한 학문에는 약속이 있다. 해석도 그런 기본 논리 위에서 해야 한다. 역사에서 말하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기술된 팩트다. 1961년에 몇몇 군인이 한강을 건넜다는 것은 팩트다. 그러나 그건 역사가 안 된다. 그들이 한강을 건너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우리가 해석해야 비로소 역사다. 기존 권력 내에서 불법적으로 권력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이 쿠데타이고 혁명은 힘없는 민중이 뒤엎을 때 쓰는 말이다. 즉 5ㆍ16은 학문적으로 혁명이라 부를 수 없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논란이다.

“검정 교과서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쓰였다. 자기들이 도장 찍어 놓고 ‘90%가 새빨갛다’니. 자기 부정이다. 되지 않는 기획이다. 너무 단수가 낮다. 의도대로 안 된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예전처럼 학생들이 순진하게 안 믿는다. 그런 수준 낮은 국민이 아니다. 지금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국정화에 반대하고 지속적으로 역사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다. 10년 만 문제를 끌고 가면 검인정을 탈피해 자유화로 가게 될 거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환멸은 컸지만 표면적으로 변한 건 없었다.

“사상가들이 할 역할이 크다. 세월호는 국민 전체가 목도한 처참한 사태다. 6ㆍ25전쟁을 텔레비전으로 쳐다본 셈이라 생각한다. 그 기억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무의식에 깊게 남는다. 이번 역사 논쟁도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역사가 본질적인 일종의 진보를 이루게 될 거라 믿는다. 사상가들은 한 순간도 낙관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마치 우리나라를 몇 개 기업이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이고 정권은 저열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지만, 반드시 우리 역사가 바른 길을 찾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다. 지식인들의 종교는 역사에 대한 믿음이다.”

-낙관에 근거가 있다면.

“역사란 건 항상 제자리로 돌아간다. 3ㆍ1 독립항쟁부터 4ㆍ19 혁명, 6ㆍ10 항쟁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학생 세력이 주동이 돼 투쟁해온 역사적 사례가 없다. 우리가 유일하다. 거시적으로 우리 역사가 잘못 흘러오지 않았다. 대학에서 강의해 보면 사회의식 없는 젊은이가 없다. 단지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이런 위대한 국민들을 이렇게 유치한 방식으로 끌고 가려 한다는 것 자체가 여야 모두 반성해야 할 문제다.”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암울하다.

“항상 경제나 민생 문제를 핑계 삼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거시적 방향의 문화 자체를 말살시키는 방향으로 (근현대) 우리 역사는 진행됐다. 젊은이들이 헬조선 상태로 느끼게끔 해놓고 우린 이득만 보면 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망한다. 제일 먼저 정신차려야 할 곳이 기업이다. 발등에 떨어진 문제가 산적해 있다. 헬조선 담론은 이런 위기에 대한 말초적 느낌이다. 훨씬 더 구조적으로 잘못돼 있는 거다. 권력자와 여당이 나서서 이걸 빨리 개선해야 하는데 기껏 한다는 게 교과서 개혁이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학문적 포부나 장기적 목표는.

“위대한 철학서를 저술하는 것이다. 칸트가 프랑스 혁명 당시 바로 ‘순수이성비판’을 써 유럽 역사의 중심을 잡은 것처럼 지금 학자가 해야 할 일은 그런 본질적 도전이다. 학자가 멋있는 연설 몇 번 했다고 역사가 바뀌는 게 아니다. 난 내 본령을 안다. 그래서 매일 지독하게 공부한다. 적당히 타협하면 안 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19일 한국일보닷컴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형식 인터뷰 콘텐츠인 ‘눈(SNS)사람’으로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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