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세운 세운상가

김여란 기자 2015. 11. 1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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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상인이 함께 만든 기획전 '다시 만나는 세운상가'

청계천 일대를 달리는 독특한 짐 자전거들은 모두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세운상가에 있는 상점 ‘삼성오토바이’이다. 이제 알루미늄이 아니라 양철로 자전거 틀을 만들고, 그 브레이크를 철근으로 제작하는 곳은 세운상가밖에 없다. 세운상가는 서울에서 근대화, 산업화를 상징하던 공간이다. 1968년 무허가 판잣집과 윤락업소 등이 있던 곳을 재개발한 자리에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 세워졌다. 용산전자상가가 생기기 전까지는 전자산업의 메카, ‘없는 것 빼고 모두 다 있는’ 그런 장소였다. 하지만 급격한 기술발전, 도시변화 등으로 세운상가는 철거돼야 할 흉물로까지 취급받기도 했으나, 이젠 철거 대신 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 세운상가 5층 실내광장에서 특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이 기획한 ‘다시 만나는 세운상가’란 프로젝트로 전시, 강연, 퍼포먼스 등으로 구성됐다. 지난 13일 개막한 프로젝트는 지난 40여년간 축적된 세운상가 상공인들의 역사와 현재 기술력, 산업생태계를 주목한다.

김구림의 ‘1/24초의 의미’(1969년).

예술가와 상인들이 만드는 전시, 퍼포먼스, 워크숍 등을 통해 ‘급속한 근대화의 명암을 지닌 세운상가’를 넘어, ‘메이커(만드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세운상가를 자리매김하는 작업이다. 프로젝트의 하나인 ‘멋진 신세계’전은 양아치 작가의 기획이다. 그가 제시한 153개 열쇠말에 관해 작가·인문학자·세운상가 상인들이 영상, 설치작업, 강연,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열쇠말은 ‘유토피아’ ‘연면적 6만2284평’ ‘도시의 유람 코스’ ‘아파트학교’ ‘모던한 것 그러나 진정으로 모던한 것들’ 등 근대화와 세운상가에서 연상되는 것들이다. 주재환·성능경·김구림·김양우·김상돈·박경근·심보선 등 예술가 18명이 참여하고 세운상가 상인 10명이 물건을 내놨다.

상인들이 가게에 실제 전시, 판매하는 물건과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다. ‘금강화랑’의 박명희씨가 내놓은 병풍은 김상돈 작가의 영상작업 ‘거울’과 같이 배치돼 세운상가의 어제와 오늘을 되새기게 한다. 환풍기를 파는 ‘선방풍력’의 김경옥씨는 다양한 환풍기 모형을 옛 오락기 형태에 새겨 뒀다. 그의 장인이 오락기를 만들고, 그 딸은 오락기를, 사위는 환풍기를 팔았기에 나올 수 있던 모형이다. 독창적이고 희귀해진 상인들의 물건 뒤로 권경환의 작업 ‘가정식 조각’이 설치됐다. 흔적이 남지 않는 L자형 조립식 선반으로 숱한 변형을 선보이는 작품은 일시적인 가치, 기록되지 않는 노동을 이야기한다.

역사가 된 상공인, 작품이 된 상품‘세운상가’ 프로젝트에 전시된 설치작품들(왼쪽)과 시민들이 참여한 ‘소리탐지기’ 워크숍.

미술가 주재환은 ‘멋진 신세계’에서 라면봉지, 커피믹스 봉지를 활용해 청년 세대의 모습을 표현하고 ‘낙타와 바늘구멍/옛날에 도둑맞았어’ 등의 텍스트를 덧붙였다. 실험예술가 김구림의 1969년 영상작품 ‘1/24초의 의미’는 고가도로 난간, 하품하는 남자 등 일상 모습을 통해 1960년대 근대화를 날것으로 보여준다.

관객들이 참여하는 워크숍도 다채롭게 마련됐다. 21~22일에는 ‘추억 속의 오락기 만들기’ 워크숍이 열린다. 오락실과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로 즐기던 추억의 게임을 교육용 컴퓨터 라즈베리파이로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바느질 회로로 만드는 달빛 액세서리’는 부드러운 천을 전류가 통하는 실로 꿰매서 전기 회로, 조명을 덧붙이는 작업이다. 20일까지 현장에서 언제나 참가할 수 있다. 앞서 14~15일에는 세운상가에서 파는 부품들을 이용해 스피커, 소리탐지기를 만드는 워크숍이 진행됐다. 소리탐지기 워크숍을 진행한 미디어아티스트 강병수씨는 “세운상가의 기계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며 “필요한 부품을 구하러 상가를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사람과 공간을 만나는 작업이길 바랐다”고 밝혔다.

오디오·파워 인풋, 좌우 스피커 채널을 직접 연결하고 조립하는 스피커 만들기에 참가한 손나린씨는 “키트가 아니라 실제 쓰이는 부품으로 만드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각종 강연, 퍼포먼스 등은 사전접수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seoulpowerstation.org)에도 소개됐다. (02)807-4800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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